고딕의 어원은 B.C 2세기를 전후하여 유럽에서 야만 민족으로 악명을 떨쳤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에서 유래됐다. 이후 소설, 미술, 건축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깊숙이 침투하며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고트족의 야만성이 그대로 묻어 들어가 죽음, 어둠, 공포를 표현하였다. 때문에 어둡고 무겁다. 웅장하고 차갑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활개친 포스트 펑크신(Scene)이 흡수하여 음울하고 괴기한 고딕 록을 태동시켰다.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수지 앤 더 밴쉬즈(Siouxsie & The Banshees), 바우하우스(Bauhaus), 시스터 오브 머시(Sister Of Mercy) 등이 그 주역들이다. 이들 그룹들은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의 기반 위에 패배자의 넋두리를 읊조리는 듯한 암울한 보컬로 공포감을 조성하며 고딕 사운드를 정립시켰다. 바우하우스의 1979년 기념비적 싱글 'Bela lugosi's dead'에서 고딕 록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상기한 팀들이 모두 영국 밴드들이라는 점이다. 항상 찌푸린 날씨와 전역에 산재한 고성(古城)들을 둘러싸고 번져 나오는 괴담과 야사가 고딕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영국은 고딕 음악의 발원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딕 록은 데스 메탈, 둠 메탈이 뿜어내는 공격성과 맞물리면서 '고딕 메탈'이라는 극단적 장르로 핵 분열했다. 첫 신호탄은 영국의 5인조 둠 메탈 밴드 패러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가 쏘아 올렸다. 그들은 1991년 2집 앨범 을 발표하며 고딕 메탈을 장르명으로 확고히 했고, 어둡고 거친 둠 메탈 사운드에 여성의 청아한 목소리를 가미시켜 신비함과 비장미를 연출해냈다. 이후 여성 소프라노를 남성의 그로울링한 보컬과 대비시키는 것은 고딕 메탈의 공식 패턴으로 굳혀졌다. 2년 뒤 마이 다잉 브라이드(My Dying Bride)도 을 내놓으며 고딕 메탈의 사운드 메커니즘에 일조를 했다.

 

  계속해서 1990년대 중반 영국의 아나테마(Anathema), 노르웨이의 시어터 오브 트레저디(Theater Of Tragedy), 독일의 라크리모사(Lacrimosa)같은 밴드들이 속속 출현하여 고딕 메탈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시켰다. 특히 시어터 오브 트레저디와 라크리모사는 클래시컬 악곡기법을 도입시켜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사운드를 자랑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고딕 메탈이 데스 메탈과 둠 메탈에 기초한 사운드에서 클래시컬 메탈에 뿌리를 둔 사운드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6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결성된 고딕 메탈 밴드 나이트위시(Nightwish)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1998년 2집 앨범 에 수록된 'Walking in the air'가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심심찮게 리퀘스트 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주(註): 둠 메탈- 데스 메탈에서 나온 하부 장르. 데스 메탈이 '질주'를 상징한다면, 둠 메탈은 이와는 정반대로 '느림'을 지향한다. 완만한 템포 속에서 더욱 더 극단적이고 전율적인 사운드를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