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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오작교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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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의 갈망을 담은 '미국음악의 뿌리'

 

지난 95년 <동아일보>는 10월 19일자 특집으로 당시 확산일로에 있던 국내의 재즈열기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음반뿐 아니라 카페, TV드라마, CF, 패션과 댄스, 소설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재즈가 녹아 들어가는 추세다. 1, 2년전부터 비롯된 국내 '재즈 현상'은 단순한 신드롬을 넘어 '재즈문화'라는 말을 낳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20대 중반이후 세대 사이에서는 재즈가 '공용어'로 인식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재즈의 불모지로 인식되어왔다. 음악 청취수준이 높은 일부 계층 사람들만이 듣는 '마니아 음악'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선풍적 인기를 누리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주인공 차인표가 극중 섹스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어필하면서부터 재즈는 마니아의 좁은 방을 벗어나 대중의 공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과거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던 재즈 앨범들이 레코드 매장에 가득 전시되었고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라는 소설, <재즈>를 제목으로 한 TV드라마, <재즈, 낭만 그리고 립스틱>이란 화장품광고문안이 등장했다. 유흥가에는 재즈카페가 잇따라 문을 열었고 재즈댄스도 유행했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재즈열풍이 불었을까? 거기에는 재즈음악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재즈는 분명 고급스럽다. 그러나 좀더 파고 들어가면 재즈음악의 성격과 90년대 젊음의 스타일간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흔히 재즈를 오프비트(off-beat)와 싱커페이션(syncopation)이라는 '엇박자 리듬과' 임프로비세이션(Improvisation) 또는 애드립(ad-lib)이라는 '즉흥연주'를 생명으로 하는 음악이라고들 한다. 쉽게 말하자면 연주자가 일반적인 박자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악보에도 따르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매우 자유롭고 연주자의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음악과 한번 비교해보자. 클래식에서는 연주자의 개성이 없다. 작품에 맞게 충실히 연주하는 것이 미덕이다. 재즈평론가 에드워드 리는 “작곡(작품)에 중점을 두고 있는 고전음악에 비해 재즈는 항상 연주가 중심이며, 연주자는 즉흥적인 창조와 연주자 자신의 개성표현을 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재즈에서 즉흥성은 클래식의 작곡활동과 마찬가지의 개념이 된다.


즉흥성으로 나타나는 연주의 개성을 전제하면서 요즘 20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왜 그들이 재즈를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한국의 젊은 층은 개성을 자기세대의 상징처럼 여긴다. '아름다운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의 눈에 정박이 아닌 엇박을, 정해진 틀이 아닌 즉흥성을 강조하는 재즈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재즈는 팬들뿐 아니라 연주자를 비롯한 음악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음악이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누구나 자기 음악을 갖고 무대에서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어한다. 남들이 서준 곡을 꼭두각시처럼 부르는 가수들은 더욱 그렇다.


'흑인음악의 메카'로 불리며 수많은 흑인인기 팝가수를 배출한 모타운(Motown) 레코드사의 베리 고디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모타운을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종국에 재즈로 빠지려 한다. 개성을 찾아 재즈로 가려는 그들을 팝음악의 테두리에 묶어두는 것이 무엇보다도 힘들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팝가수들이 왜 재즈를 하고자 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들은 상업적인 노래를 불러 명성을 얻고 돈을 번다. 그런데 상업적인 노래란 상당수가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들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만족할 리가 없다. 그들이 자기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음악으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재즈가 그런 음악 중의 하나이다.


개성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는 동시에 대중음악의 영원한 테마이자 연주자가 꿈꾸는 세계이다. 그게 아니라면 열심히 공부해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뭐하러 트럼펫을 불고 기타를 연주하겠는가. 따라서 '음악의 자유'와 동격화된 재즈는 많은 음악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종착지가 된다.


미국인들은 재즈를 미국의 '특산물'로, 미국의 최대 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미국이라는 독특한 사회 환경 속에서 잉태된, 미국 고유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재즈는 통상적으로 뉴올리언즈(New Orleans)를 중심으로 한 미국 남부에서 발전되어 온 '흑인파 크리올(Creole)의 연주음악'으로 일컬어진다. 크리올은 흑인과 남부 프랑스계 백인의 혼혈을 말한다. 크리올로도 짐작할 수 있듯 재즈는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니다. 흑인 고유의 음악에 유럽계의 백인 이주민이 갖고 있던 음악적 요소가 혼합되어 정형화된 음악이다. 전형적인 흑백의 혼혈 음악이다. 그렇기에 재즈는 흑인도 좋아하고 백인도 즐기는 음악이 될 수 있었다.


흑인 창조한 문화 특산물로는 또 블루스(Blues)란 것이 있다. 재즈는 일찍부터 백인 요소와 합쳐 상류층의 대중음악으로 뻗어간 반면, 블루스는 미국 남부 노예들의 음악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다가 뒤늦게 북부 대도시로 올라가 로큰롤(록)의 기초를 제공했다. 록은 하류층 청춘들의 아우성이다. 이 같은 상이한 경로와 수요층 때문에 보통 재즈는 미국 음악의 아버지, 블루스는 미국 음악의 어머니로 표현하는 것이다.


재즈의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미국 사회에서 학대받은 흑인이 비참한 환경과 답답한 일상사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연히 그 음악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린다. 때문에 재즈는 인간을 억압하고 있는 정치와 사회 제도에 대한 저항, 지배와 피지배의 낡은 가치와 도덕에 대한 도전이 한데 엉겨 있는 음악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으레 연상되는 것은 흑인 인권운동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사가 곧 흑인 공민권 운동의 역사임을 상기하면 왜 재즈의 역사가 '미국 민주주의의 정착과 궤를 함께 하는 음악'으로까지 얘기되는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


재즈를 제대로 알려면 재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각 시대에 따라 성격과 스타일이 다른 재즈가 생겨났고 또 그것을 이끌어간 재즈 연주의 거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시일내에 그 광대한 역사의 흐름과 명인들의 연주를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즈를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성이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재즈 거물에 대한 얘기만을 귀동냥해 듣고 쉽게 덤볐다간 혼쭐난다. '왜 이런 연주를 최상급으로 평가들 하는 거지?'하는 의문만 잔뜩 쌓인다.


그러므로 '준비된 재즈 청취자'가 되려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초창기의 재즈는 군악밴드나 금관악기 중심의 이른바 브라스(brass)밴드에서 그 형태를 찾을 수 있다. 대략 이때가 1890년대. 재즈란 용어는 싱커페이션에 특징이 있는 피아노연주를 가리키는 랙타임(Ragtime)을 거쳐 20세기 초반에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초기 재즈를 딕시랜드(Dixieland) 재즈라고도 하는데 킹 올리버, 루이 암스트롱을 기억해야 한다. '재즈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루이 암스트롱은 얼마 전 시사주간지<타임>에 의해 '20세기를 장식한 문화연예인 20인'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그가 섹스폰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른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는 80년대 국내의 모 상품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여 대단한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다음이 스윙(Swing) 시대. 30년대 초반기에서 40년대 말까지 유행한 대형 악단. 이른바 빅 밴드(Big Band) 시대인데, 스윙이란 말이 그렇듯 신나고 경쾌한 음악이 주로 연주되었다. 당시의 '댄스 음악'이었다고 할까. 루이 암스트롱을 포함, 듀크 엘링턴, 베니 굿맨, 카운트 베이시 등이 전설적 연주자들이다.


흔히 재즈를 딱딱한 음악으로 연상하는데 만약 이 스윙을 먼저 익힌다면 그 느낌을 벗을 수 있다. 즐겁고 유쾌한 재즈 감성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어려운 재즈를 한 아트 블레키도 이런 말을 했다.

“스윙이 느낌이 없으면 재즈는 사라지고 만다. 재즈는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음악'이어야 한다.” 따라서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재즈음악이 스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40년대 초기부터 50년대 중반까지의 밥 또는 비밥(Be-bop)은 다시 연주자의 개성을 앞세워 어려여진 형태이다. 스윙에 맞춰서는 춤을 출 수 있지만 밥에는 춤추기가 어렵다. 찰리 파커, 디지 킬레스피가 밥의 대표주자들로 그다지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50년대에는 딱딱하고 어려운 흑인 주도의 비밥에서 벗어나 밝고 경쾌한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데이브 브루벡)'과 '쿨 재즈(마일스 데이비스)'가 생겨났으며 다시 이것들과 정반대로 나간 '하드 밥(hard bop)''의 흐름도 형성되었다. 하드 밥은 어려운 주법에 매우 격렬하며 전개가 복잡하다.


60년대 이후와 70년대 말까지를 모던 재즈의 시기로 분류하는데 '프리 재즈'를 위시해 여러 경향의 재즈로 한층 분화(分化)를 거듭했다. 이 시기에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매우 낯익은 용어가 된 '퓨전(fusion) 재즈'. 융합 또는 뒤섞임을 의미하는 퓨전은 정통을 고집하지 않고 재즈와 거리가 있었던 음악과 결합해 나온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벽을 허문다는 개념의 '크로스오버'와 유사하다. 만약 재즈 연주자가 팝음악 또는 록의 요소를 끌어들였다면 퓨전재즈가 되는 것이다. 팻 메시니, 칙 코리아, 허비 행콕 등이 기억되는 퓨전재즈는 현대인들에게 딱딱한 재즈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반적으로 음악 감상의 단계를 얘기할 때 먼저 '감성'을 키우고 그 다음에 역사를 개괄하고 이어서 아티스트를 연구하라고 한다. 재즈가 특히 그렇다.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섣불리 역사나 아티스트로 가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시 말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우선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즈에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만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재즈는 고급스런 분위기의 카페에서 와인을 걸치며 듣는, 그런 '무드 음악'이 결코 아니다.


94년과 95년에 국내 음악시장을 강타했던 재즈의 열기는 97년에 이르러 눈에 띄게 퇴조했다. 경제난도 작용했지만 우리의 재즈 열기가 음악에 대한 관심이 아닌 '분위기'를 쫓아 들어온 사람들(유난히 20대 여성들이 많았다)에 의해 조성됐던 탓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당시에도 '거품' 열기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재즈를 절대로 도시의 멋쟁이들 음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재즈는 그런 허영이나 부르주아적 낭만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먼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음악에 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복해 들으면서 언젠가 느낌을 얻게 되면 그 즉흥성과 엇박의 연주 속에서 '충만한 자유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때의 즐거움과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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