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역사 - (10) 1960년대의 팝음악 6

 

 

팝 음악의 영원한 클래식 - 비틀즈 Part 2


601.jpg 비틀즈는 1960년대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밴드다. 그들이 활동했던 1962년부터 69년까지 인기도 언제나 최고였지만 음악적으로 60년대의 모든 스타일을 섭렵했으며 늘  진보적인 사운드 실험을 해나감으로써 향후 지구상의 모든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0대의 직접적인 사랑 표현과 발랄한 하모니로 인기를 독차지한 비틀즈는 1965년을 기점으로 훌쩍 ‘어른’이 된다. 그들은 사랑과 삶과 음악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그것들을 바꿔 나갔다.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직설적 사랑법이 완곡한 은유와 상징으로 변했고 음악 스타일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견고해졌다. 이렇게 비틀즈가 변하게 된 데에는 밥 딜런의 영향이 컸다. 딜런의 성찰적 가사는 존 레논과 다른 멤버들에게 큰 감명을 줬고, 비틀즈는 내면의 음악을 펼쳐 보임으로써 이에 답했다.

 

602.jpg 1965년도 음반 [Help!]부터 진지한 면모가 보인다. 여전히 경쾌하고 활기 넘쳐 보이지만 그 경쾌함은 애수를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발랄함을 두드러지게 했던 특유의 코러스조차 음울한 곡조로 들린다.

 

이후 [Rubber Soul](1965), [Revolver](1966)를 거치면서 밴드는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음악적 진보와 성취를 이끌어냈고, 사이키델릭 시대는 물론 팝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에 이르러서는 록을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603.jpg [Rubber Soul]의 수록곡 ‘Norwegian Wood’는 여러 가지 면에서 종전과는 다른 곡이다. 우선 이 곡에는 시타라는 인도의 악기가 록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향후 인도 음악에 심취하게 되는 조지 해리슨이 기타의 주 선율을 시타로 연주했다. 또한 곡을 듣다 보면 음정이 조금 불안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전통 화성을 따르지 않고 반음 정도의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곡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이야기 구조의 가사다. 남녀의 하룻밤 사랑과 약물 복용에 대한 은근한 암시를 주는 ‘Norwegian Wood’는 여태까지의 가사가 시적인 데 반해 한 편의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한 이야기 구조를 취하며 전통적 가사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과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감을 받을 만하다). 

 

한편 [Rubber Soul]을 통해 '10대와 잡았던 손'을 놓기 시작한 비틀즈는 1966년 8월 캔들스틱 공연 이후 일체의 콘서트를 중단한다.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마저도 들을 수 없는 아수라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비틀즈는 스튜디오에만 틀어박혀 줄곧 음악에만 매달린다. 그곳에서 그들은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실험을 시도한다. 오버더빙을 반복하고, 녹음된 테이프를 거꾸로도 돌려보고, 전자음향과 이제껏 써보지 않았던 악기들을 도입했다 

 


604.jpg 그 한 예로 [Revolver]의 수록곡 중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Eleanor Rigby’는 한 곡의 클래식 소품처럼 들린다. 전주는 생략한 채 폴의 외로운 목소리와 첼로, 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 연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록 음악의 전형적인 사운드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기타와 베이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존 레논은 ‘She Said She Said’, ‘Tomorrow Never Knows’ 같은 곡을 통해 약물의 영향을 드러내며 사이키델릭 시대의 전조를 보여준다. 조지 해리슨은 ‘Love You To’를 통해 앞으로 많은 뮤지션들이 경도될 인도의 음악과 사상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는 향후에도 계속해서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 타블라, 탐부라 등을 도입해 인도 음악인 라가(raga)를 구현해냈다. ‘Got To Get You Into My Life’ 같은 곡은 소울에 영향 받아 브라스와 펑키(funky) 리듬을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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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각종 레코딩 기술이 집약된 스튜디오 앨범의 결정판이자 향후 탄생하게 될 아트 록의 교본이었다. 비치 보이스의 걸작 [Pet Sounds]에 자극받아 만든 이 작품은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진 완벽한 컨셉트 음반이었다.

 

가사적인 연관보다는 서커스 분위기에서 콘서트처럼 진행되는 전체적인 음악 전개가 그랬다. 관객들의 박수소리나 다른 잡음들 등 기본 음향 외에 기괴한 사운드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 ‘소외 효과’를 의도하는 듯도 했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Within You Without You’, ‘A Day In The Life’ 같은 곡에서는 사이키델릭의 약물에 의한 환영을 언급했다.

 

특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각각 파트를 나눠 가사와 곡을 쓴 ‘A Day In The Life’는 ‘She Loves You’를 썼던 그룹이 만든 노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난해한 가사(외로운 현대인의 바쁜 일상, 환각 체험 등 각자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와 음악적 깊이가 느껴지는 수작 중의 수작이다. 폴과 존의 너무나 대조적인 파트와 곡 중반부와 후반부에 40인조 오케스트라가 4배로 확장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606.jpg 이처럼 팝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비틀즈도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사망하고 나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죽자 밴드를 이끌기 위해 폴 매카트니가 앞장 섰다. [Magical Mystery Tour]는 그의 주도로 만든 음반(같은 타이틀의 TV용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다.

 

그러나 폴의 과도한 의욕은 나머지 멤버들의 반발을 샀고, 존 레논에게 새로운 애인 오노 요코이 생기면서 팀 내 분열은 더욱 심해졌다. 화이트 앨범이라 불리는 더블 앨범 [The Beatles](1968) 녹음과정부터 심화된 갈등은 [Abbey Road](1969) 앨범이 나올 즈음 절정에 이르렀으며 팀의 해체라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The Beatles], [Abbey Road], [Let It Be] 등 후반기 3장의 앨범을 통해 그들은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다.


607.jpg 밴드가 최후에 녹음한 음반인 [Abbey Road]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노래를 수록하고 있다. A면은 예전처럼 멤버 각자의 개별적인 곡들을 모아 놓아서 별 차이가 없지만, B면은 전 곡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는 메들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 B면은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한 주제부를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클래식 기법을 많이 동원한 이 앨범의 성격을 볼 때 그 오페라 형식을 빌려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룹 후(The Who)가 록 오페라를 구현한 앨범 [Tommy] 그리고 록 음악의 폭을 확장한 프로그레시브 록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껏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가려있던 조지 해리슨의 작곡실력이 비로소 빛을 발했다는 사실.

 

그가 만든 ‘Something’과 ‘Here Comes The Sun’은 조지의 뛰어난 서정성과 멜로디 감각을 보여주는 베스트 트랙이다.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녹음 기술인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 기법을 많이 활용한 [Let It Be]에서도 ‘Across The Universe’, ‘Let It Be’ 같은 주옥 같은 명곡을 남겼다.

 

철학적 가사와 유머, 위트를 잃지 않았던 존 레논, 천재적이면서도 대중적이고 따뜻한 멜로디 감각을 선사했던 폴 매카트니, 사색적인 성격으로 조용히 기타 연주를 들려줬던 조지 해리슨, 그리고 언제나 자애로운 표정으로 묵묵히 드럼을 연주했던 링고 스타. 이들이 함께 했던 밴드 비틀즈는 결국 1970년 공식 해체했다. 그러나 개개인의 음악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해체 이전부터 이미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곧바로 솔로 앨범을 내놓았으며,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도 솔로 작업을 개시했다.

 

 

그 밖의 60년대 음악 - 컨트리 록, 소울 …

 

비극적인 베트남전과 켄트 주립대 사건으로 복잡한 사회 현실에 직면한 가운데 일부 포크 록 진영의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소박한 삶의 희구와 전원에서의 삶을 노래하는 컨트리 록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과거로의 귀환은 지난 10년간 미국이 겪어온 불안정한 상태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608.jpg 포크 록과 사이키델릭 록에서 모두 언급된 버즈는 새 멤버 그램 파슨스가 들어오면서 컨트리 록을 가장 먼저 실험한 밴드가 되었다. 그램 파슨스의 목표는 컨트리 음악과 록을 섞는 것이었고, 그는 버즈에게 컨트리 앨범을 만들도록 설득했다.

 

그 결과 버즈는 컨트리 록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파슨스는 그 얼마 후 동료 크리스 힐먼과 버즈를 탈퇴해 플라잉 뷰리토 브라더스(Flying Burrito Brothers)를 결성했다. 포크 록을 들려주던 밥 딜런은 컨트리 스타 조니 캐시와 교류한 뒤 1968년 [John Westley Harding] 음반서부터 컨트리 록으로 전향했다.

 

컨트리 록의 시조 격인 밴드로는 향후 컨트리 록 발전에 중요한 인물이 되는 뮤지션들로 이루어졌던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 슈퍼 밴드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시(Crosby, Stills & Nash, 나중 닐 영이 가세한다),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짐 메시나와 리치 푸레이가 결성한 포코(Poco), 그리고 한때 딜런의 백 밴드였던 더 밴드(The Band)이 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페달 스틸 기타의 컨트리 음색, 강력한 록 백 비트, 그리고 에벌리 브라더스, 비치 보이스에 영향받은 보컬 하모니를 동반했다. 이 같은 경향은 70년대에 린다 론스태드와 이글스로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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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초,중반 록에 종교적 가치와 민권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던 소울 음악은 60년대 후반까지 내내 원기 넘쳤다. 블루스의 중심지 시카고 특유의 부드러운 스타일을 들려줬던 커티스 메이필드(Cutis Mayfield)의 임프레션스(Impressions), 목회자 출신으로 가스펠에서 소울로 바뀌는 전환점의 산 증인인 샘 쿡(Sam Cooke), 강렬한 소울 음악을 선보여 ‘미스터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을 얻은 재키 윌슨(Jackie Wilson), 느릿한 세레나데를 들려주던 알 그린(Al Green), 그리고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소울 아티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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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jpg 1942년 멤피스에서 침례교 목사의 딸로 태어난 아레사 프랭클린은 어린 시절 가스펠 여왕 마할리아 잭슨을 꿈꾸며 가스펠 가수로 활동했다.

 

마할리아 잭슨과 같은 가스펠 가수를 꿈꾸던 프랭클린은 그러나 소울이라는 음악을 흑인뿐 아니라 백인들에게 전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그녀의 음반 [Lady Soul](1968)은 소울 레코드의 결정판이다. 그 앨범에서 프랭클린은 다음 시대에 만개할 펑키한 음악을 미리 선보이며 '강(剛)'과 유'(柔)'를 넘나드는 음역과 넉넉함을 보여준다.

 

박자에 구애 받지 않는 부드러운 흐름, 백 비트의 강세, 활기찬 호른이나 색소폰의 솔로 연주 같은 소울의 충만함은 이 앨범을 통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소울은 음악이 그 시대상과 정신적인 측면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흑인들이 민권운동으로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소울은 그들의 배설이자 구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레사 프랭클린의 시원하고 활기찬 모습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어빌 벌린, 제롬 컨 전통의 틴 팬 앨리 팝 음악이 여전히 팝 차트를 중심으로 강세를 띠었고, 루 리드와 존 케일이 이끌던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에 의해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이 탄생했으며, 블루스와 소울, 컨트리를 혼합한 미국 남부의 음악 서던 록(southern rock)도 1968년 그룹 올맨 브라더스(Allman Brothers Band)에 의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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