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xter_Gordon1.jpg 덱스터 고든 (Dexter Keith Gordon, 1923년 2월  ~ 1990년 4월)


진정한 하드 밥의 명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테너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은 남성적인 호방한 플레이와 변함없는 꾸준한 음악활동으로 재즈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재즈계의 거장이었다.
 

1923년 2월 27일 로스 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마찬가지로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유복한 가정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정식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아티스트로서의 커다란 꿈을 갖게 되었다.
 

1940년 17세에 이미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갖추게 된 덱스터 고든은 라이오넬 햄프턴(Lionel Hampton)의 악단에 가입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전문 연주자로의 삶을 살게 된다.

 

4년간 착실하게 경력을 쌓으며 재즈맨으로써 갖추어야할 많은 이론을 공부할 수 있었던 그는 이후 루이 암스트롱(Louis Amstrong) 밴드와 빌리 엑스타인(Billy Ecstein) 밴드를 거치며 서서히 재즈계에 이름을 알린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의 만남을 통해서 ‘비 밥(Be Bob)’이라는 새로운 재즈의 조류를 경험하게 된 덱스터 고든은 앞으로 해야 할 자신만의 음악관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얼마 후인 47년 덱스터 고든은 "Chase!"란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밥 스타일에 기반을 둔 이 작품은 그의 뛰어난 연주솜씨와 바이 레드(Vi Redd)와의 색소폰 베틀이 돋보였던 훌륭한 앨범으로서 재즈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50년대에 접어들면서 덱스터 고든은 그만 마약중독에 시달리게 된다.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하게 되지만 예전과 같은 좋은 연주를 들려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한동안 계속해서 방황의 나날을 보내다가 60년대 들어 블루 노트(Blue Note)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새로운 음악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Doin' All Right", "Dexter Calling", "Go!", "Swingin' Affair" 같은 앨범은 바로 이 시기에 발매된 수작들로서 덱스터가 마약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재기하였음을 알 수 있는 앨범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62년 발매된 "Go!"는 그의 남성적이고 정열적인 연주가 돋보이는 가운데 소니 클락(Sonny Clark)과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의 뛰어난 연주가 빛을 발한 명반으로서 재즈팬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60년대 초반 재즈계는 프리 재즈의 열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점차 하드 밥 연주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 갔고 결국 하드 밥만을 고수하며 자신만의 연주스타일을 유지했던 덱스터 고든은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건너가 제2의 음악인생을 펼치게 된다.
 

비록 미국 본토에서는 그의 연주가 예전과 같이 큰 반응을 얻을 수 없었지만 유럽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말로만 듣던 대가의 연주를 직접 볼 수 있게 된 유럽의 재즈 팬들은 크게 환호하며 덱스터 고든의 연주에 열광했다.

 

63년의 앨범 "Our Man in Paris"는 바로 이 시기의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큼 완성도 높은 앨범이었다.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셀롯(Pierre Michelot)과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Bud Powell), 드러머 케니 클락(Kenny Clarke)의 명연주가 담겨진 이 앨범은 유럽 팬들로부터 굉장한 호평을 받으며 그를 일약 스타로 등극시키게 되었다.

 

이후 그는 스티플 체이스(Steeple Chase)와 블랙 라이온(Black ion)을 거치면서 여러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전성기 시절의 명연주 잘 담아놓은 이 앨범들도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67년작 "Live at the Montmartre Jazzhus"는 절정에 다다른 그의 연주를 볼 수 있는 앨범으로서 케니 드류(Kenny Drew)가 참여하여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준 명반이었다.
 

69년 덱스터는 잠시 미국으로 돌아와 프레스티지(Prestige)와 계약을 맺고 "Tower of Power"를 발표한다. 여전히 하드 밥의 정신을 잃지 않고 그만의 색깔을 유지했던 이 앨범은 당시의 주류와는 상관없이 그를 기억하는 재즈 팬들에게 찬사를 얻게 된다. 이후 그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70년대 중반까지 활약하게 된다.
 

76년 14년 만에 완전히 미국으로 돌아온 덱스터 고든은 "Biting the Apple"을 발표하며 본토에서의 음악생활을 재개한다. CBS사로 이적한 그는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명 라이브 앨범 "Homecoming"을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 이후 블루 노트와 콜롬비아를 통하여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나름대로의 활동을 보이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는 80년대 이후 건강까지 나빠지면서 점차 재즈 신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85년 버드 파웰(Bud Powell)의 이야기를 담은 재즈 영화 "Round Midnight"을 통해서였다. 웨인 쇼터(Wayne Shorter), 존 맥클라플린(John Mclaughlin), 프레디 허바드(Freddie Hubbard)등의 실제 연주자들이 참여한 이 영화에서 그는 연기뿐 아니라 직접 연주까지 선보이는 명연을 펼치며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후 그는 87년 한차례 토니 베넷(Tony Benett)의 앨범에 참여하여 재즈 팬들의 관심을 얻기도 했지만 결국 90년 4월 건강악화로 사망하고 말았다.
 

항상 하드 밥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잃지 않았던 덱스터 고든은 진정한 재즈계의 장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그는 화려함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개척자는 아니었을 지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진정한 재즈 맨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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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할 Album

 

01. Number Four

02. Chase

03. Cryy Me A River

04. Plays With Stan Levey Sextet

05. The Sidemen Years

 

06. The Real Thing Happened To Me

07. The Bopland Boys

08. Dexters Mood

09. Follow You

10. All About Dex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