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기타리스트 Jeff Beck
1965년 에릭 클랩튼이 갑작스럽게 야드버즈를 탈퇴했을 때 그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지미 페이지의 추천을 받은 제프 벡이었다. 그가 록 음악사의 전면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후 여러 밴드와 솔로 활동을 통해 진정한 기타 연주의 장인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제프 벡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각종 조사에서 위대한 기타리스트 명단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거장이다. 1992년에 야드버즈의 멤버로서, 2009년에는 솔로로서 다시 한 번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두 번씩이나 이름을 올렸다.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처럼
제프 벡은 1944년 영국 서레이주 웰링턴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에게 기타를 빌려 치면서 기타 연주에 처음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기타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겨 자신만의 기타를 만들고자 애썼는데, 이런 창조적 성향은 훗날 그가 대단히 실험적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
제프 벡 자신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가장 먼저 들은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여섯 살 무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레스 폴의 연주였다고 한다. 당연히 레스 폴은 제프 벡이 가장 먼저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가 되었으며 이밖에도 그는 클리프 갤럽(Cliff Gallup, 1930~1988), 비비 킹, 스티브 크로퍼 등을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로 꼽는다. 제프 벡은 웰링턴 예술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무렵 여동생의 소개로 지미 페이지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제프 벡은 몇몇 밴드를 거쳐 1965년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그가 밴드에 몸담았던 시간은 불과 스무 달 남짓이었지만 이 시기 야드버즈는 밴드의 대표곡들인 〈Heart Full of Soul〉 〈Evil Hearted You〉 등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Heart Full of Soul〉에서 선보인 기묘하면서도 탁월한 기타 리프는 그를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가 만들어낸 창조력 넘치는 사운드는 곧 도래할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1966년 야드버즈를 탈퇴한 제프 벡은 1967년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Who의 키스 문 등의 도움을 받아 앨범 「Beck's Bolero」를 발표하고 여기서 〈Hi Ho Silver Lining〉과 〈Tallyman〉을 히트시킨 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프 벡 그룹'을 출범시켰다.
로드 스튜어트, 론 우드, 믹 월러(Mick Waller, 1941~2008) 등이 포함된 호화 라인업이었다. 제프 벡 그룹의 데뷔 앨범 「Truth」는 1968년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이 나오기 다섯 달 전에 발매되었는데, 로드 스튜어트의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를 앞세우고 안정적인 리듬 섹션 위에 펼쳐진 제프 벡의 기타 연주는 호평과 찬사를 획득하며 앨범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Truth」는 일단의 평론가들로부터 최초의 헤비메탈 앨범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특히 제프 벡의 기타 연주가 향후 등장하는 수많은 헤비메탈과 록 밴드들에게 깊은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이다.
2집 「Beck-Ola」로 다시 한 번 명성을 떨친 제프 벡 그룹은 1969년 1차 해산했고, 그 후 제프 벡은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의 리듬 섹션이었던 팀 보거트(Tim Bogert)와 카마인 어피스와 함께 활동을 펼쳤다. 이 조합은 1973년 이들이 함께 한 앨범 「Beck, Bogert & Appice」가 나오는 모태가 되었다. 건강이 나빠져 잠시 필드를 떠났던 제프 벡은 1971년 새로운 라인업으로 구성된 제프 벡 그룹과 함께 돌아왔는데, 더블 베이스를 앞세운 파워 드러밍의 대가 코지 파웰(Cozy Powell, 1947~1998)의 가세가 특히 눈에 띄었다.
제프 벡이 1960년대와 70년대를 함께 풍미한 많은 기타 영웅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영역은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가 아니라 솔로 연주자로서 만들어낸 탁월한 성과물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1975년 발표한 역사적인 명반 「Blow by Blow」가 자리한다. 1970년대 대중음악계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는 재즈 록, 퓨전 재즈의 발흥이었다. 1970년 발표된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의 앨범 「Bitches Brew」와 함께 시작된 재즈 록의 견고한 흐름의 주류는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 등 그 흐름을 주도했던 밴드들의 존재가 말해주듯 재즈를 중심으로 록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제프 벡은 재즈 록의 흐름 가운데서도 중요하게 읽히는 연주자인데, 그것은 그가 반대로 록의 입장에서 재즈적 요소를 수용했다는 점 때문이다. 「Blow by Blow」는 그 정점에 있는 앨범이며 제프 벡의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앨범이다.
정교한 테크닉을 앞세운 재즈적 어프로치와 뛰어난 사운드메이킹이 바탕이 된 「Blow by Blow」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타 연주 앨범으로 꼽힌다. 비틀스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조지 마틴이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에서 제프 벡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실로 혁신적인 연주력을 선보이는데, 특히 로이 부캐넌에게 바친 〈Cause We've Ended as Lovers〉에서 보여준 볼륩 주법과 블루스 연주, 비틀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She's a Woman〉에서 보여준 독특한 해석력과 정교함, 〈Scatterbrain〉의 변칙적이면서도 치밀한 구성은 앨범의 백미로 꼽힌다. 아울러 마치 라이브를 듣는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Freeway Jam〉의 넘치는 에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이어진 작품 중에서는 1976년 체코 태생의 키보드 연주자 얀 해머(Jan Hammer)가 참여했던 앨범 「Wired」와 1980년작 「There and Beck」, 1989년작 「Jeff Beck's Guitar Shop」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밖에 1985년작 「Flash」는 그동안 기타 연주에만 천착하는 구도자적 이미지를 굳혀오던 제프 벡이 의외로 팝을 끌어들여 대중성에 손을 내민 문제작으로, 평단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앨범이다. 아무튼 이 앨범에서는 로드 스튜어트와 함께한 〈People Get Ready〉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0년대 이후로도 제프 벡은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앨범을 선보이는 등 혁신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있다. 1999년 앨범 「Who Else!」와 2003년작 「Jeff」가 이 시절의 대표 앨범인데 기타 연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한계를 넘어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뮤지션을 넘어 구도자의 길을 가는 이의 모습에 가깝다 하겠다.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시도와 정교한 테크닉은 기본이고 제프 벡이 높이 평가받는 또 다른 면은 전반적인 어레인지와 사운드 디자인 면에서 보여주는 탁월함이다. 그는 기타 연주를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록 기타의 구도자적 길을 걸었던 제프 벡은 기타리스트의 에티튜드에서도 후대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리에 대한 한결같은 천착
제프 벡은 야드버즈 시절 초기에 깁슨 레스 폴 기타와 펜더 에스콰이어 기타를 썼다. 당시 사용했던 54년형 펜더 에스콰이어는 현재 클리블랜드에 있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이 소장하고 있다. 제프 벡 그룹 시절인 1968년 「Truth」 녹음 당시 사용한 것은 깁슨 레스 폴 기타와 복스 AC30 앰프의 조합이었다. 지금도 레스 폴과 펜더 텔레캐스터를 종종 사용하지만 그의 주무기는 이제 누가 뭐래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와 마샬 앰프의 조합이다. 그는 자신만의 팬더 스트라토캐스터 시그너처 기타를 들고 비브라토 바(트레몰로 암)와 와와페달을 즐겨 사용한다.
1980년대에 들어 제프 벡은 피크를 버렸다.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직접 퉁기는 핑거링 주법은 파워를 중시하는 록 기타리스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그를 대표하는 개성과 장점이 되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기타리스트인가를 증명하는 재미있는 뒷얘기도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시드 배릿(Syd Barrett, 1946~2006)이 자리를 비웠을 때도,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존스가 사망했을 때도 가장 먼저 후임으로 고려되었던 이는 다름 아닌 제프 벡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자리는 데이비드 길모어와 믹 테일러가 차지했고 제프 벡은 자신만의 길을 갔지만 말이다.
제프 벡이 기타의 새로운 경지를 찾아 떠나온 오랜 여행은 록 음악사에 드리운 축복이다. 그는 한결같은 천착을 통해 기타의 위치를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기타를 작은 오케스트라라 한다면 최소한 일렉트릭 기타의 영역에서는 그 공헌의 상당 부분이 제프 벡의 것이어야 한다. 또한 그는 연주력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태도에 있어서도 많은 후배 기타리스트들의 모범이 된 진정한 기타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