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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의 한계를 넘어서 - 백인이 아닌 성공한 여성 보컬

오작교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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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재즈는 꼭 흑인의 음악이라 말하기 곤란할 정도로 인종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인종 차별에 대한 서러움, 회한의 정서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던 재즈의 전통은 이제 흑인과 미국의 테두리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음악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재즈 보컬 하면 우선적으로 우리는 다소 몸집이 비대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풍성한 성량으로 흑인만의 소울이 느껴지는 노래를 불었던 흑인 여성의 모습을 떠 올리곤 한다. 이것은 흔히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엘라 핏제랄드로 대표되는 3명의 재즈 디바의 존재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재즈 보컬의 세계 한 가운데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의 재즈 애호가 조차도 흑인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흑인처럼 노래를 해야 재즈를 노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흑인이 아닌 여성 보컬의 노래들은 어딘지 하나가 부족하거나 상업적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차별 속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힌 보컬들은 의외로 많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흑인처럼 노래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재즈의 다양화와 세분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보컬이 지닌 매력을 그대로 잘 살려 성공을 이루어냈다. 그 가운데 백인 여성 보컬들은 끝까지 상업적이네 뭐네 하는 평가가 그녀들의 뒤를 따랐지만 갈수록 자신들의 입지를 견고히 하여 현재에 이르러서는 재즈 보컬을 주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흑인 외의 인종 중에서 음악적, 대중적으로 성공적인 성과를 얻은 여성 보컬 가운데 몇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Blossom Dearie


Blossom%20Dearie.jpg   보통 백인 여성 보컬들을 가리켜 블론디 보컬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것은 백인의 금발 머리결로 흑인과의 인종적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속에는 백인 여성 보컬은 노래 이전에 외모가 출중한 상업적 성격을 띈 인물들이다 라는 편견의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 페기 리, 줄리 런던 같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보컬들은 음악에 팝 음악적 요소를 대폭 차용하고 있었으며 가수인 동시에 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니 상업적이니 외모 지향적이니 하는 평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블로섬 디어리는 좀 달랐다. 그녀는 현재 백인 보컬의 전형성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블로섬 디어리가 가장 인기를 얻었던 시기는 1950년대였는데 그 당시의 관점에서 블로섬 디어리의 보컬은 재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노래들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또 다른 매력, 그러니까 깊이 대신 살랑거리는 귀여움을 드러내는 창법 때문이었다. 보통의 백인 여성 보컬들이 관능적인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재즈 감상자들의 은밀한 욕구를 자극했다면 블로섬 디어리는 여인보다는 소녀적인 이미지와 목소리로 로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의 노래에는 지적인 풍모가 느껴졌다. 그러나 단순히 목소리 창법만의 차이가 블로섬 디어리를 재즈 역사를 이끈 백인 여성 보컬로 기억하게 한 것은 아니다. 블로섬 디어리의 장점은 노래를 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즉, 보컬을 넘는 재즈 연주자로서의 역량을 지녔다는 것인데 따라서 블로섬 디어리의 귀여움에서 깨어나면 그녀가 노래한 곡들이 모두 신선하게 편곡되어 노래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 가운데 블로섬 디어리의 디스코그라피의 초기를 차지하는 3장의 앨범 <Blossom Dearie>, <Once Upon A Summertime> <Give Him The Ooh-La-La>는 블로섬 디어리의 장점을 확연하게 드러낸 걸작이다.
  블로섬 디어리의 영향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예로 2000년에 상큼한 보사노바 곡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을 강타했던 리사 엑달의 살랑거리며 소녀스러운 보컬도 블로섬 디어리를 원형으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 큰 관심을 얻고 있는 스테이시 켄트의 가녀리면서 애교 섞인 보컬에서도 블로섬 디어리의 그림자는 발견된다.

 


Diana Krall


Diana%20Krall.jpg   하지만 현존하는 백인 여성 보컬에 있어 가장 성공을 거둔 인물은 다이아나 크롤이다. 그녀는 재즈를 넘어 일반 음악 감상자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초기엔 뛰어난 미모가 인기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그녀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을 뿐, 정작 그녀의 노래를 들어본 감상자들은 외모와 상관없이 빼어난 크롤의 노래에 감탄하고 만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관심이 없다가 어느 여름날 밤에 라디오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는 도대체 어떤 여자가 이리도 감미롭게 노래를 하고 있을까? 그러면서도 음악적으로 가볍지 않네? 하면서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 뒤 그 매혹적인 보컬이 다이아나 크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역시 모든 판단에는 선입견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이아나 크롤은 줄리 런던, 크리스 코너 등의 백인 블론디 보컬들에 편재했었던 비단 같은 부드러움 솜사탕 같은 달콤함과 함께 사라 본 등의 재즈 보컬의 3대 디바에 고유했던 흑인 특유의 깊은 울림을 함께 갖추고 있다. 그래서 한없이 말랑말랑한 느낌으로 육감적 분위기를 발산하는 보컬 곡에서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설탕과 커피가 적절히 조화되어 단맛과 쓴맛이 오묘하게 혀 끝으로 전해지는 맛 좋은 커피와 같다고 할까? 그래서 그녀의 노래와 음악들은 이것저것 따지기 좋아하는 여러 평론가들에게나 쉬운 접근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은 그녀의 1998년도 앨범 <When I Look In Your Eyes>의 성공을 보면 쉽게 확인된다. 이 앨범은 그래미 베스트 재즈 보컬 부분에서 수상을 하고 또한 빌보드 재즈 차트에 52주 연속 1위를 했다. 그리고 다른 앨범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그녀는 새로운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다이아나 크롤의 성공은 단순한 보컬이 아니라 블로섬 디어리처럼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자였기 때문에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맞추어 피아노를 연주하고 또 편곡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장점이다. 특히 지난 2004년 발매했었던 <The Girl In The Other Room>을 자작곡 중심으로 채우면서 그녀는 이제 자신이 확실한 아티스트,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음을 증명했다.

 

 


Karrin Allyson


 Karrin%20Allyson.jpg   카린 앨리손은 다이아나 크롤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은 충분히 크롤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실제 1990년대에 등장한 백인 여성 보컬뿐만 아니라 전체 재즈 보컬 가운데서도 그녀의 노래와 음악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카린 앨리손의 인기와 높은 평가의 비결은 단순히 노래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녀가 노래에 만족하지 않고 음악을 하기 바란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그녀가 클래식 피아노 수업을 받고 또 여성 ?? 그룹 활동을 했었다는 다소 특이한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 역시 초기에는 일반적인 보컬들처럼 자신의 노래, 특히 발라드에 모든 초점을 맞춘 앨범들을 녹음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앨범들은 단순히 카린 앨리손이 마음 먹고 한 시기에 노래한 곡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먼저 앨범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곡을 고르거나 작곡하여 노래한 곡으로 채워진 앨범의 성격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음악적 주제의 스펙트럼은 실로 큰 폭을 보여준다. 예로 1999년에 발표했던 <From Paris To Rio>에서 그녀는 앨범 타이틀처럼 샹송에서 보사노바에 이르는 다양한 곡들을 세계 여행하듯 감미롭게 노래했으며 2001년에 발매되었던 <Ballads> 앨범에서는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의 낭만적 앨범 <Ballads>(Impulse! 1962)의 수록곡과 연주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여 보컬이 할 수 있는 존 콜트레인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으며 2002년도 앨범 <In Blue>에서는 다양한 블루스 곡들을 모아서 노래했다. 그리고 이러한 앨범들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샹송, 보사노바, 존 콜트레인, 그리고 블루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맞게 섬세하게 편곡을 했을 때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카린 앨리손의 앨범은 다른 어느 보컬보다 앨범 단위의 감상을 요구하며 또 그 감상에 있어서도 보컬보다는 그룹 연주의 차원에서 감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음악적 진지함 속에서 더욱 빛나는 그녀의 장점은 결코 난해함의 길로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꼭 존 콜트레인을 알지 않아도, 블루스를 알지 않아도 그녀의 노래들은 그저 편안하고 푸근한 발라드 곡으로 감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Keiko Lee


 Keiko%20Lee.jpg   한국인 3세로 알려진 게이코 리는 사실 인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상당히 지역적이다. 일본에서의 커다란 인기를 중심으로 한국을 비롯한 근처 국가에서 약간의 인기를 얻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기획에 게이코 리를 포함시킨 것은 그녀의 음악이 충분히 지역적 한계를 벗어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의 활동 지역에서 큰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성공한 케이스가 아니겠는가? 실제 그녀는 1997년부터 일본의 전통적 재즈 잡지 스윙 저널의 독자 투표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선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앨범들 역시 발매될 때마다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게이코 리의 보컬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그녀의 보컬 음색이 일본, 아시아를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노래를 먼저 듣게 되었을 때 과연 몇 명이나 그녀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가슴을 쓸어 내리듯 깊게 내려가는 그녀의 허스키 보컬은 완벽한 흑인이다라고 말하기엔 곤란할지 몰라도 상당히 흑인적인 것이다. 실제로 원래 나고야의 한 클럽에서 칵테일 피아노 연주를 하던 게이코 리가 보컬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도 맨하탄 재즈 퀄텟의 멤버이자 유명 연주자들의 세션 연주로 유명한 흑인 드럼 연주자 그레디 테이트가 그녀의 노래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첫 앨범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처럼 흑인 보컬과의 유사성이 오로지 미국의 전통적 스타일의 재즈가 진정한 재즈라고 믿는 일본의 재즈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게이코 리 역시 감상자의 취향을 전적으로 따르려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성공한 재즈 연주자들이 대중적 취향 속에 감상자를 새로운 감상으로 이끌 수 있는 신선하면서 접근이 쉬운 그만의 시도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게이코 리 역시 앨범마다 조금씩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의 레퍼토리는 전통적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팝 음악을 아우른다. 그리고 이 곡들에 게이코 리는 그녀만의 소울적 감각을 투영하고 있다.
  한편 그녀는 앨범을 거듭할수록 자작곡에 큰 애착을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 2003년에 발매했던 <Vitamin K>는 앨범 전체를 자작곡으로 채운 첫 앨범이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자작곡 앨범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게이코 리가 전통적 재즈 보컬과 사운드 외에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사운드에서도 큰 매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나 윤선


 나%20윤선.jpg  “신기하게도 제가 우리 가곡‘초우’를 유럽 공연에서 부르면 가사도 모른 채 관객들이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곤 해요”
  지난 해 그녀를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나 윤선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적인 것이 통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명언으로 필자에게 깊이 각인된 발언이었다.
  현재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나 윤선의 인기는 대단하다. 역시 지난 가을 프랑스를 방문하여 음반 매장 재즈 담당부터, 재즈 레이블의 제작자, 재즈 애호가 등 다양한 프랑스 재즈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이들 모두는 단지 필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나 윤선에 대한 극진한 찬사를 거의 자동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나 윤선의 성공은 한국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혈혈단신으로 프랑스에 건너가 나 윤선 혼자서 오로지 실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한국에서 그녀의 인기는 음악이 아니라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그녀의 성공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방송되면서부터였다. 그 전까지 나 윤선은 프랑스에서 활동을 하는 특이한 한국 가수로 소수의 재즈 애호가들에게나 알려진 상태였다. 한국이 그녀를 인정하기 전에 프랑스가 먼저 인정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아무튼 현재 나 윤선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녀의 보컬은 백인이건 흑인이건 재즈 보컬의 전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백인도 흑인도 아니요, 미국인도 유럽인도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 양자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고 연습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킨 보컬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녀는 미성과 폭넓은 다이나믹으로 침묵이 극대화된 곡부터 화려한 리듬이 앞서는 곡까지, 전통적 재즈 스탠더드부터 우리의 가곡, 월드 뮤직의 고전까지 다양한 곡들을 소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채로움이 결코 난잡함으로 이어지지 않고 나 윤선식 음악으로 정제되어 드러난다는 것은 나 윤선의 음악이 지닌 장점이기도 하다.
  나 윤선 역시 단순한 보컬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혼자서 노래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그룹이나 반주 파트너와의 교감적 대화를 통하여 사운드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이상 음악적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흑인이 아닌 여성 보컬 몇을 주관적으로 언급해 보았다. 물론 이들 모두가 재즈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장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 보컬들은 적어도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보컬들의 모범이 될 수 있다. 실제 블로섬 디어리를 제외하고 모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이기에 이들의 향후 활동에 따라서 재즈 보컬의 역사, 흐름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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