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앤 블루스와 그 뿌리 - 2
리듬 앤 블루스와 그 뿌리 (2)
시간이 흐르면서 영가는 흔히 말하는 가스펠(Gospel)로 대체된다. 정확한 연대는 밝히기 어렵지만 대체로 1880년대로 추정된다. 여기서 언급하는 바는 일반적인 의미의 가스펠, 즉 모던 가스펠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초기의 가스펠은 지금과 같이 규모가 크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기까지 했다. 학술적으로는 초기의 가스펠과 영가는 그 형태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학자들의 시대적인 구분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음악적인 구별을 하기 위한 자료가 부족한 것 또한 초기의 가스펠과 영가의 구분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영가와 초기 가스펠의 형태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모던 가스펠-우리가 말하는 가스펠은 근본적으로 모던 가스펠을 의미한다-이 등장하게 된다. 'Gospel'이라는 말은 신을 뜻하는 'God'와 이야기를 뜻하는 'Spell'의 합성어에서 유래한다. 즉 신에 대한 이야기, 우리말로 '복음'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가스펠과 영가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가는 무조건적인 신앙심을 이야기한다면 가스펠은 사회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약간의 회의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가스펠 다음으로 연결이 되는 '블루스라는 형태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가사의 비종교성이나 본능적인 모습을 볼 때 분명히 영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블루스(Blues)
위의 '블루스라는 형태의 음악'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자. 정확히 말하자면, 블루스라는 '장르'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블루스라고 하면 떠올리는 아티스트들로는 B. B. King, Muddy Waters, John Lee Hooker, Buddy Guy, Albert Collins, Albert King, Koko Taylor, Johnny Witer 등이다.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하는 음악을 편의상 블루스라고 칭하지만 상당히 모순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블루스는 특정 장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 형식 구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블루스는 12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문헌에 따라서 부르자면 12-Bar-Blues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의 화성진행은 아래와 같다. [1]-[1]-[1]-[1]-[4]-[4]-[1]-[1]-[5]-[5(4)]-[1]-[1] 즉, 1도화음 4마디, 4도화음 2마디, 1도화음 2마디, 그리고 5도화음 2마디 또는 5도화음 1마디, 4도화음 1마디를 거쳐 다시 기본인 1도화음 2마디를 끝으로 마치게 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음악을 '블루스 형식의 음악'이라고 한다. 노예에서 출발하여 미대륙에 뿌리를 내린 아프로-아메리칸들이 자신의 음악인 영가나 가스펠 등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연주하는 하나의 문법으로 체득한 것이 바로 '블루스 형식'인 것이다. 재즈와 록도 이와 같은 블루스의 형식을 갖춘다. 록이 처음 만들어진 것 또한 블루스의 형식에 백인들의 정서를 얹어 놓은 것에 다름없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프리카 토속음악의 5음계가 존재했었고 여기에 서양음악과 만나면서 나머지 음계가 채워지게 된 것이다. 보통 블루스 음계는 C-D-Eb-F-G-Bb로 구성된다.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장조음계(Major Scale)의 E와 B가 아닌 토속음악의 5음계 중 Eb와 Bb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음화된 3도와 7도를 지니고 있는 경우를 '블루스 음계(Blues Scale)'라 부른다. 여기서 반음화라는 것은 거의 반음에 가까운, 혹은 반음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반음화된 음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서 혹은 감정과 연결된 문제이지만 악보상으로는 반음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반음화된 3도와 7도, 즉 C Major Blues의 Eb과 Bb, 혹은 D Major Blues의 F와 C와 같은 두 음을 '블루 노트(Blue note)'라고 부른다. 왜 블루 노트란 표현을 사용했는가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블루 노트라는 표현에서 블루스(Blues)가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따라서 블루스가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어두운 음악이라거나, 슬픈 현실을 노래한 애절한 음악이라든가 하는 일반적인 설명은 엄격히 말해 근거가 없는 말이다. 이러한 말이 나온 것은 전반적인 블루스 음악의 색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동양권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블루스는 12마디의 화음 조성 구조를 뜻하는 것이며, 일단 이러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음악을 '블루스 형식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형식을 지닌 음악이 블루스적이기 위해서는 블루 노트가 있는 음계를 사용하게 된다. 즉 블루스는 '형식'이지 '장르'는 아니라는 말이다. 블루스라는 장르는 존재하지 않지만, 흔히 말해지는 '장르'로서의 블루스는 블루스 형식과 음계를 사용하고 정서적으로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 특정 부류의 음악을 의미한다. 형식으로서의 블루스와 장르로서의 블루스는 일반적으로 구분되지 않지만, 이것은 시대가 변해 오면서 편의상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 학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블루스는 형식이다'라는 명제에 집중을 못했던 까닭은 블루스 장르들 중 유일하게 어번블루스(Urban Blues)만이 살아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블루스 음악을 듣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블루스 형식은 1880년대에 이르면서 흑인들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 현존하는 음악은 없지만, 1912년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진 W. C. Handy의 "Memphis Blues"가 최초의 악보이자 'Blues'라는 말을 공식화한 문헌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가나 가스펠 등이 블루스 형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1890년대나 1900년대에 이르면 거의 정점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가스펠과 블루스를 구분을 하는 요소는 정신적인 문제이다. 내용에 있어 블루스에서 더 이상 'God'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쉽게 말해 가스펠과 블루스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내용에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즈가 먼저 생겼고, 그 바탕 위에 블루스가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블루스라는 형식이 재즈보다 이전에 존재했고, 재즈가 태어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블루스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와 같은 일반인의 상식은 사실과 다르다. 아마 흑인들 사이에 블루스 형식이 정착되어 있지 않았다면 재즈는 지금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띄거나 상당히 늦게 태어났을 것으로 보여진다. 초기의 재즈곡들의 상당수는 블루스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초기 재즈 음악인들이 자신의 곡을 블루스 형식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고, 이것은 그들이 재즈 음악인이기에 앞서 넓은 의미의 블루스 음악인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학자들은 1900년대 초에 이미 장르로서 블루스가 존재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Early Blues'-재즈 비평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Delta Blues'-블루스 비평가들이 잘 쓰는 단어-라는 것들이 있다. 이들 음악은 대개 통기타 반주에 보컬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W. C. Handy의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나중에 'Country Blues'나 'Classical Blues'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Country Blues나 Classical Blues는 1920년대에 들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 사실이 재즈가 블루스 보다 먼저라는 학설을 만든 원인이다. 최초의 재즈 앨범은 1917년에 만들어졌지만, Country Blues나 Classical Blues 앨범은 1920년대에 들어와 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학설을 전면적으로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블루스 형식에 대한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 'Jump Blues' 혹은 'Shout Blues'라는 형태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음악과는 달리 드럼과 같은 리듬 악기들이 도입되면서 음악이 전체적으로 강해지는 흐름의 소산이었다. 특히 Jump Blues는 블루스 음악의 꽃이라 불려지는 'Urban Blues'- New Blues나 Chicago Blues도 같은 음악을 뜻한다-로 가기 위한 계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0년대에 들어 시카고를 중심으로 형성된 어번 블루스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블루스의 형태와 같다. 이때부터 일렉트릭 기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B. B. King, Bo Diddley, Sonny Boy Williamson 등이 한국 전쟁을 전후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시카고를 중심으로 어번블루스가 성행하고 있다. 이는 1940년대 이후 대부분의 블루스 음악인들이 시카고에 정착해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통 블루스 장르로는 유일하게 어번블루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음악은 반세기 전에 정착됐고, 그 수준이 정점에 달한 지 오래된 장르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명력은 이 음악을 연주하고 즐기는 흑인들의 정서에 그 원인이 있다.
장르로서의 블루스는 재즈와는 달리 보다 직설적이며 대중들의 심성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반영한다는데 차이가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흑인들의 사회적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백인들과 같은 사회적 상황을 누린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것들을 이해를 한다면 블루스라는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이해가 훨씬 쉬울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블루스가 가장 흑인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해 왔으며, 그들의 느낌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