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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mmy Awards(그래미상)

오작교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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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mmy Awards(그래미상)

 

미국가수들을 위한 잔치, 전형적인 제도권 포상

 

1966년 이후 잠잠하다가 한참만인 80년 그래미상을 품에 안은 허브 앨퍼트(Herb Alpert)는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피력했다.

“14년 전 나는 무거우리만큼 한아름 되는 그래미를 받고 쩔쩔맸었다. 그러나 그 후 단 하나의 그래미를 받기 위하여 이토록 오랜 세월이 소비될 줄은 몰랐다.”

약간 농기가 섞이긴 했지만 음악인에게 그래미상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인가를 적절히 시사해준 표현이다. 매년 한 차례씩 미국의 대도시를 돌아가며 성대히 거행되는 이 시상식은 모든 대중음악인들의 '꿈의 제전'이다. 그래미 수상의 기쁨은 영화인이 아카데미상을, 연극배우가 토니상을, TV 탤런트가 에미상을 받을 때의 기분과 같다. 이 상을 한번 타게 되면, 예술성을 공인 받는 명예 외에 간혹 안 팔리던 음반이 수상에 힘입어 판매고가 올라가는 실질적인 소득까지 얻는 이중 환희를 누리기도 한다.

 

그래미상 시상 주최기관인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 아카데미(The 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 Sciences 줄여서 NARAS)는 원래의 시상 목적인 '레코드업계의 발전'이 훌륭히 이룩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또 시상 근거가 객관적이고 공정하여 자연적으로 '권위'가 생겨났으며 미국 레코드업계만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예의 주시하는(지금은 독립국연합에도 시상식이 생 중계된다)세계적 행사임을 호언한다.

 

그러나 모든 훈장과 포상에는 뒷말이 있게 마련처럼 그래미상도 늘 잡음이 뒤따른다. 수상자 선정이 무난했다고 넘어간 적이 별로 없다. 시상식 무대가 빛이 찬란할수록 뒷무대는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그래미상은 해마다 수상부문이 늘어나 92년 2월 34회때는 74개 부문이나 되어 팝, 록, 리듬 앤 블루스, 컨츄리, 재즈 등 대중음악 장르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클래식 부문까지 포괄하여외형적으로는 '전체성'을 띠고 있다. 말하자면 어느 장르의 음악인이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면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포괄적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상이 지니는 인정범위가 너무 제한적이다. 말처럼 대중음악 전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래미의 핵이라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최우수 신인가수'등 4개 부문과 관련된다. 이 네 부문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모든 장르를 통틀어 해당 연도의 최우수작 또는 가수를 선정하는 것인데다 NARAS 회원전체의 총 투표로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다른 부문은 일부 회원 혹은 해당 장르의 위원회가 담당한다).


이 4개 부문 수상자를 보면 중요한 흐름이 나타난다. 그 흐름이란 '꼭 탈 만한 사람이 탄다'는 점이다. 탈 만한 사람은 젊은 가수보다는 나이든 가수, 외국 가수보다는 미국 가수, 록 음악 가수보다는 스탠더드 팝 가수라는 사실을 통계가 증명한다. 노래로 치자면 시끄러운 노래가 아닌 점잖은 노래 쪽이다.

 

그래미는 58년 NARAS가 창립되고 나서 이듬해인 59년부터 시상이 개시되었다. 이 기구를 만든 사람은 할리우드 미화위원회와 서부연안 지역의 레코드회사 사장들이었다. 콜롬비아사의 폴 웨스턴, MGM사의 제스 케이, RCA 빅터사의 데니스 파넌, 캐피톨사의 로이드 던, 테카사의 소니 버크등 5개 메이저 레코드회사 대표들이 그 면면들이었다. 레코드업계로 보면 '제도권 인사들'이 주축이 된 셈이고, 당연히 음악적으로는 당시 제도권과 기성 세대의 기호와 결탁한 스탠더드 팝을 지향했다. 창립된 후 첫 번째 만찬은 1958년 5월 비벌리 힐튼호텔에서 열렸는데 무대를 장식한 주인공부터가 프랭크 시내트라, 딘 마틴, 페기 리등 스탠다드 팝 가수들이었다.

 

그런데 1958년, 1959년이라면 엘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의 신세대 음악인 로큰롤이 전 미국을 강타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제도권적 스탠다드 팝 또는 백 밴드 음악에 길들여져 있던 NARAS 회원들이 '시끄럽기 짝이 없고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는'이 음악에 반감을 품은 것은 명백했다. 상업성과 대중성 배격의 미명 하에 로큰롤 가수의 수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대의 영웅 엘비스가 10년이 흐르도록 수상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전성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했을 즈음인 68년에, 그것도 주요 부문이 아닌 초라한(?) 종교음악 부문에서 그래미상 트로피를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엘비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와 쌍벽을 이뤘던 로큰롤의 거목 척 베리(Chuck Berry)는 단 한 차례도 그래미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 시대 록큰롤 백인 대표가 엘비스라면, 척 베리는 흑인 대표에 해당하는 사람이었고, 음악성으로는 엘비스보다 더 평가받는 실력파였다. 팝 관계자들은 엘비스와 척에 대한 홀대를 그래미가 저지른 치명적인 오점 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둘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로큰롤 가수 대부분이 그래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60년대 록 스타인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그룹 후(The Who)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세월이 흘러도 로큰롤이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대중음악의 총아로 부상하자 록 가수에게도 '시혜'를 베풀고는 있지만 양념으로 끼는 정도이며 대세는 여전히 스탠더드 팝 쪽이었다.

 

그래미의 배타성이 적용된 또 하나의 음악은 60년대 포크였다. 그 대표주자는 누가 뭐래도 밥 딜런(Bob Dylan)과 존 바에즈(Joan Baez)였는데, 둘 다 그래미로부터는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존 바에즈는 한 번도 못탔고 밥 딜런은 엘비스와 비슷한 운명에 처해 세대를 넘긴 80년이 돼서야 '최우수 남성 록 가수'로 시상식에 설 수 있었다.

 

록과 포크에 대한 거부는 그래미의 이념을 함축하고 있다. 록과 포크 두 장르는 대중음악의 양대 주축이면서 거기에 저항정신의 깃발을 꽂아 놓은 '사회성'음악이다. 그래미가 은연중 꺼렸던 것은 두 장르의 현실참여적 경향이었다. 그것을 '예술성'에 최고가치를 부여한다는 논리로 설명했다. 바로 이 점이 그래미의 '보수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좌우지간 저항적 색깔, 또는 정치색을 띤 가수치고, 그래미에 접근한 인물은 없다. 하물며 반체제 성향의 가수는 말할 것도 없다. 비틀즈 해산 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중 '비정치적'인 폴은 그래미상을 만질 수 있었으나(1972년 최우수 반주 편곡, 1975년 최우수 그룹) 정치색이 강했던 존은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존 레논에게 그래미가 하사된 때는 그가 죽고 나서인 1982년 유작 음반인 <Double Fantasy>가 '올해의 앨범'에 선정된 것인데, 만약 그 작품이 전처럼 정치적이었더라면 과연 수상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1984, 1985년 선풍을 일으켰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27회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성 록 가수'부문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도 그가 블루컬러의 대변자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미의 보수성은 외설을 싫어하는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약간이라도 선정성과 결부된 가수는 무조건 제외시켰다. 엘비스가 괄시받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 기성세대의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성(性)의 자유를 설파했던 60년대 말의 사이키델릭 그룹,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나 도어즈(Doors) 역시 인연을 맺지 못했다.

 

70년대의 양성적(兩性的) 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나 80년대의 섹스 여신 마돈나(Madonna), 섹스 폭격기 프린스(Prince)도 가공할 인기를 누렸지만, 그래미 수상 실적은 낙제였다. 그래미는 '품행이 방정한 가수'에게 주어지는 근엄한 상임을 어찌하랴.

 

참고로 1981년부터 1992년까지 수상내역을 간추려 본다.


■ 1981년: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최우수 신인가수'등 주요 4개 부문을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가 독점
■ 1982년: 킴 칸즈의 'Bette Davis eyes'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곡'을 수상. 명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올해의 프로듀서'등 5개 부문을 차지
■ 1983년: 미국그룹 토토(Toto)가 '올해의 레코드'등 주요 7개 부문을 석권
■ 1984년: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남성 록 가수'등 8개 부문을 휩쓸어 그래미상 사상 최다 수상 기록을 수립
■ 1985년: 티나 터너(Tina Turner)의 히트곡 'What's love got to do with it'가 '올해의 레코드', '여성 팝 가수', '여자 록 가수'등 4개 부문을 석권
■ 1986년: 아프리카 난민구호 자선 곡 'We are the world'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곡', '최우수 팝 그룹'등 4개 부문 석권
■ 1987년: 에이즈 퇴치 캠페인 송 'That's what friends are for'가 '올해의 곡', '최우수 팝 그룹'등 3개 부문서 영광
■ 1988년: 폴 사이먼 <Graceland>로 '올해의 레코드', U2가 <Joshua Tree>로 '올해의 앨범', 발라드 'Somewhere out there'가 '올해의 곡'을 각각 수상. 휘트니 휴스턴이 '여성 팝 가수상' 차지
■ 1989년: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이 '최우수 신인가수'등 3개 부문서 영예
■ 1990년: 보니 레이트(Bonnie Raiit)가 '올해의 앨범', '여성 팝 가수', '여성 록 가수'등 3관왕에 등극.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곡'은 베트 미들러(Bette Midler)의 'Wind beneath my wings'가 차지
■ 1991년: 베트 미들러의 'From a distance'가 '올해의 곡', 필 콜린스(Phil Collins)가 'Another day in paradise'로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 퀸시 존스는 <Back on the Block>으로 '올해의 앨범'등 6개 부문을 석권
■ 92년: 냇 킹 콜의 딸 나탈리 콜이 <Unforgettable>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등 7관왕을 차지

 

1980년대 이후의 경향은 백 인층에 어필한 흑인 가수들 이른바 크로스오버 가수들의 특세가 두드러져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티나 터너, 휘트니 휴스턴이 두각을 나타냈다. 남편의 학대를 딛고 일어선 티나 터너, 기아난민 자선곡의 아프리카를 위한 아티스트모임, 반에이즈 캠페인송을 부른 디온 워릭과 친구들, 마약을 극복하고 재기한 보니 레이트, 부친에 대한 효심을 어필한 나탈리 콜 등 '미담' 관련 주인공들이 환영을 받는 것도 특색. 백인이나 다름없는 크로스오버 흑인 가수들이나 도덕성에 호소한 인물들이야말로 보수적인 그래미상의 구미에 딱 맞았을 것이다.

 

저항가수인 록의 유투나 포크의 트레이시 채프먼이 수상하여 재량이 돋보였지만 판세는 역시 재래적인 스탠다드 팝이 쥐어 그것은 기껏 '이변'으로서의 화제에 머물렀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상업성과 대중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선곡들도 도덕을 포장했지만 실상은 완벽한 상업적 드라마나 다름없었고 마이클 잭슨의 싹쓸이는 전적으로 대중적 인기에 영향받은 것이었다. (엘비스나 비틀스, 롤링 스톤스가 1980년대에 열풍을 일으켰더라면 마이클처럼 무더기로 그래미를 안아봤을 텐데, 그들에게 애도의 뜻을...)

 

그래미가 상업적 측면을 강화한 것은 1960, 1970년대의 폐단을 제거시키려는 신사고적 의지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러한 수정주의는 '거폐생폐'(去弊生弊)의 역기능을 초래했다. 상업화 경향 때문에 두 차례나 망신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하나는 시네드 오코너(Sinead O'Conner), 다른 하나는 1990년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한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때문이었다.

 

오코너는 그래미 측이 음반판매고를 중시하고 있다는 데 반발, 수상을 보이콧해버렸고 시상식장에도 불참했다. 그의 수상 거부는 그래미의 상업성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기도 했다. 밀리 바닐리는 '수상 취소'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야기한 케이스였다. 바닐리는 'Girl, you know it's true' 'Baby don't forget my number' 등 빅 히트곡을 터뜨린 댄스뮤직 듀오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딴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입만 벌린 '가짜'였다. (그러면서도 <타임>지와의 1990년 3월 인터뷰에서 “우린 폴 매카트니나 믹 재거보다 재주가 있으며, 새로 탄생한 엘비스다!”라고 큰소리쳤으니 참으로 아찔하다). 허수아비에게 상을 준 것이 꼭 그래미상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니지만 '사기를 쳐서라도 히트곡을 내야 한다'는 상업적 팝 풍토를 방치한 '도덕적 책임'은 물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미가 지적받아야 할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세계의 팝 축전을 표방하면서도 외국 아티스트를 푸대접하는 '미국 민족주의'의 경향이다. 미국에서 생겨났고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이니 만큼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적극 살리겠다는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제나라인 영국가수들을 소외시킨 것은 해도 너무했다. 롤링 스톤스는 한 번도 못 타다가 1986년 '평생공로상'수상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마치 '재고정리'의 기분이 들게 했다.

 

1966년과 1967년 비틀스 전성시절인 두 해에 비틀스는 2개의 그래미를 탄 반면 프랭트 시내트라는 무려 5개나 석권했다. 그나마 1970년대의 최고스타 엘튼 존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다른 영국가수들은 이런저런 탈락의 이유에 고개를 숙일 만했지만, 그는 미국인 입맛에 맞는 노래를 빅 히트시켰고 정치성도 없는 특별한 하자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그래미상으로부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물론 영국출신이라는 국적이 중요한 하자라면 할 말이 없지만.

 

이미 나열한 1980년대 주요 수상 리스트를 보아도 영국가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미 4개 주요부문이 아니더라도 '신문의 수상 결과 발표기사에 적힐 정도'의 부문에 수상한 영국인이라 해봤자 시나 이스턴(Sheena Easton), 폴리스(The Police), 필 콜린스(Phil Collins),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샤데이(Sade) 그리고 아일랜드의 U2 등이 고작이었다. 필 콜린스가 1986년 3관왕 등 나름대로 성적이 좋았던 편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가수들은 그 때문에 미국의 그래미보다는 영국의 브릿 어워드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앵글로색슨 권역은 대우를 받는 실정으로 미국의 텃세는 그 외의 나라에 훨씬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 권 이외의 국가 출신 가수가 그래미상 4개 부문에 수상한 사례는, 그래미 첫 회인 1958년 이탈리아 가수 도미니코 모듀뇨(Domenico Modugno)의 'Nel blu dipinto di blu'가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이래 없었다.

 

이제 그래미가 '미국 가수를 위한 잔치'이며 전형적인 '제도권 포상'임을 알 수 있다. 외국가수라도 미국에 들어와 '미국화'되어야 기회를 넘볼 수 있으며 미국 안에서도 재야가수는 손 내밀기가 어렵다. 거기엔 냉혹한 보수주의와 미국 민족주의가 숨어 있다. 미국 중심이기에 배타적이고, 보수적이기에 음악의 새로운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질 있는 아티스트를 짚어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미상을 세계 음악인의 축제, 완전한 대중음악의 행사라고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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