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트럼페터 쳇 베이커 (Chet Baker)
쳇 베이커(Chet Baker, 1929. 12. 23. ~ 1988. 5. 13.)
어느 소설가는 쳇 베이커(Chet Baker)를 가리켜 '그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 재즈 비평가 아르노 메를랭(Arnaud Merlin)은 "제임스 딘과 같은 외모, 긴장이 풀린 듯한 스타일의 순수한 서정주의의 소유자로서 그는 데뷔당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신통치 않은 모방자로 취급받았지만 후에 루이 암스트롱 이후 최고의 즉흥연주가로 평가받았다."고 술회했다.
아마도 그의 음악과 생애를 아는 이라면 크게 공감할만한 대목일 듯. 이렇듯 쳇 베이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재즈에 바친 만큼, 그의 트럼펫 음색은 너무나 부드럽고 관능적이며, 목소리 역시 진실 어린 고백담처럼 들려온다.
또한 재즈사적으로 '50년대 초중반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쿨 재즈(Cool Jazz)'라는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29년 12월 23일 미국 오클라호마(Oklahoma) 주, 예일(Yale)에서 체스니 헨리 베이커(Chesney Henry Baker)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쳇 베이커의 일생은 자신이 주연을 맡은 '89년 [Let's Get Lost]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뮤지션으로의 꿈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쳇 베이커에게 트럼펫을 선물했고, 이후 트럼펫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게된다.
그러던 중 그가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게된 계기는 군 입대를 하면서 군악대에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하면서인데, 그곳에서 그는 전설적인 색서포니스트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알토 색서포니스트 폴 데즈몬드(Paul Desmond)와의 만남을 갖게되었고 이를 계기로 제대 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클럽 등지를 오가며 본격적인 프로뮤지션으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그는 평생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 약물중독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쳇 베이커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서부 재즈인으로의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알려진바 데로 당시(1940년대 후반) 재즈의 메카는 동부의 뉴욕이었다.
찰리 파커를 비롯한 유명 재즈인들이 자신의 활동무대인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여 공연 마치고 모두 떠날 즈음이면 밀려오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주체못하고 술과 약물 등으로 위로 받았던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방탕한 생활 속에 '52년 같은 서부 출신의 독보적인 바리톤 색서포니스트였던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과의 조우는 그에게 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 둘은 '헤이그(Haig)'라는 클럽에서 만나 역사적인 'Pacific Jazz Recording Sessions'에 참가했고, 이때의 호연으로 쳇 베이커는 평지와 팬들 모두에게 큰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50년대에 이르러 서부를 배경으로 일기시작 한 '쿨 재즈'라는 시류와 맞물려, 당시 쳇 베이커의 감성은 대단히 개성적인 스타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작으로도 유명했던 쳇 베이커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50년대 초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 쳇 베이커 퀄텟(Chet Baker Quartet)을 결성하여 유럽 순회공연을 가진 시기였는데, 이 시기 그는 특별한 기교나 실험성을 배제한 'My Funny Valentine'과 같은 로맨틱한 서정적인 곡들을 발표하여 최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50년대 후반이후 쳇 베이커는 알려진 바와 같이 마약중독으로 인해 패인과 같은 삶을 살게된다. 쳇 베이커 음악인생의 최고의 명연으로 인정받고있는 자신의 퀄텟으로 유럽 투어를 도는 중, '55년 10월 파리의 한 호텔에서 피아니스트였던 딕 트와르직(Dick Twardzik)이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자신도 이탈리아에서 마약 소지협의로 1년간 옥살이를 하게된다.
이후 쳇 베이커는 여러 페스티발이나 투어에 참여하지만 이미 정상적인 삶을 살기에는 그의 정신과 육체는 황폐해져 있었다. 병원과 감옥을 드나들였던 쳇 베이커는 급기야 '64년 3월 독일에서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당시 그가 Verve사에서 내놓은 음반들은 기존 팬들에게는 큰 실망감을 주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68년에는 5명의 갱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이빨이 거의 부러지는 등 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입게된다.
이러한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쳇 베이커는 '74년 재즈 계에 복귀하게된다.
[She Was Too Good to Me]('74), [Once upon a Summertime]('77), [The Touch of Your Lips]('79), [Blues for a Reason]('84)과 같은 훌륭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이제는 안정된 삶 속에서 숙성된 음악으로 팬들 곁에 자리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88년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호텔윈도우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하고 만다.
사망하기 직전 블루스 웨버(Bruce Weber)의 [잊어버리자, Let's Get Lost]라는 다큐멘터리에도 출현했으며, '89년 재즈 전문지 다운비트(Downbeat)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이후 '97년에는 [날개가 있는 듯이, As Though I Had Wings]라는 자서전이 발간되었다.
이렇듯 쳇 베이커는 자신의 음악처럼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생을 살다간 음악인이었다. 돌이켜보면, 이제까지 삶과 음악이 다르지 않았던 이들은 사후에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것은 대부분의 음악이 우리의 삶을 그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로맨스와 허망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상념들을 트럼펫과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한 쳇 베이커. 그의 진솔한 감성은 이후에도 영원히 수많은 음악팬들의 가슴을 따스히 보듬어 줄 것이다.
수록할 Album
01. The Voice Of
02. At The Forum Theater
03. The Crew and Co
04. Live From Florence
05. Resonant Ernotions
06. Zing
07. Chet
08. This Times The Dreams On Me
09. Beas Flat
10. Swing House With Gerry Mulligan Quart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