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의 쉘부르

  금발머리를 헤어밴드로 단정하게 말아올린 20대 초반 청순한 모습의 까트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가 부른 주제가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은 60, 70년대 수많은 젊은이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죠.

  이 영화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당시 우리 젊은이들이 유럽 특히 예술과 문화의 나라라는 프랑스의 낭만과 특유의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동경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죠. 

  쉘부르라는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70년대 서울 명동에 '쉘부르'란 이름의 음악감상 겸 경양식집이 있었죠.

   병맥주와 '멕시칸 사라다'라는 이름의 안주를 시켜놓고 작은 무대에서 가수들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레코드를 틀어주던 곳. 담배 연기 가득한 음침하던 그 장소가 70년대 한시절을 풍미하던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어니언스 등 이른바 통기타 가수들의 포크음악 산실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도 이미 유명했었습니다.



  이 '쉘부르'가 바로 한국 라디오 디스크 자키의 대부 이종환 씨가 만들어 운영하던 곳입니다. 73년 종로에서 음악감상실로 문을 열어 그후에 명동으로 장소를 옮겨 80년대까지 운영됐죠. 낯선 프랑스의 도시이름을 음악감상실 이름으로 내건 것만 봐도 참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당시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자유와 낭만을 구가할만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죠. 장발금지와 미니 스커트 착용금지 등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통기타와 생맥주, 포크음악으로 대변되는 자체문화를 생산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선 것이 바로 음악감상실 '쉘부르'였습니다.

   주인이던 DJ 이종환 씨는 숨막히던 시대에 이 '쉘부르'로 상징되는 유럽의 낭만적이고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갈망했던 것이죠. 그는 이 업소 운영도 운영이지만 주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디스크 자키로 70, 80년대에 걸쳐 명성이 자자했죠.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이종환의 음악살롱' 등 자기 이름을 내건 음악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이미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낮고 굵게 깔리는 저음에 조금은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는 강한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밤에 잠못 이루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안과 휴식을 선사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던 시절 청취자들이 오로지 편지로 사연을 적어 보내면 DJ가 그 내용을 읽어준뒤 틀어주는 신청곡을 들으며 가슴설레던 아날로그 시대의 진한 향수를 60대 이상들을 공유하실겁니다.



   쉘부르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고 그 업소를 만들고 운영했던 이종환 씨도 2013년 76세를 일기로 폐암으로 숨졌습니다. 그를 따르던 많은 후배 가수들도 이제 70줄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쉘부르'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후배가수들과 그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의 기억속에 자유와 낭만을 구가하던 70년대 청년문화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글출처 : SBS 이정은 기자님의 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