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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의 요점을 정리하는 서양 음악사 - 3

오작교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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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 고대, 중세, 르네상스 (3)

 

르네상스 음악(Renaissance music)이란 르네상스 시대의 서양 음악으로, 

일반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시대적 구분(14c~16c)과는 달리 

대략 1450년대 이후에서 1600년대까지의 음악에 대한 학문적 정의이며 분류이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원래 ‘고대 문화의 부흥’(Revival of ancient culture)을 의미하는데, 

미술이나 문학의 분야에서는 이 말이 대개 해당되나 음악의 경우는 

이러한 뜻에서의 르네상스 음악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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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르네상스 시대

 

 

1-4-1. 르네상스 음악

 

중세 가장 강력한 통치력을 보이던 프랑스가 15세기에 들어서면서 분열하기 시작했고, 1337년부터 영국과 100년 전쟁을 함으로써 프랑스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다전쟁으로 인해 프랑스가 둘로 분열되었는데 이로 인해 부르고뉴 백작(Comet Burgundy)의 권세가 커졌다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은 정치와 경제적으로는 큰 타격을 주었으나전쟁을 통한 문화 접촉이 이루어졌고 15세기 초에 영국 음악 양식이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었다부르고뉴 백작들은 많은 예술가를 후원해 주었기 때문에 15세기 전반부 유럽 음악은 이 지역 출신 작곡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르네상스 음악(Renaissance music)이란 르네상스 시대 서양 음악으로일반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시대적 구분(14c~16c)과는 달리 대략 1450년대 이후에서 1600년대까지의 음악에 대한 학문적 정의이며 분류이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원래 고대 문화의 부흥’(Revival of ancient culture)을 의미하는데미술이나 문학의 분야에서는 이 말이 대개 해당되나 음악의 경우는 이러한 뜻에서의 르네상스 음악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13세기는 중세 음악의 절정기였으며여기에서 이르는 절정이라는 말은 그 쇠락이나 새로운 흐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이러한 의미에서 1450년부터 160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음악사적으로도 르네상스라고 부른다엄밀하게 말하면 이 말은 중세 시대에 대한 고딕’(Gothic)이나 나중에 언급될 바로크’(Baroque)와 같이 미술사에서 빌려온 용어이다이 말의 문자대로의 의미는 재탄생’(Rebirth)으로서고대 문화의 부흥을 뜻하는 말이었다따라서 미술 등 문예의 경우에는 많은 부활을 보였지만음악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의 재탄생은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보다 넓은 뜻으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감정이나 개성에 눈을 떠서 합리적 사고방식이나 조화를 존중하고 명석함을 추구한다고 하는 사회·문화 발전에 걸쳐 볼 수 있는 시대의 특징적 정신이라는 점에서 생각할 때, 15세기 말에서부터 16세기의 음악에는 르네상스적인 현상”(renaissance phenomenon)이라고 할 만한 몇 개의 특징을 찾을 수가 있다이를 보다 구체화시키면 넓은 의미의 르네상스는 인간 정신의 재탄생으로서 인본주의적 예술 창작 태도(Humanistic artistic attitude), 조화 및 비례의 중시(Focus on harmony and proportion), 합리적인 기법의 탐구(Exploring rational techniques), 명확한 표현(Clear expression) 등이 그 중심 내용이므로 음악에서의 이런 양식상의 특징(Stylistic feature)이 확연히 나타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음역(musical range)이 현저히 넓어지고새로운 음의 공간(New sound space)이 개척된 것은 회화에 있어서 원근법(perspective)과 비길 수 있으며악보 인쇄술의 발명(Invention of musical notation printing)이나 정량 기보법의 보급(Dissemination of quantitative notation)은 르네상스의 과학 정신과 관련된다실제로 이 시대의 음악 작품에는 표면적인 음의 넓이(音域)가 확대되고이에 따라 새로운 음()의 양태적인 공간(空間)이 개척되었는데이는 회화에서의 원근법 탐구에 비견될 수 있을 만한 진보였다또한 이에 더하여 악보 인쇄술의 발명정형적인 흑백(黑白기보법의 보급전통에 구애되지 않는 새로운 음악 이론(New Music Theory)의 탄생 등은 르네상스 정신의 큰 특징인 합리성이나 표현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경향의 출현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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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르네상스의 정신은 이미 14세기의 아르스 노바(Ars Nova)에도 나타나 있으나특히 플랑드르 악파(Franco-Netherlandish school)로 통하여 죠스캥 데 푸레(Josquin des Prez, 1445-1521)의 음악에서 뚜렷한 형태를 취하여 나타났다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들은 전 유럽에 걸쳐 활약하였고그들의 성악 다성의 작곡법(Composing polyphonic voices)은 르네상스 음악의 중심적 양식이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대위법적인 복잡한 기법(Complex counterpoint techniques)은 르네상스 음악에서는 단순한 기교를 위한 기교가 아니라 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 표현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의 요소는 첫째르네상스의 단어적인 의미가 서유럽 여러 나라의 시민 계급(Civil class)을 중심으로 일어난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철학과 예술(Philosophy and the Arts)에 대한 관심의 문예부흥 운동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둘째르네상스의 어원은 중세 말에 대한 고딕이나 바로크와 같이 미술사에서 빌려온 용어로서 문자대로의 의미는 재탄생으로서 고대 문화의 부흥을 뜻한다셋째역사적 배경은 음연(音淵넓이)이 현저히 넓어지고새로운 음공간이 개척(창출)된 것은 회화에 있어서 원근법과 비길만하며악보 인쇄술의 발명과 정량 기보법의 보급은 르네상스의 과학 정신과 관련되어 있었고이러한 사회적 기운은 음악에서 세속 음악(Secular music)과 다성 음악 (Polyphonic music) 그리고 기악instrumental music)의 발달을 촉진시켰다넷째음악적 특징은 3성부의 다성 음악(polyphonic music), 모방 대위법(Imitation counterpoint), 찬송가 형태의 작곡 기법(Hymn-type composition technique) 등이 확립이 되는 시기였다.

 

16세기에는 음악의 중심이 점차로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옮겨져여기서부터 르네상스 정신(Renaissance spirit)은 수많은 꽃을 피우기에 이르렀다미사(Mass)이나 모테트(motet)를 비롯하여 각종의 세속 합창곡(Secular choir)이 번성하였으나그와 동시에 오르간(organ)이나 류트(lute) 등의 기악 음악(Instrumental music)도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이 기악은 바로크 이후의 음악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6세기 말에는 각종 극음악(Polar music)이 시도되었는데이들은 17세기 바로크 음악의 성립과 발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플랑드르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음악의 영향 아래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의 음악도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보였다일반적으로 말하여 르네상스 음악(Renaissance music)은 플랑드르 악파의 폴리포니(Polyphony)에서 볼 수 있는 북방적(Northern enemy)이며 고딕적인 요소(Gothic element)와 이탈리아의 마드리갈(Madrigal) 등에서 볼 수 있는 남방적이며(Southerly) 라틴적인 요소(Latin elements)와의 결합에서 성숙하였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의 음계는 8개의 교회 선법을 전적으로 사용했었으나 이 시기에는 더욱 세속 음악이 번성해짐에 따라 현재의 장음계와 단음계를 닮은 음계가 애호되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이러한 풍조는 플랑드르 악파의 후반 경부터 16세기의 음악에서도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어 이와 같은 실정 아래 스위스의 음악 이론가인 하인리히 로리티 글라리안(Heinrich Loriti Glarean, 1488-1563)은 그의 저서 12음계론(Dodekachordon)(1547)에서 새로운 이오니아 정격(正格(do)에서 다(do)까지의 음계)과 그 변격(變格), 에올리아 정격((la)부터 가(la)까지의 음계)과 그 변격의 4개 선법을 인정하여 모두 12개 선법을 주장하였다이 새로운 선법은 장·단조로 전화(轉化)함으로써 옛날부터의 모든 선법을 차차 소외시켜 마침내는 지배적인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있어서 음악은 그 어떤 시기보다도 많은 음악이 작곡되고 연주되어 음악가들은 전보다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마침내 위대한 작곡가’(Great composer)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또한 음악에 관한 새로운 종류의 이론 서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르네상스 기간에 있어서 음악의 성장에 관련한 가장 큰 공로 중 하나는 바로 음악 인쇄의 시작일 것이다또한 16세기 초에는 음악을 작곡하는 기()법에 변화가 이루어졌는데이는 지금까지 대체로 한 성부씩 작곡하는 성향을 보여 왔으나이 시기부터는 여러 성부를 하나의 전체로서 동시에 생각해 내고 쓰기 시작하여 총보(Score)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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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음악적 특성으로서 지배되던 중세의 이상적인 음향은 3성부의 대조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 반면르네상스의 이상적인 음향은 같은 종류의 비슷한 음색과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 넷 이상의 성부로 이루어진 무반주 성악 앙상블(Unaccompanied vocal ensemble)로서의 아카펠라’(Acapella)이었다이 시대는 모방 기법의 체계적 고용으로 각 성부들은 모방 대위법의 짜임새 안에서 동등하게 음악적 동기(Musical motive)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각 성부들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음악은 가사에 더욱 밀착되어 가사의 의미를 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음화(Tone painting)로서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라고 부르는 형식이 되거나 가사에서 더욱 독립되어 기악 음악을 대두시켰다.

 

다시 말하면 중세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로마 가톨릭의 예배 음악(Roman Catholic worship music)으로서 중세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의 표현인 동시에 넓게는 서양 음악의 원천으로 최초의 고전 음악이라 할 수 있다그리하여 르네상스 시기에는 성악 음악이 기악 음악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언어에 있어서의 인문주의적 관심(Humanistic interest)은 성악 음악에도 보다 큰 영향을 미쳐 말과 음악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이루게 되었다르네상스 작곡가들은 음악을 가사의 의미와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작곡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중세의 작곡가들은 가사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훨씬 적은 관심을 가졌던 데 반해르네상스 작곡가들은 종종 가사 그리기 기법(Lyrics Drawing Techniques)을 사용했던 것이다이것은 가사가 지니는 시적 이미지를 음악(소리)으로 나타내는 기법을 말한다예컨대 천상으로부터 떨어짐이라는 가사를 하강하는 선율선(Melodic line)으로 나타낸다든지, ‘달리기라는 말을 빠른 음표(Quick note)들의 연속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르네상스 음악의 짜임새는 다성 음악이 주를 이루며따라서 전형적인 합창곡 유형은 성부 간에 거의 동등한 선율적 중요성을 갖는 4성부 혹은 5/6성부의 음악이다르네상스 음악은 중세 음악에 비할 때보다 보다 들어찬 음향을 이루었으며베이스 음역(Bass transliteration)이 처음 사용됨으로써 곡의 음역이 4옥타브 이상으로 확대되었고베이스 선율(Bass melody)을 강조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화성(和聲)을 낳게 되었다작곡가들은 개별적인 선율선 뿐만 아니라 화음(Chinese pronunciation)을 고려하기 시작하였다중세에는 하나의 선율선을 먼저 완성하고 난 후에 비로소 그 위에 또 다른 선율선을 추가하였고그 결과 전체적인 화음 효과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이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이 시대에 있어 최초로 언급해야 될 작곡가는 플랑드로 악파의 거장인 요하네스 옥케켐(Johannes Ockeghem, 1430-1495)으로 음악 창작에 관계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착상을 고안해냈다이외에도 이른바 르네상스의 모차르트로 칭송되는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 함축된 음악)의 선구적 역할을 한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종교 음악의 대가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4- 1594)오를란도 디 라소((Orlando di Lassus, c. 1532-1594)그리고 영국이 낳은 최고의 음악가인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3-1623) 바로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베니치아 악파(Venetian School)의 거장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c. 1554/1557-1612) 등이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다그 중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불리어진다.

 

르네상스 음악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정리하면 첫째, 4선법이 첨가되어 12교회 선법이 사용되었고둘째는 무반주 합창곡(A cappella)이 많이 작곡되었으며셋째는 음악 예술이 교회를 떠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넷째는 자유로운 대위법으로 작곡된 세속 가요들이 많았으며다섯째는 로마 악파가 대두되면서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는 복잡해진 대위법을 단순화하는 등 종교 음악에 많은 업적을 세웠고마지막으로는 독일의 경우 오를란도 디 라소가 불협화음과 선율의 대비를 과감하게 사용하였는가 하면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독일 특유의 코랄(Choral)이 신교회의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주요 용어

 

아로스 노바 (Ars Nova) :

아르스 노바라는 말은 13세기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에 대응되는 것으로 1320년경에 나온 작곡가 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 1291-1361)의 논문 제목에서 유래했다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는 아르스 노바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로 자신의 논서 아로스 노바(Ars Nova)에서 신()음악의 리듬 기보(Rhythm notation) 혁신들을 제시하고 있다. 13세기 후반을 장식했던 중세 후기의 작곡가로 분류되는 피에르 드 라 크루아(Petrus de Cruce, c. 1260-1302 이후)의 음악에서 이미 조짐을 보인 이러한 개혁들의 특징은, 3박자가 주를 이루었던 이전 시대의 리듬 양식(Rhythm form)을 탈피하였다는 것과 보다 작은 단위의 음표들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의 진보적인 생각에 반대했던 중요한 인물로는 당대의 저명한 음악 이론가였던 자크 드 리에주(Jacques de Liège, c. 1260-1330 이후)가 있었다.

 

자크 드 리에주(Jacques de Liège)는 음악의 거울(Speculum musicae)에서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 대가들의 장점들을 칭찬하고 있다새로운 양식으로 씌어진 최초의 작품들은 1315년경에 나온 로망 드 포벨(Roman de Fauvel)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 책은 이야기체로 된 필사본으로 아르스 노바(Ars Nova)와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당시 아르스 노바(Ars Nova)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는 주교이며 음악 이론가이기도 했던 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와 중세 말의 마지막 트루바두르(Troubadour) 세대이며 작곡가인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c. 1300-1377)를 들 수 있다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의 작품은 당시의 현존 아르스 노바 음악의 중추를 이루었다발라드(Ballard)·론도(Rondo)·비를레(Virele)로 대표되는 다성 세속 음악(Polytheistic Secular music)은 14세기에 접어들면서 엄청나게 증가했다.

 

아르스 노바(Ars Nova)라는 말은 14세기 프랑스 음악을 특별히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지만이탈리아 트레첸토 음악(Italia Trechento musica)으로도 지칭되고 있는 이탈리아 아르스 노바’(Italia Ars Nova)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이탈리아 아르스 노바 악파(Ars Nova school)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는 마르케투스 데 파도바(Marchettus de Padua, c. 1274-fl. c. 1305-1319 이후중세 063 게시물 참조)인데, 14세기 초에 저술한 그의 논서 Pomerium은 당대 이탈리아 음악의 리듬 개혁을 개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4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는 야코포 다 볼로냐(Jacopo Da Bologna, fl. 1340c. 1386),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 1325-1397), 기라델로 다 피렌체(Ghirardello de Firenze, 1320-1362)를 들 수 있다.

 

무지카 레세르바타 (Musica Reservata, 보류 또는 함축된 음악) :

하드리아누스 페티 코글리코(Adrianus Petit Coclico, 14991562 이후)는 자신의 제자로 추정되는 죠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의 음악적 가르침에 관계를 하고음악의 간추림 (Compendium musices)에서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의 개념을 이끈다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는 문자 그대로는 남겨둔” 또는 보존된 음악이란 의미로, 1552년부터 1625년에 걸쳐 있는 15개 정도의 자료에 나타난 음악 용어이다이 자료들은 보편적으로 그 말뜻이 1550년대부터 나타난 급진적인 음악으로서 일부 식자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시사한다이처럼 무지카 리세르바타(Musica reservata)에 관한 자료가 동일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무지카 노바(Musica nova)에 관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많기는 하지만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여러 각도에서 언급되었던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의 특성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즉흥적이거나 매우 장식적인 음악으로서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란 용어는 플랑드르 작곡가인 아드리아누스 코클리코(Adrianus P. Coclico, 1500-62)의 모테트 모음집(1552제목으로 처음 나타나는데같은 해에 출판된 그의 저서인 음악의 간추림 (Compendium musices)과 1594년 그의 사후에 출판된 음악 이론서 초보자를 위한 음악 개론(Compendium musices Practicae pro incipientibus)》 등을 통해 그 용어의 뜻을 살펴볼 수 있다작곡가 하드리아누스 페티 코글리코(Adrianus Petit Coclico)는 자신의 저서인 전자의 서문에서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라고 부르는 음악을 조명해 보는 것이 저작의 목적이라고 밝힌 다음본문을 대부분 즉흥적인 대위법(Impromptu counterpoint)과 장식적인 음악(Decorative music)에 관해 할애하고 있다그는 이 음악들이 대위법의 규칙을 따른 전통적인 음악과는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그의 장식적인 음들에 대한 연구는 수사적 표현과 깊은 관련이 있고 또 그의 모테트를 통해서도 실제로 그런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둘째로는 무지카 노바(Musica nova)와 관련하는 동일한 개념으로서 정의에 대한 함의가 필요하다동시대의 플랑드르 음악가이며 동시에 수학자와 점성가이기도 했던 장 테스니에(Jean Taisnier, 16세기 중반에 활동)는 보수적 입장에서 그 당시 논란의 대상이던 이 새로운 음악을 다각도에서 비판했다그런데 현존하는 그의 글 가운데서 특히 중요한 역사적 정보로 취급되는 것은 그 새로운 음악이 무지카 노바(Musica nova) 또는 레세르바타(reservata)로 불린다고 언급된 대목이다다시 말해 이 두 용어가 같은 뜻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강력한 수사적 표현을 특성으로 하는 음악으로서의 정의가 그것인데, 16세기 후반의 인본주의 학자로서 독일 뮌헨(Munich)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사무엘 마리아 폰 퀴켈베르그(Samuel Maria Von Quickelberg, 1582-1646)는 1460년경에 출판된 오를란도 디 라소(Orlando di Lasso)의 참회시편 모테트곡집(Lasso : Penitential Psalms Nos. 1-7)의 서문에서 그 음악들을 극찬했는데이 서문은 또한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와 수사적 표현(Rhetorical expression)을 직접 관련시킨 유일한 자료로 주목받아온 것이기도 하다사무엘 마리아 폰 퀴켈베르그(Samuel Maria Von Quickelberg; 그는 라소의 첫 전기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이 서문에서 그 음악들이 레세르바타(reservata)로 불린다는 것과또한 그런 이유가 거기에 나타난 개인적 감정의 강력한 표현력과 가사 전달의 생생함”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하지만 그는 레세르바타(reservata)와 관련하여 작곡가 오를란도 디 라소(Orlando di Lasso)의 특별한 작곡 기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어 오기도 했다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당시에 있어서의 가사와 음악과의 밀접한 관계는 이미 레세르바타(reservata)라고 불리어진 음악에만 국한된 특성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넷째로는 새로운 리듬 기법(New rhythm technique)을 수반한 음악으로서 설명되고 있는데, 1571년에 씌어진 무명의 한 이론서 브장송 논문(Besançon Treatise)에서는 무지카 레세르바타의 특성으로 끊어짐 없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음악의 흐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일부 학자들은 그 특성이 곧 16세기 음악의 전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는 이유로 그 이론서를 고려하지 않은 반면에다른 한편에서는 그 글의 뜻을 좀 더 주의력 있게 풀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후자의 주장에 따르면그 논설에서의 이러한 개념적 정의는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의 또 다른 중요한 특성으로서 이해되는 동시에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리듬 기법의 극단화를 시사(示唆)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이를 뒷받침하는 예로서 실제로 중간 종지(Middle cadence)는 물론 끝부분에서 휴지(Rest)의 겨를조차 없이 리듬적으로 진행감이 유지되면서 선법의 종지음(Cadence) 조차 나타나지 않는 예외적인 음악들이 있다는 데 있다.

 

다섯째로는 반음계적 음악(Chromatic music)으로서의 개념이다무지카 노바(Musica nova)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의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는 반음계적 음악을 뜻하는 말로도 쓰였는데이 용도는 그 뜻풀이에 혼돈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일차적인 자료들에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또한 반음계적 진행이 새로운 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었음은 그것이 여러 자료에서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특히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와 무지카 노바(Musica nova)가 같은 유형으로 언급되었던 것에서도 공통적인 특징으로 강조되었다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는 실내 음악 또는 독주 음악으로서의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가 지닌 특성이 되겠다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는 광의적으로 교회 음악과 구별되는 실내 음악이며협의적으로는 합주 음악과도 구별되는 독주 음악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실내 음악이라는 뜻으로서의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는 그 당시의 문헌에 대한 엇갈린 해석과 그에 따른 논쟁으로 인해 근거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단지 1550년대에 씌어진 한 편지에서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가 실내 음악으로 추측되어 있는 것이 현재로는 가장 유력한 증거로 남아있는 실정적인 자료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따라서 독주 음악’(monodia)으로서의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는 이 용어에 대해 제일 늦게 붙여진 뜻풀이로 르네상스 말기와 바로크 초기에 걸쳐 언급된 것이었다즉흥적 연주는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특성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또한 16세기 중엽에 이미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의 특성으로 시사되었던 증언이기도 하다(이상의 내용은 김미옥의 무지카 노바무지카 레세르바타세콘다 프라티카는 과연 다른 것인가?에서의 내용 일부를 가져왔음을 밝혀둔다)

 

플랑드르 악파 (Franco-Netherlandish school, Franco-Flemish school, Netherlands school) : 

1450~1550년경 유럽 음악을 지배한 악파로서 음악사적으로는 흔히 “Franco-Netherlandish school”, “Franco-Flemish school”, “Netherlands school”라고 지칭한 중세 말과 르네상스기를 잇는 매우 중요한 음악 조류였다당시 대부분의 중요한 음악가들이 네덜란드플랑드르북부 프랑스 지역에서 태어나거나 훈련받은 데서 이 악파의 명칭이 유래했다이 악파의 음악은 성악 위주이고 개별적인 선율선(Melodic line)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의미에서는 다분히 대위법적이다당시에는 무반주 합창 음악으로서 아카펠라(Acappella)가 더없이 이상적인 음악적인 형태였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악기에 의해 반주가 동반되는 경우도 잦았다.

 

이 악파의 주된 장르(genre)는 종교 음악으로서 미사곡과 모테트가 중심이었고이 음악의 성향은 다성 음악으로 형성된 프랑스 노래이며 세속 음악인 샹송(chanson)이었다요하네스 오케켐(Johannes Ockeghem, c.1430-c.1497)의 미사곡들과흔히 부르고뉴 악파(Burgundian School)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알려진 기욤 뒤 파이(Guillaume Dufay, C. 1397/1400-1474) 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3성부 대신 4성부가 흔히 쓰였고, 16세기에 들어서는 차츰 5성부 또는 6성부도 많이 쓰이게 되었다이들 작곡가들의 음악은 지속적인 대위법적 음조직(Counter- legal tone)이 주를 이루되간혹 2~3개의 성부로 된 짧은 수직 화음(Short vertical chord) 부분으로 다양성을 꾀하기도 했다. 16세기 초에 이르면 특히 모테트에서 선율 모방 기법(Melody mimic technique)이 자주 구사되었다.

 

이들 세 양식 중 미사곡(Missa)이 옛 관습을 가장 많이 고수한 반면에모테트(motet)는 표현을 위해 좀 더 많은 수단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를 붙이는 데 신중하고 단어의 의미를 음악적으로 나타내려고 했다이러한 점에서 모테트는 인문주의적인 영향을 뚜렷이 나타낸 장르로 인식된다이러한 특징은 몇몇 작곡가의 음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데이중 가장 대표적인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의 곡은 신비스럽고 복잡했던 전 세대 작곡가들의 후기 중세적인 성격과이보다 훨씬 뒤인 16세기 후반의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성향 사이를 연결해준다.

 

한편으로 중세 시대의 캉소(canso)를 계승한 샹송(chanson)은 리듬이 강조된 대중적 성향의 선율과 실험 정신대중적 요소와 대위법적 기술의 혼합명확하고 짤막한 악구보다 근대적인 화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하였다. 16세기 중반에는 음악의 민족지적인 양식이 발전했고이에 따라 당시까지도 계속된 플랑드르 악파(Flemish school)의 음악 전통도 종종 민족적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는데스페인의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Tomás Luis de Victoria, c. 1548-1611)와 같은 작곡가의 모테트가 그 좋은 실례가 된다벨기에 태생의 오를란도 디 라소(Orlando di Lasso, 1532-1594)와 같은 플랑드르 작곡가들은 당시 플랑드르의 국제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적 특성의 양식도 능숙하게 사용했다플랑드르의 음악 기법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세속 노래에도 적용되었고그 결과 원래 전혀 다른 성격에서 출발한 이탈리아의 마드리갈(Madrigal) 양식에도 곧 뚜렷하게 영향을 미쳤다마드리갈은 바로크 시대까지 계속 불렸다.

 

마드리갈 (Madrigal) :

15세기에는 쇠퇴하여 거의 사라졌으나 16세기에 다시 융성하여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반에 각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마드리갈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라틴어 기원의 마트리칼레’(matricale; ‘모국어라는 의미로서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어로 된 가사라는 뜻이었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4세기의 마드리갈은 각각 7~11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3개의 행이 모여 만들어진 연()이 2~3개 연결된 것과 같은 비교적 일정한 형식의 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음악적으로 볼 때 대개 두 개의 성부로 구성된 다성 음악(성부가 하나 이상인 음악)이며음악 형식이 시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전형적인 2연 마드리갈과 같은 ‘AAB’ 형식으로 먼저의 2연을 같은 음악으로 부르고 난 뒤에(AA) 1~2행의 코다(coda; 악장이나 악곡의 최후를 끝맺는 부분으로 결미구(結尾句또는 종결구를 의미한다)로 종지를 하는데(B), 이 코다의 가사 내용에서 전체 시의 의미를 요약한다새로운 형태의 서정시로 마드리갈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피렌체(Firenze)에서 14세기의 가장 위대한 마드리갈 작곡가인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가 등장했다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의 마드리갈과 동시대의 작곡가들인 조반니 다 카쉬아(Giovanni da Cascia, 1436-1476), 야코포 다 볼로냐(Jacopo da Bologna, fl. c. 1340- 1386) 등의 마드리갈이 유명한 채색 필사본인 스콰르찰루피 필사본’(Squarcialupi Codex)에 수록되어 있다.

 

15세기의 대부분은 북부 프랑스와 네덜란드 출신의 외국 거장들이 이탈리아 음악을 이끌었다그러나 15세기 후반에는 피렌체와 만토바(Mantova) 귀족들의 후원 아래 이탈리아 고유의 음악 전통이 다시 부흥하게 되었고피렌체의 축제 노래와 만토바의 프로톨라(flottola; 마드리갈과 유사한 세속 성악곡의 일종)는 16세기 마드리갈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16세기 마드리갈은 이전의 것과는 다른 시 형식에 바탕을 두었으며 노랫말의 문학적 수준이 높다. 16세기 마드리갈은 역시 같은 이름으로 불렸던 시에 음악을 붙인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형식의 시()인 칸초네(canzone), 소네트(sonnet), 세스티나(sestina), 발라타(ballata) 등에 곡조를 붙인 것도 있다마드리갈 고유의 시 형식은 일반적으로 자유로우며 칸초네(canzone)의 1연 형식과 비슷한데대개 7~11개의 음절을 가진 행이 5~14개가 모여서 이루어지며마지막 2행은 운을 맞춘 2행 연구이다이 시대의 마드리갈 작곡가들은 주로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 1375, 야코포 산나차로(Jacopo Sannazzaro, 1458-1530), 피에트로 벰보(Pietro Bembo, 1470-1547), 루도비코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474-1533),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 조반니 바티스타 구아리니(Giovanni Battista Guarini, 1538 -1612)의 시를 선호했다.

 

새로운 마드리갈의 음악 양식은 14세기 마드리갈과 달리 점차적으로 시적 형식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16세기 초 마드리갈은 프로톨라(Flottola)의 단순한 동성(同聲음악 양식(화성적인 양식)에 상당히 가까워졌지만이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프랑코-네덜란드 악파(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들이 구사하던 다성 음악 양식(Polyphonic music style)의 영향을 받아서 더욱 대위법적인 형식을 취하게 되면서 여러 개의 선율을 이리저리 엮어서 사용하게 되었다따라서 가사도 대위법적 선율에 따라 단음절 양식(노랫말 1음절에 1음씩 대응되는 양식)에서 과음절과 다음절 양식으로 바뀌었다.

 

이들 초기 마드리갈의 2가지 양식은 16세기 마드리갈 작곡가의 제1세대인 코스탄조 페스타(Costanzo Porta, 15281601), 필리페 베르들로(Philippe Verdelot, c. 1480/1485fl. c. 1530-1545), 자크 아르카델트(Jacques Arcadelt, 1500-1568), 아드리안 빌라르트(Adrian Willaert, 1480-1562)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이 중에서도 코스탄조 페스타(Costanzo Porta)와 필리페 베르들로(Philippe Verdelot)의 주요한 작품들은 음악사적으로 처음 로마에서 출판된 마드리갈 작품집(1530)에 수록되어 있다아드리안 빌라르트(Adrian Willaert)와 그 제자인 치프리아노 데 로레(Cipriano de Rore, 15161565)는 감각적인 가사의 섬세한 사용과 극적인 표현회화적인 어휘의 도입을 통하여 당대의 마드리갈을 한 차원 위로 올려놓았다.

프로톨라 (Flottola) :

최상 성부에 선율이 있는 4성부 구성이 일반적이었으며 무반주로 연주하거나 기악 반주에 의한 독창으로 연주했다수직의 화음적인 짜임새와 명료한 리듬을 지니며보통 3/4박자나 4/4박자로 되어 있었다성악 성부의 음역은 좁고 반복이 자주 나타나며양식적으로는 단순해서 보다 세련되고 복잡한 당대의 다른 음악과 대조된다프로톨라(flottola)는 1530년경에 나타나며 이어지는 16세기 마드리갈의 직접적인 모체가 되었는데민속적인 선율이 종종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귀족의 여흥을 위한 음악이었다만토바 궁정(Mantova court)에서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 1474-1539)의 후원 아래 꽃피었으며이러한 음악의 경향은 페라라(Ferrara)와 우르비노(Urbino)와 같은 다른 북부 이탈리아의 궁정에서도 유행했다중요한 프로톨라의 시인으로는 세라피노 달라퀼라(Serafino Dell'Aquila, 1466-c. 1500)가 있으며프로톨라의 작곡가로는 바르톨로메오 트롬본치노(Bartolomeo Tromboncini, 1470 c. 1535)와 메르케토[마르코카라(Marchetto[Marco] Cara, c. 1465-c.1525)를 꼽을 수 있다대체로 문학적 가치는 별로 없는 프로톨라의 가사는 1연 6행의 여러 연으로 구성되며 매 연마다 동일한 음악을 사용한 4행 후렴이 붙는 것이 전형적인 구조로 전해지고 있다.

 

칸초네 (canzone) :

18~19세기 음악에서는 서정적 노래나 노래풍의 기악곡을 뜻했다. 16세기의 성악 칸초네는 자유로운 음악 형식과 문학적인 가사가 특징이었다. 16세기 말에 칸초네와 그 작은 형태인 칸초네타(canzonetta; 소가곡)는 마드리갈보다 음악과 가사가 다소 가벼운 다성적인 음악 작품을 뜻했고중반기에 유행한 칸초네 빌라네스케(Canzone villanesque; 시골의 노래)도 여기에 포함되었다기악곡으로서의 칸초네는 당시 이탈리아에 칸초네 프란체세(Canzone Frances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다성 샹송(Polyphonic Chasong)으로부터 형식을 취해왔고실제로 초기의 칸초네(Canzone) 중 상당수가 샹송을 기악곡으로 편곡한 것이었다이들 곡에는 다성적인 것과 화성적인 구성(짜임새부분이 번갈아 나왔으며대개 시작의 동기는 동일한 음높이를 가진 장음 1개와 단음 2개로 구성되었다칸초네의 중심지는 계속 이탈리아였지만독일 등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16세기 말에는 건반 칸초네(Key Canzone)와 기악 합주 칸초네(Instrumental ensemble Canzone)라는 2가지 변형이 생겼다그중 건반 칸초네는 기존의 것보다 다성 음악적인 성격이 강했고 단일 주제를 자주 취급했다는 점에서 이후에 나타날 푸가 형식(Fugal type)을 예견하게 했다그리고 실제로도 17세기 초의 독일 칸초네’(Canzone)는 푸가’(Fuga)와 동의어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이 형식을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카바초니(Girolamo Cavazoni, 1520-1577),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10-1586), 클라우디오 메룰로(Clandio Merulo, 1533-1604),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와 독일의 요한 야코프 프로베르거(Johann Jacob Froberger, 1616-1667) 등을 들 수 있다건반 칸초네(Key Canzone)가 구성(짜임새)의 통일성을 강조했던 반면에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7-1612)와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의 합주 칸초네(ensemble canzone)는 대조적 템포(Contrast tempo), 박자(beat), 리듬(rhythm)이 특징이었으며 이 형식은 궁국적으로는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실내악 장르인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로 발전했다. 17세기 중반이 가까워지자 합주 칸초네(ensemble canzone)는 여러 개의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진 형태에서 점차 4악장의 구성을 갖춘 체계적인 기악곡으로 바뀌어갔다이 새로운 형태는 대개 2개의 고음 악기와 2개의 베이스(저음악기로 편성되었고트리오 소나타 중에서도 교회 양식에 해당하는 것은 소나타 다 키에사(sonata da chiesa)라고도 불렀다그러나 칸초네(Canzone)라는 용어는 여전히 푸가 양식으로 된 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소네트 (sonnet) :

소네트는 프로방스 트루바두르들(troubadours provençal)의 사랑 노래에 영향을 받은 시칠리아 궁정시인들(Sicilian court poets)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이 시 형식이 곧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토스카나(Toscana) 지방으로 전파되어 이곳을 중심으로 14세기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의 시를 통해서 가장 세련되게 표현되었다. 317편의 소네트로 된 그의 연작시집으로 시집(Canzoniere)은 그의 이상화된 연인 라우라(Laura)에게 보내는 연시(戀詩)의 모음으로서이 시의 창작을 계기로 이탈리아(페트라르카)풍 소네트가 정착되고 완성되었다이탈리아풍의 소네트는 소네트 형식 중 가장 널리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영국(셰익스피어)풍의 소네트와 더불어 2대 소네트 형식으로 꼽힌다이탈리아풍의 소네트에 있어 그 특색은 주제를 2가지 분위기로 다루는 점에서 요약된다첫째, 8행 연구(八行聯句; octave)의 경우는 문제를 진술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또는 정서적인 긴장을 표현한다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6행 연구(六行聯句; sestet)는 문제를 풀거나 질문에 답을 제시하거나 긴장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구조적으로 8행 연구는 ‘abbaabba’ 형식의 압운이며, 6행 연구의 압운은 여러 가지 형태로서 ‘cdecde·cdccdc·cdedce’ 등이 될 수 있다유럽 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페트라르카풍의 소네트로서 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에 전해져 정착되었고 폴란드에도 소개되어 다른 슬라브 문학으로 퍼져나갔다대부분의 경우 이 소네트 형식은 그 나라 말의 주된 운율에 맞추어 바뀌었는데프랑스의 흔히 2행 연구로 불리어지는 알렉산더격(alexandrine; 12음절 약강격 시행)의 시와 영어의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이 그 예이다.

 

알렉산더격(alexandrine; 12음절 약강격 시행) :

알렉상드랭(alexandrin) 혹은 12음절시(十二音節詩또는 알렉산더격 시행(-格詩行)은 프랑스 와 극문학의 주요한 운율이다한 행이 12음절로 이루어지며 이는 6음절의 두 반행(半行)으로 나뉜다먼저 음절을 강하게 발음하는 제1, 2강세인데 제1강세는 각 반행의 마지막 음절2강세는 각 반행의 중간에 위치한다. 6음절의 반행이 한 호흡을 이루고2강세는 문맥에 따라 그 위치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유동성과 범용성을 갖는 운율 형식으로다양한 주제에 적용하기에 용이하며의미에 따른 강세를 주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나 서술적 묘사 혹은 장엄한 표현 등을 묘사하기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사용하는 압운은 각운(脚韻)으로즉 마지막 음절에 압운이 걸린다여성각운과 남성각운이 교대로 걸리는 것이 특징인데불어에서 여성각운이란 묵음 -e로 끝나는 음절의 각운남성각운이란 그 외의 각운을 말한다12세기 중세 프랑스 문학의 궁정 문학 작품 <알렉상드르 이야기>(Roman d'Alexandre)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알렉상드랭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한다중세의 지배적인 운율 형식은 10음절의 시(décasyllabe)였으나 16세기 플레야드파(La Pléiade)로 불리어진 일군의 시인들이 부활시켜 사용하였다처음에는 지나치게 산문적이라고 거부 반응도 있었으나 곧 17세기 프랑스 문학의 연극이나 시 작품의 주류 운문 형식이 된다그 이후로도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16세기에는 영국에도 퍼졌고, 6개의 강세를 갖는 약강 6보격(iambic hexameter)으로 변용되기도 하였으며, 17세기에는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도 사용되었으나 주로 쓰인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세스티나 (sestina) :

원래 중세기에 씌어진 순수한 형태의 경우에는 각각 6행으로 된 6()의 무운시(無韻詩)로 이루어지는데여기에서 세스티나(sestina; sesto, ‘6’에서 유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1연의 마지막 낱말들이 나머지 5연에서 각각 다른 순서로 나타나는데프로방스인(Provence)들이 사용했던 순서는 ‘abcdef’, ‘faebdc’, ‘cfdabe’, ‘ecbfad’, ‘deacfb’, ‘bdfeca’의 형식이었다이어서 3행의 연이 나오는데이 연에서는 6개의 주요 낱말들이 행 중간과 끝에서 반복되면서 시를 요약하거나 그 시를 누군가에게 바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세스티나(sestina)는 프로방스의 트루바두르인 아르노 다니엘(Arnaut Daniel, c. 1150/1160-c. 1200)이 처음 창안했으며이탈리아에서는 단테 알리기에fl(Dante Alighieri, 1265-1321)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가 이 형태로 시를 썼으나 그 뒤에는 한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16세기에 와서 프랑스의 7명의 시인들인 플레야드 파(La Pléiade), 특히 퐁튀스 드 티야르가 사용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플레야드 파 (La Pléiade) :

피에르 드 롱사르(Pierre de Ronsard, 1524-1585)를 필두로 하는 7명의 16세기 프랑스 작가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다그 모임의 궁극의 목표는 프랑스어를 고전 언어(그리스어·라틴어)에 필적할 만큼 수준 높은 문학적 표현 수단으로 고양시키는 데 있었다플레야드(La Pléiade)라는 이름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치하(Ptolemy II Philadelphus, BC 285-246)의 7명의 비극 작가들에게 고대 알렉산드리아 학파 비평가들이 부여했던 이름에서 딴 것이다플레야드 파(La Pléiade)의 7명의 작가로는 조아생 뒤 벨레(Joachim Du Bellay, 1522-1560), 장 도라(Jean Dorat, 1508-1588), 장 앙투안 드 바이프(Jean-Antoine de Baïf, 1532-1589), 레미 벨로(Rémy Belleau, 1528-1577), 퐁튀스 드 티야르(Pontus de Tyard, c. 1521-1605), 에티엔 조델(Etienne Jodelle, 1532-1573) 등이 있다.

 

발라타 (Ballata) :

트레첸토(Trecento)의 다성 세속 노래 중에서 가장 늦게 발달한 것은 발라타이다트레첸토의 다성 발라타는 14세기 이전에 작곡된 단성 발라타와는 크게 다른 것으로 프랑스의 비를레(virelai)와 똑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그러므로 트레첸토의 다성 세속 노래 중에서는 발라타만이 정형시 형식을 갖는 셈이다. 14세기의 발라타는 몇 개의 단성 노래도 있지만 대부분은 2성 혹은 3성으로 작곡되었으며 가사의 내용은 프랑스의 세속 노래에서 자주 다룬 궁정의 사랑이다아르스 노바의 최고 작곡가가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c. 1300-1377)라고 한다면트레첸토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활동한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 1325-1397)라고 할 수 있다.

 

14세기 이탈리아 세속 음악의 제3유형인 다성 발라타는 마드리갈과 카치아보다 늦게 성행하였으며 프랑스의 발라드 양식(forme Ballard)에 다소 영향을 주었다원래 발라타라는 단어는 무용(이탈리아어로 발라레(ballare)는 춤추다의 뜻이다)을 반주하는 노래를 의미하였다그 음악적인 예는 남아 있지 못하지만 13세기의 발라타는 합창 반복구가 붙은 단성 무용가()였다발라타 형식은 라우다(Lauda; 이탈리아어 가사의 민속적 종교 가곡이다)에 사용되었으며이 때문에 무용적인 특성을 잃어버린 것이 더러 있다물론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 1375)의 데카메론(Decameron)에서는 발라타나 발라테타’(Ballatetta)가 여전히 무용과 결부되어 있다지금까지 보존된 14세기 초경의 단성 발라타가 몇 곡 있지만사본에 있는 대부분의 예는 2성부나 3성부로 되어 있으며 1365년 이후의 것이다이렇게 순수하게 서정적이며 양식화된 발라타는 형식면에서 프랑스의 비를레와 유사하다전형적인 발라타 형식은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의 <Non avra ma' pieta>이다

 

비를레 (virelai) :

14~15세기 프랑스의 서정시와 노래에 쓰인 여러 가지 정형’(定型; formes fixes) 중의 하나이다프랑스 고유의 형식은 아닌 듯하며 같은 프랑스 내에서도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초기의 유럽 문학에도 이와 비슷한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예를 들어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칸티가’(cantiga), 아랍(Arab) 지역의 자할’(Zahleh)과 무와슈샤흐’(muwashshah), 이탈리아의 라우다와 발라타’ 그리고 프로톨라’, 스페인의 비얀시코’(villancico)와 영국의 캐럴’(carol) 등이다비를레의 표준 형식은 각 연의 앞뒤에 반복구(Repeating sphere)가 들어 있는 3개의 연으로 구성된다각 연은 3부분으로 나뉘는데 처음 2부분은 같은 압운 체계를 지니며 3번째 부분은 반복구와 같은 압운을 따른다.

 

카치아 (caccia) :

카치아는 이탈리아의 민족적 양식이 아닌 외국의 실례에서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범주 외적인 음악 형식이다. 14세기의 프랑스에는 엄격한 카논(일정한 간격을 두고 앞선 선율을 모방하는 형식의 대위법적 작곡 기법이다)으로 부르도록 고안된 것으로생생한 회화적 묘사를 위한 가사와 대중적 경향의 선율을 지닌 샤스’(Chace)라는 작품 유형이 있었다이와 비슷한 작품들은 1400년경에 작성된 Llivre VErmell이라는 스페인의 사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주로 1345년에서 1370년까지 성행한 것으로 보이는 이탈리아의 카치아(caccia)는 동일한 음가(같은 높이의 음정)에 2개의 동일한 성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카논적인 음악의 한 장르였다.

 

 

 

1-4-2. 중세 중기 및 후기의 음악가들  

 

음악사적으로 중세에서 첫 번째로 거론되는 이가 바로 후크발도 스코투스(Hucbaldus Scotus, fl. c. 840-930)이다그는 현재의 벨기에 지방에서 거주하였던 수도사이며 오르가눔(organum)을 창안한 작곡가로서 5선상의 기보법을 고안하였다물론 오늘날의 5선 기보법과 다르지만 첫 착안이라는 데에서 그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이다후크발도 스코투스(Hucbaldus Scotus)의 뒤를 이은 이가 또한 그 유명한 귀도 다레초(Guido d'arrezzo, fl. c. 990-1050)인데그는 이탈리아의 아레초(Arrezzo)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 일원으로 합류하였고 후에 원장이 되었다그는 탁월한 음악 이론가이며 교육자로서 악보의 기보법과 시창(視唱방법을 개발하였다이것은 '귀도의 손이라고 하는 시창 방법으로서 왼손의 손가락 마디마다 각 음의 이름을 표시하고 오른 손가락으로 마디를 짚어 줌으로써 계명 시창이 가능토록 한 독창 방법이다

 

진정한 최초의 작곡가로 일컬어지는 이가 성녀 힐데가르드 폰 빙엔(Hidegard von Bingen, 1098-1179, 수녀 출신의 성인교황청에 의해 2012년에 정식으로 시성되었다)으로 그녀는 여성 작곡가로서 오늘날까지 방대한 양의 기보를 남긴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다빙엔의 힐데가르트(독일어: Hildegard von Bingen 힐데가르트 폰 빙엔라틴어: Hildegardis Bingensis, 1098  1179 9월 17)는 축복받은 힐데가르트(Blessed Hildegard) 또는 성녀 힐데가르트(Saint Hildegard)로도 알려져 있다그녀는 독일 수녀예술가작가카운셀러언어학자자연학자과학자철학자의사약초학자시인운동가예언자작곡가이었다1136 마기스트라로 뽑힌 후그녀는 1150년에 루페르츠베르크 수도원과1165 아이빙겐 수도원을 세운다그녀는 일관되게 작곡한 최초의 작곡가였다그의 작품 "오르도 비르투툼(Ordo Virtutum)는 첫 번째 형식(the first form)이라고 불리며오페라의 기원일 것이다그녀는 신학식물학의학 서적을 썼으며편지서정시음악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도덕극을 썼다적어도 하나의 현대 전기 작가는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만물박사로 묘사한다.

 

레오니누스(프랑스어 이름은 레오냉라틴어의 철자법으로는 레오니우스 마기스터(Leoninus Magister)이며 활동 시기는 대략 12세기)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한 초기 교회 음악가의 한 사람이다그의 생몰 연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힐데가르드와는 또 다른 측면의 특성을 지닌 진정한 작곡가의 이름으로서는 처음 등장한 인물이다그는 약 1160- 1183년 사이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성가대의 악장으로 근무하였다오르가눔의 권위자로 2성부의 작곡을 많이 하였는데 가톨릭교회의 1년분 전례 음악을 작곡했다고 한다가톨릭교회의 전례는 시계(時季)가 자주 바뀌어 축일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대단한 다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음악사적으로 아로스 안티콰(Ars antiqua), 즉 자신의 제자이자 계승자인 페르탱과 더불어 옛 예술 시대의 사람이다.

 

페로티누스(프랑스어 이름은 페로탱라틴어 철자법으로는 페르티누스 마그누스(Perotinus Magnus)이다. 12세기-13세기 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되는 활동 시는 대략 1250-1280년대이다). 그 역시 레오니누스(Leoninus)의 경우처럼 생몰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는데레오니누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후임자로서 디스칸투스(Discantus)를 많이 작곡하였다레오니누스가 2성부를 작곡했는데 비하여 그는 3성부, 4성부로 확대하여 나아감으로써 다성 음악의 진수를 보이게 한 음악가이다그는 특히 콘둑투스(conductus)를 창안하였는데이는 이제까지의 다성 음악들이 정량 선율을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인용하였던 것에 반해리듬이 일정하고 템포가 빨라진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하겠다그러나 이 시기의 음악은 프랑스가 주도하기는 했으나 크게 발전하지는 못하였다그는 자신의 음악적 스승인 레오니우스와 더불어 노트르담 악파의 거장이라고 부른다.

 

이들을 뒤를 이은 고딕 시대(13~14세기)의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작곡가는 기욤 드 마쇼 (Guillaumme de Machaut, 1284-1377)이다그는 프랑스의 천재적 시인이며 음악가인 신부이다가톨릭교회의 음악뿐만 아니라 세속 음악도 작곡했는데자신의 음악적 명성을 알리게 된 것은 1364년에 완성한 프랑스 샤를 5세의 대관식 미사곡(Missa Incoronations)이다그리고 최초로 다성 음악에 의한 미사곡 전곡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Kyrie, Gloria, Credo, Sanctus, Agnus Dei, Ite Missa Est). 그는 아로스 노바(Ars Nova), 즉 동시대의 주교이자 위대한 음악가였던 필리프 드 비트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예술 시대의 한 사람이다. 

 

글 출처 : 음악사가 있는 고전음악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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