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클라라 부부와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
브람스가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1853년 9월30일, 브람스가 20살 때였다. 그는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 피아니스트였는데,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아힘의 권유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다.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와 그의 작품을 들어 본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브람스의 천재성을 알아본 슈만은 곧바로 '음악신보'에 브람스를 극찬하는 글을 올렸다.
젊은 천재가 나타난 것을 기뻐한 슈만 부부는 한달 동안이나 자신들의 집에 머무르게 했다. 당시 슈만 부부의 일기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찬사가 매일 같이 적혀 있었다.
이렇듯 슈만부부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브람스는 이들 부부에 대한
깊은 존경과 친밀감이 더해졌다. 특히 당시 피아니스트로서 서른네살이던 클라라는 여성적 매력이 정점에 이르고 있었으며 젊은 브람스는 그녀의 뛰어난 미모와 재능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브람스와 슈만, 브람스와 클라라와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는 브람스의 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54년 2월27일 슈만이 정신병이 악화되어 라인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브람스는 당장 슈만 부부에게로 달려갔다.
당시 여섯명의 아이와 일곱 번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절망 속에 남겨진 클라라를 보는 브람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서 브람스는 클라라를 절망에서 구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된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피아노 3중주곡 제 1번'을 들려주고, 막내가 태어나자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슈만이 클라라에게 헌정했던 곡의 주제를 이용한 '슈만의 주제에 의한 변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또 경제적 도움을 주기위해 클라라와 같이 연주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녀의 슬픔을 달래고 공감을 나누는 동안 브람스의 가슴 속에는 예기치 못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클라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는 클라라가 스승의 부인임을 상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와의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을 하게 된다.
20세부터 64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브람스의 마음 속엔 늘 클라라가 있었으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모든 힘과 열정은 브람스의 창작에 모아졌다. 남편의 죽음으로 슬픔에 처한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남아있는 자를 위한 레퀴엠'(독일 레퀴엠)을 작곡했다.
클라라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브람스는 죽음의 예감을 느끼고 죽음에 대한 명상을 다룬 성경말씀에 의한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쓰기 시작, 그의 63번째 생일에 완성했다. 이 네 곡에는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에 대한 예측을 인생의 무상함과 사랑의 위대함과 함께 실었다.
클라라의 죽음은 그로부터 13일 후였다. 1896년 5월20일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타계했을 때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신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말하며 그녀의 죽음을 아파했다. 브람스도 이듬해 4월 3일. 64세의 일기로 클라라의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