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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 Bocelli(1958. 9. 22. ~ )

 

이탈리아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보첼리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았다. 부모는 농기구를 팔고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했는데, 특별한 음악적 재능은 없었다.

 

보첼리는 6세 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해 몇 년 뒤에는 플루트와 색소폰도 연주했고 집에 있는 이탈리아 테너 가수들의 음반을 따라 불렀다.

 

12세 때 축구를 하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뇌출혈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시력 장애에 굴하지 않고 피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피아노 바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러 학비를 벌었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으나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서 성악을 배웠다.

 

1992년 보첼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팝 스타 추케로 포르나차리로부터 저명한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위해 만든 곡 〈미제레레 Miserere〉의 데모 음반을 녹음하자는 요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파바로티는 보첼리의 목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벗으로 삼기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보첼리는 녹음 계약에 서명했다.

 

그의 데뷔 앨범은 유럽에서 플래티넘 음반이 되었다. 1995년에는 〈작별할 시간 Con te partiro〉이 출시되었다. 나중에는 이 노래를 새러 브라이트먼과 함께 영어로 부르기도 했는데, 2곡 모두 대히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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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보첼리는 고전음악가로는 드물게 오페라와 대중음악 양쪽에서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1997년 출시 음반 〈로만차 Romanza〉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음반은 줄잡아 1,500만 장이 팔렸다.

 

1999년에 나온 〈소뇨 Sogno〉가 출시된 지 2개월이 안 되어 약 300만 장이 팔리면서 보첼리는 대중음악 차트 1위에 오른 앨범을 가진 첫 고전음악가가 되었다.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보첼리는 주로 콘서트에서 공연했다. 1999년 그는 그래미상 최우수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팝 스타 셀린 디온과 함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기도 The Prayer〉를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다.

 

1999년에는 '보첼리 열풍'이 이탈리아로부터 유럽 전역을 거쳐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이르렀다.

 

 

보첼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오페라라고 하면서도, 녹음을 할 때 아리아에 대중음악을 섞는다. 이를 가리켜 매스컴에서는 '팝페라'(popera)라고 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오페라계에서 진지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라고 보첼리를 폄하한다. 그러나 그는 1999년 7월에 오페라 〈즐거운 과부 The Merry Widow〉에서 아리아 3곡을 불렀고, 11월에는 미시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줄 마스네의 〈베르테르 Werther〉에서 주역을 맡아 미국 오페라 관객 앞에 선을 보였다. 1999년이 저물 때 보첼리는 뉴욕시티의 새해 전야제로 열리는 밀레니엄 콘서트 '세기의 파티'에서 공연했다.

 

이후에도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오페라 〈라보엠 La Boheme〉, 〈토스카 Tosca〉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정명훈 지휘로 오페라 〈나비부인 Madame Butterfly〉에서 핑커톤 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정통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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