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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죽파의 가야금 산조는 가야금의 명인 감창조, 한성기에게서 전승된 것이며, 1979년부터 김죽파가 스스로 짜 넣어 늘린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스름,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빠른 자진머리 포함, 휘머리로 표시하기도 함), 서ㅔ산조시(다른 산조의 휘머리 또는 단머리와 같은 뜻으로 쓰임)로 짜여 있으며 연주 시간은 52분 남짓하다. 

 

가야금 : 김죽파

고수    : 김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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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죽파(1911~1990)

 

1911년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고 김난초가 본명이다.

 

근대 한국 가야금 연주의 틀을 세운 김창조가 친할아버지여서 그에게서 민속 풍류와 산조를 배웠다. 

 

1922년에 광주 보통학교 4년 과정을 수료하고 1931년에 팔도 명창 대학에 나가 산조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많은 연주회에 출영하였고, 1984년과 1989년에는 일본에서 초청 독주회도 가졌다. 

 

1979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와 거문고 명창의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0년에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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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1929~1990)

 

1928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전라북도 전주로 이사가 그곳에서 자랐다. 전주 보통학교에 다닐 무렵에 같은 동네에서 창과 악기를 가르치는 선생이 어느 날 노래를 듣고 “소질이 있다고 권하길래”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열네 살 때부터, 박동실, 임방울 같은 이들에게서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웠고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 보유자 김연수를 사사하여 판소리 기능을 이수하였다. 

 

열일고여덟 살 때부터 권번에서 소리를 가르쳤고 스물다섯 살 때 전주 국악원을 설립하여 열다섯 해 남짓하게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970년대에 들어서 그는 소리를 완전히 작파하고 고수로써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 80년대까지 그는 공연장에서 매우 주목받는 명고였으며, 동시대에 활약했던 김명환, 김득수와 함께 '명고수 3김'의 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소리의 속을 잘 알아서 빈틈없는 치밀한 연주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그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는데,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고법 부분 보유자 후보 김청만을 비롯해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25호 판소리 고법의 예능 보유자 정화영,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9-1호 판소리 장단 예능 보유자 이성근 등은 모두 김동준의 고법을 전수 받은 고수들이다.

 

1989년, 판소리 고법의 예능 보유자가 되었으나, 이듬해인 1990년에 작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