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散調)는 한국 전통음악에서 기악독주곡 형식을 일컫는 말이며 장구나 북의 반주와 함께 연주된다. 서양의 바로크(Baroque) 음악이라는 말이 “괴상한 음악”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음악 스타일인 것처럼 우리의 전통음악인 산조는 “흐트러진 음악”이라는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출발된 음악이다.

 

이는 산조가 그만큼 그 전 시대의 기악곡과는 스타일이 다른 음악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산조가 지금의 모습처럼 정착된 시기는 19세기 말엽인 1890년경인데 이는 전통음악의 흐름에서 보아 제일 끝에 위치하는 다시 말하면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대에 형성된 음악인 셈이다.

 

흔히 산조의 음악형태는 굿의 반주음악인 <시나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산조는 즉흥적이고 흩은 가락을 연주되는 <시나위>처럼 100여년을 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며 기악독주곡으로의 형식을 갖추면서 변모되어 왔고 지금도 그 변모는 그치지 않고 있다.

 

산조가 기악 독주곡으로의 면모를 갖추는데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판소리>이었다. <판소리>는 전통음악의 전 장르의 음악어법이 고루 망라된 포용력 있는 성악곡이며, 전통사회에서 크게 유행되었던 음악인데 그 위세는 결국 산조라는 기악 독주곡으로 승화된 셈이다. 그러므로 <시나위>는 산조의 씨앗 역할을, <판소리>는 그 열매 맺음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어서 산조란 기실 우리 민족의 몇 천 년간의 음악적 노력과 축적의 결정체라고 하겠다.

 

산조가 산조다웁기 위한 음악적 조건은 어떠한 것일까?
산조는 첫째 반드시 느린 데서부터 시작하여 차차로 빨라지는 장단 틀을 가지는데 이는 동양의 “생성론적 우주관(生成論的 宇宙觀)”과도 통한다.

 

느린 3분박 6개(ꁜx6)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첫 악장 진양조는 전체 연주시간의 약 절반이나 차지하는데, 이는 산조 한 바탕 중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으며 연주자의 기량은 이 진양조를 통하여 드러난다. 곰삭힌 듯 울어 나오는 진양조의 여운은 오묘하고 깊은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며 인내와 절제된 흐름 속에 가락은 이어진다.

 

진양조 다음 악장인 중머리는 2분박 3개(♩x3)가 4번 모여 12박이 한 장단의 틀(주기)을 이루는데, 템포가 점차로 빨라져 중중머리, 자진머리로 이어진다. 따라서 자진머리는 12박보다는 빠른 3분박 4개로 인식된다.

 

둘째 악장인 중머리는 진양조의 긴장감이 다소 늦춰진 가운데 선율이 진행되며, 셋째 악장인 중중머리는 어깨춤이 절로 난 듯 신명나게 흥취를 더해 간다. 넷째 악장인 자진머리에서부터는 숨 막힐 듯 격정적인 분위기로 이끌어져 휘모리에 달하는데 연주자와 청중이 모두 무아지경에로 몰입되기도 한다. 특히 자진머리에서의 2분박과 3분박을 혼합 사용하는 리듬의 붙임새는 한국 전통음악의 아름다움이 선율보다는 리듬에서 추구되고 있는 듯 다양하고 기교적이다.

 

산조를 산조답게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음악적 조건은 그 선율의 음구조에 있는데 이는 판소리와 같이 ‘평조길’(레·미·솔·라·도 음계), ‘우조길’(솔·라·도·레·미 음계), ‘계면길’(미·솔·라·시도·레 음계)로 구성된다.

 

이러한 여러 음계는 본청(기본음, 중심음)의 음높이를 바꾸어 여러 조로 조바꿈함으로써 선율의 다양함이 추구된다. 산조는 일정한 주제를 가지거나 주제의 발전 변주 등으로 선율이 전개되지는 않는다. 산조는 독립된 단락을 이룬 여러 선율들의 조합으로 구성되며 각 단락은 종지형 선율에 의해서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또 각 선율간의 관계는 긴장과 이완, 문답, 강조, 음양의 대비를 이룸으로써 미적 체험을 유발시켜 나간다.

 

산조는 궁중음악처럼 의식에 차용되었거나 관념이나 고상함을 추구한 음악이 아니며 생생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린 인간 중심의 음악이다.

 

산조에는 경건한 삶의 자세를 바탕으로 해서 화평스럽고 정겨운 생활의 여유나 풍류적 기질, 꿋꿋함, 생활의 응어리, 체념, 비애, 격정 등 인간의 여러 모습이 선율과 리듬의 역동적 관계 안에서 ‘성음(음색)의 변화’로 잘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산조 명인들의 애환어린 삶이 투영된 흔적인 것이다.

 

산조 명인들은 그들의 삶의 과정에서 얻어진 이러한 체험들을 예술음악으로 승화시켜왔으며 일생을 통해서 그 성음(음악자체)을 갈고 닦았다. 그러기에 산조에는 들판에서 자란 잡초처럼 강하고 질긴 생명력과 진한 감동의 여운이 남는다. 특히 산조에서 추구되는 ‘성음의 변화’는 서양음악의 화성과는 다른 전통음악에서의 조화의 미를 잘 보여준다.

 

산조명인들은 연주자인 동시에 작곡자로 활동해 왔는데, 개인적인 독창성을 발휘하여 기존의 곡에 새로운 가락을 덧붙이거나 변주시켜 연주하기도 하였으며, 타인의 모방이나 답습도 서슴지 않아 산조는 오늘날 여러 유파로 나뉘어 연주자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연주되고 있다.

 

즉흥음악에서 출발한 산조는 가야금에 제일 먼저 얹혀져 독주곡 형식으로 성장해 왔으며 지금은 젓대,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등 여러 악기의 산조가 연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