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l_Diamond_1.jpg Neil Diamond(1941년 1월 24일, 미국 뉴욕 )

 

50년의 음악생활동안 히트곡 제조기로서 이름 그대로 팝 필드를 빛내고 있는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는 스탠다드 팝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싱어송라이터로, 때로는 평이한 발라드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며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주급 50달러를 받고 전문직업 작곡가로 음악경력을 쌓기 시작했던 그는 65년 뱅 레코드사(Bang Records)에 정착했고, 'Solitary Man'(66), 'I Got the Feeling (Oh No, No)'(66), 몽키즈(Monkees)의 넘버원 싱글 'I'm a Believer'를 히트시키면서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는다.


이에 힘입어 닐 다이아몬드는 데뷔 앨범 [The Feel of Neil Diamond](66)를 발표했지만, 예상외로 저조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MCA 레코드사로 이적한 후, 예전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인 [Velvet Gloves And Spit]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재미있고 단순한 팝 싱글 'Sweet Caroline'(69), 'Holly Holly'(69), 'Cracklin' Rosie'(70), 'Song Sung Blue'(72) 등을 작곡해 대히트를 기록한 그는 역동적인 라이브 공연을 담은 실황앨범 [Hot August Night](72)로 명실공히 어덜트 팝계의 선두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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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멀티 밀리언 달러의 계약을 맺고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의 사운드 트랙을 담당해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그래미상의 영예를 안는 등 인기 가도를 달리던 그는 잠깐의 휴식기를 갖는다.

 

76년 다시 재기하여 꾸준히 플래티넘 앨범을 발매하고 쇼 무대에도 진출했으며, 78년 바브라 스트레이젠드(Barbra Streisand)와의 듀엣곡 'You Don't Bring Me Flowers'를 히트시키는 등 닐 다이아몬드는 80년대까지 강력한 상업적 성공을 이어갔다.


또한 영화 [The Jazz Singer](80)로 연기자로서도 데뷔하게 되었고, 그 사운드 트랙을 톱 텐 히트시키며 5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쾌거를 거둔다. 물론 이후 90년대까지 별다른 히트곡을 많이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닐 다이아몬드는 꾸준한 음반작업으로 성공적인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을 떨친 한편, 화려한 무대매너로 청중들을 휘어잡으면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했다.

 

모던 밴드인 UB40가 그의 오랜 버전의 곡 'Red Red Wine'을, 어지 오버킬(Urge Overkill)이 'Girl, You'll Be a Woman Soon'을 리메이크 해 히트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그의 영향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중년 작곡가 닐 다이아몬드는, 96년 [Tennessee Moon]으로 AOR(Adult oriented rock) 팝 스타일에서 컨트리 음악으로의 전향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20th Cnetury Masters: The Millennium…](99)을 발매하여 여전히 팝 필드에서 정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