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이 죽었다'는 명제는 사실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간혹 '망할 놈의 얼터너티브'라고 말하는 그 때에도 라디오헤드.스매싱 펌킨스.레니 크라비츠.비스티 보이즈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컴플레이션한 음반의 타이틀은 [팝 이즈 데드]였었죠. 일종의 엄살이었던 셈이죠. 팝은 궁극적으로 죽은 적은 없었어요. 다만 시대의 맥락에 이런저런 입지를 휘둘리며 우왕좌왕 버텨왔던 것이죠.


이종환씨가 말하는 팝송의 죽음은 이제 당신 자신이 차근한 목소리로 뮤지션의 경력과 곡의 사연을 소개하던 라디오 DJ와 팝 칼럼니스트의 시대가 죽었다는 의미일 겁니다. 기억 하세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 DJ 김광한 / 팝의 명반 50선.100선이니 하는 음악 출판물 / 그 지글거리는 LP음을 연상케하는 빛바랜 칼라의 시대를. 그 정서들을.


지금까지 성실하게 이력을 이어가며 우리를 안도케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전에 MBC의 간판급 팝 전문가는 이종환씨였죠. 이후 바톤을 이은 이상은, 이소라 등의 이름 전에 존재했던 [이종환의 디스크쇼]는 그 자체가 이미 브랜드명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시리즈로 출반된 같은 이름의 컴플레이션반이 있었구요. 그런데 이게 좀 물건이었습니다. 직배사 시대 이전에 나온 앨범이라 저작권 개념이 흐릿한 덕에 이종환의 가사 해독 나래이션과 팝의 선율이 함께한 음반.. 지금 시점에 보자면 음원이라도 따서 유머게시판에 올리면 꽤나 여러 친구들의 웃음을 유도할 수 있을 목록입니다.(가령 앨범 커버엔 양복 자켓을 어깨에 걸치고 바삭한 가을 낙엽길을 걷는 이종환의 쓸쓸한 모습이 찍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엔 진지하기 그지 없었죠. 없었다 뿐인가. 이종환의 드라이하면서도 나긋한 톤의 나래이션과 유명 팝 넘버가 어우러져 꽤나 여러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린(고색창연하지만 정말!) 음반이었습니다.(물론 이 음반 제작을 위한 사전 제작 형태의 방송 코너가 있었구요)


가령 반 헤일런(Van Hallen)의 경우 'Jump'보다는 'When It's Love'가 더욱 사랑받았죠. 정서적이고 소위 한국적 선율이라는 것이 강하면 좋은 선곡이 되었죠. 아무튼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가장 오래 차지한 싱글과 앨범이 뭐가 그리도 중요한 일인지 암기 대상이었고, 뮤지션의 이력과 베스트 넘버를 자분자분하게 소개하는 심야방송의 건전한(!) 공기가 그나마 우리의 숨통이었던 시대.


좀 따분하게 보이지만 이종환씨는 - 심지어 - 타고난 입담꾼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이택림, 이문세가 한데 모인 공개방송 무대는 라디오로 녹음해서 다시 들어도 뒤집어도록 웃은 목록이기도 했죠.(공개방송 중 노래 듣는 시간이 아깝게 여겨질 정도였으니..) 이후 이종환씨는 밤의 디스크쇼를 뒤로 하고 [여성시대] [지금은 라디오시대]로 방송을 옮겨 점점 퇴역 예비군이 되어 갔습니다. 팝의 선율을 소개하기 보다는 다난한 가사일과 가시지 않는 손의 습기를 안고 사는 주부들의 친구가 되었죠.


문제는 방송 시스템과 청취자층의 변화는 그의 늙은 입담을 좀체로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방송계에 몸담은 이들조차도 '고루하고 늙은 방송계의 암세포'라고 표현을 서슴치 않으며, 그의 이력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습니다. 무척이나 불미스런 중도하차로 기억하곤 합니다.


그렇게 또 한 시대가 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종환씨는 [팝송은 죽었다]라는 저서를 앞으로 시리즈로 출간한다고 하지만, '매년 빌보드 차트 1위를 가장 오래 차지한 노래'라는 챕터가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고색창연한 내음 나는 목록을 요즘 친구들이 사볼지 걱정......도 안됩니다. 어차피 이 시대는 웹진 리뷰와 별점, 음원 스트리밍이라는 규칙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니 말이죠.


하지만 한 음악 DJ의 노후한 목소리나마 따스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요즘의 차가움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습니다.


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ANTI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