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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ng이란?


음악적으로 볼 때 스윙은 재즈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희석시키고 있는데, 스윙 악단은 연주자를 16명까지 확대시키고 있으며, 재즈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즉흥연주적인 데 비해 스윙은 연주자들에게 악보로 고정된 음악을 훨씬 많이 연주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스윙은 또한 재즈를 전미국과 전세계에 걸친 시장에서 진정한 상업적인 음악으로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에서 나왔으며, 그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스윙 시대는 재즈의 사회학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 이전까지 재즈가 대중들에게 부도덕(뉴올리언스의 사창가) 또는 불법(시카고의 교도소)과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스윙이 장소를 무도장으로 옮겨감에 따라 재즈도 존중받게 되었다.


스윙 밴드는 금관·목관·리듬 악기별로 연주자들을 모집하여 조직했으며, 이들이 연주할 음악의 관현악 편곡자를 고용했다. 1920년대 흑인 밴드 리더인 플레처 핸더슨이 자신의 밴드에서 사용한 이 방법은 나중에 인기를 얻으면서 백인 악단들에게도 채택되었다. 빅 밴드에서 사용된 음악적 기교들은 비교적 단순하다.


악단의 각 섹션들은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대위법을 이루어 연주했고, 음악적으로 대화하기도 했다. 자주 사용되었던 또다른 수법으로 리프(riff)가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악구의 반복으로 반복의 단순한 힘에 의해 청자들을 거의 최면상태까지 몰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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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시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중과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전국으로 확산되어야 했으며, 백인의 취향에 맞아야 했다. 이 시기 동안에는 유명한 흑인 밴드(예를 들면 카운트 베시, 듀크 엘링턴, 치크 웹, 지미 런스퍼드 밴드 등)도 많았지만, 백인 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표적인 백인 밴드 리더로는 베니 굿맨, 해리 제임스, 토미와 지미 도로시, 글렌 밀러를 들 수 있다. 굿맨은 백인과 흑인 연주자를 함께 썼으며, '스윙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듀크 엘링턴 밴드가 최고로 꼽혔으며 카운트 베시 밴드가 그 다음으로 평가되었다.


빅 밴드가 열광적인 인기를 얻던 시기에 그와 함께 솔로 음악이 꽃피었는데, 그러한 솔로 연주자 가운데는 피아니스트 패츠 월러와 테너 색소폰 연주자 콜먼 호킨스와 같은 소그룹 연주자를 비롯하여,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또다른 클럽에서 솔로 활동을 한 빅 밴드 연주자도 있었다. 솔로로 활동한 최고의 명인들로는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 조니 호지스, 베니 카터, 추 베리, 윌리 스미스와 트럼펫 연주자 로이 엘드리지, 벅 클레이턴, 레이 낸스, 쿠티 윌리엄스, 그리고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 아트 테이텀과 기타 연주자 찰리 크리스천, 베이스 연주자 지미 블랜턴, 트롬본 연주자 잭 티가든, 딕키 웰스, 가수 빌리 할리데이를 들 수 있다. 스윙 시대는 재즈의 화성적 실험시대 이전에 꽃핀 재즈 사상 최후의 전성시대였다.


절정기에 스윙은 즉흥 예술의 성취를 통해 현재의 화성적 관습과 대 창작가들의 양식적 개별성의 균형을 이루었다.


글 출처 : 다음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