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서 퓨전 재즈하면 보통 일렉트릭 악기가 주축이 되어 도회적인 분위기 즉, 난해한 연주가 많지 않고 감상하기 비교적 쉬운 스무드 재즈(Smooth Jazz) 계열을 말한다. 주선율이 선명하고 즉흥연주가 모던 재즈에 비해 축소되어 있으며 레퍼토리도 유명 재즈 스탠더드뿐 아니라 팝/록(영화음악)의 히트곡까지 소화한다. 그래서 재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비기너들에게 재즈의 편성과 악기 운용, 그리고 연주 방식에 대해 대략적 그림을 그려주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퓨전 재즈 초기에는 이렇게 대중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시작으로 1970년대 초반 일렉트릭 재즈 록 퓨전은 순간적인 찰나와 집단적 즉흥연주를 중요시한 프리 재즈의 연속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인기 있었던 소울/훵키 재즈보다 난해하고 거북스러운 연주 부분이 분명 있었다. 물론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의 은혜를 입고 성장한 포스트 마일스 세대들이 웨더 레포트(Weather Report),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Mahavishnu Orchestra),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를 결성하여 음악 팬들의 발걸음을 재즈 쪽으로 돌려 세우기도 하지만, 1980년대 스무드한 스타일의 재즈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입고 각광받기 시작하기 전까지 퓨전 재즈는 녹녹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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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도기한 시절 퓨전 재즈의 앞길에 대중적 색채를 더한 아티스트로는 밥 제임스(Bob James), 조지 벤슨(George Benson), 크루세이더스(The Crusaders),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 리 릿나워(Lee Ritenour),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알 자로(Al Jearreau) 등 개인과 그룹 등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GRP, CTI 등 여러 레이블에 잘 남아 있으며 지금도 사랑 받고 있다.

 

그러나 1970~80년대 전성기를 보낸 후 1990년대 들어 스무드 재즈는 그저 달콤한 음악으로만 재생산되며 매우 어중간한 음악이 되어 버리고 만다. 슈퍼 그룹인 포플레이(Fourplay)가 1991년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장수 밴드로 활동하고 있지만 재즈의 큰 흐름은 보다 더 인위적인 애시드 재즈(Acid Jazz)와 전통음악과 퓨전된 에스닉 재즈(Ethnic Jazz)로 다양하게 가지를 틀게 된다.


여기에 한명의 트럼페터가 등장하는데 스무드한 스타일을 넘어 로맨틱 재즈의 일인자로 성장하게 되는 크리스 보티(Chris Botti)의 화려한 데뷔이다. 1962년 생으로 20대부터 밥 딜런(Bob Dylan),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스파이로 자이라 등 쟁쟁한 음악인과 협연을 하고 1990년부터 5년간은 폴 사이먼(Paul Simon) 밴드에서 연주하며 기본기를 튼튼히 다지게 된다.

 

이후 스팅(Sting)의 앨범에도 참여하게 되고 동시에 본격적인 자신의 리더작을 녹음하며 재즈 트럼페터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95년 [First Wish]를 시작으로 퓨전 재즈의 기대주로 성장하는데 쳇 베이커(Chet Baker)의 서정성과 프레디 허바드(Freddie Hubbard)의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그의 연주는 조각남 같은 외모와 함께 대중들에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나 너무 핸섬한 외모 덕(?)에 연주 가량이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대표 연주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의 컨템포러리한 연주 스타일은 뛰어난 테크닉과 완벽한 곡의 이해가 없으면 안 되는 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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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데뷔한지 15년이 넘어가는 중견 연주자로 이제는 완숙미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데뷔 초기에는 일렉트릭 퓨전 사운드에 창작곡에 욕심을 내며 송라이팅에 심혈을 기우리는데 공식 5집인 [A Thousand Kisses Deep](2003)까지 이러한 콘셉트를 유지해 나간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새로울 것이 없는 연주였기에 두각으로 나타내지 못하다 낭만적인 연주가 돋보이는 [When I Fall In Love](2004)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크리스 보티표' 연주를 보여주게 된다.

 

이후 [To Love Again: The Duets]와 라이브 앨범이 이어지면서 크리스 보티의 로맨틱한 연주가 무한 사랑받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When I Fall In Love]로 타이틀 곡 'When I Fall In Love'를 시작으로 'My Romance', 'Let's Fall In Love', 'Cinema Paradiso', 'Nearness Of You' 등이 꿈결같이 편안하고 고요하게 흐른다. 이렇게 사운드가 전반적으로 바뀌는 데에는 음반사와 프로듀서의 역할이 큰데 콜롬비아 레이블의 대중적 콘셉트와 블러드, 스위트 앤 티어스(Blood, Sweat & Tears)의 드러머이자 뛰어난 프로듀서 바비 콜롬비(Bobby Colomby)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