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 Bill Evans (1929.8.16 - 1980.9.15)

1958년, 재즈사상 최고의 '모달재즈(modal jazz)' 앨범으로 꼽히는 [Kind Of Blue]를 구상 중이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녹음에 앞서 [Jazz Review]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즈의 발전은 판에 박힌 코드의 배열에서 벗어나 선율적인 것으로 복귀해야만 가능하다."

마일스는 당시 재즈의 주류였던 하드 밥(hard bop)의 복잡한 코드전개가 정서적으로 위험수위에 와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텐션과 코드체인지에 집중한 비밥(bebop)의 한계성을 지적한 그는 향후 최소한의 코드에서 무한한 음계를 찾아가자는, 선율탐구적인 개념으로서 '모드(mode)'의 도입을 제시했다.

이것은 고전음악을 재즈화성의 바탕으로 보고 코드가 아닌, 다시 음계위주로 되돌아가겠다는 간단한 발상이었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도리안(dorian)' 개념을 중심으로 한 이 모드이론을 재즈에서 완벽하게 응용하려면 고전화성을 꿰뚫고 있어야 했기에 오히려 더 복잡한 이론을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업의 실현을 위해 마일스 데이비스가 찾아낸 편곡자는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 였다.

오늘날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리우는 빌 에반스는 당시 재즈계에서 가장 '클래식'에 해박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었다. 라벨,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등 고전에서 현대음악까지를 관통하고 있었던 그의 방대한 지식은 결국 [카인드 오브 블루]의 일등공신으로서 빛을 발했고 이를 계기로 약 9개월간 마일스 데이비스 6중주(Sextet)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되면서 재즈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피아니스트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빌 에반스의 첫 번째 리더작은 1956년에 발표한 [New Jazz Conception]이었다. 앨범의 발표시점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만나기 이전이며, 명곡 'Waltz For Debby'의 오리지널 버전을 담고 있었던 이 앨범으로 빌 에반스는 이미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마일스와의 활동을 끝낸 후에는 자신의 솔로 피아노 연주를 담은[Everybody Digs Bill Evans, 1958년]를 시작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며 모던재즈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중반에 걸쳐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데뷔작이었던 [New Jazz Conception]이나 초기 걸작으로 평가되는 [Everybody Digs Bill Evans]를 통해 보여준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는 단지 버드 파웰(Bud Powell)에 영향 받은 비밥 스타일이었지만 점차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차별되는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데 그것은 비밥 피아노에서 강조되어 온 규칙적인 악센트를 따르지 않는, 불규칙적이고 유동적인 비트 감으로 악절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독특한 프레이징(phrasing across the bar line)이었다.

이렇게 마디와 박자를 가로지르는 미묘한 프레이즈는 예측 가능했던 기존까지의 연주방식과 확실한 대조를 보이면서 비밥의 진부함에서 벗어나려는 피아니스트들로부터 새로운 재즈 피아니즘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에반스는 이러한 방법을 위해 짧은 스타카토 보다는 길고 매끄럽게 연결되는 레가토 연주를 선호했고 [카인드 오브 블루]의 수록 곡인 'Flamenco Sketches, So What, Blue in Green'에서 보여준 것처럼 하나의 음을 쳐서 그 음의 잔상을 최대한 이용하여 하프 사운드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에반스의 이러한 연주법은 스윙감을 발견하기 힘들고 긴장감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그에게 '내성적 연주자'라는 말을 듣게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에반스는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내재적인 스윙을 하는 피아니스트였다).

59년부터는 많은 뮤지션들이 에반스에게 러브 콜을 보내게 되면서 솔로 작 보다는 다양한 세션과 편성의 녹음에 참여하게 되는데, 트럼펫터 쳇 베이커(Chet Baker)의 수작 [Chet]에서 특유의 서정미학을 제공했는가 하면 폴 체임버스(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럼) 등과 함께 팀을 이루어 [Green Dolphin Street]을 발표하였고 트럼펫 주자 밥 브룩메이어와의 조인트 앨범 [The Ivory Hunters]를 발표하여 As Times Goes By, I Got A Rhythm 등을 히트시켰다.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교과서 '에반스 - 라파로 - 모티앙'

60년대에 들어 빌 에반스는 오랜 친구이자 베이스 연주자인 스콧 라파로(Scott LaFaro)와 드러머 폴 모티앙(Paul Motian)과 함께 본격적인 트리오 활동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 트리오는 빌 에반스의 바이오그래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악성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교과서로 통할 만큼 훌륭한 인터플레이(Interplay)를 선보였었다.

빌 에반스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Portrait In Jazz]가 이때 발표된 것으로, 'Someday My Prince Will Come', 'Autumn Leaves', 'Come Rain Or Come Shine' 등의 명연을 낳았다. 빌 에반스의 대표작들은 대개 에반스-라파로-모티앙 트리오에게서 녹음되었는데 이들의 또 다른 걸작인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는 라이브 클럽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실황을 담아낸 것으로 역시 같은 자리에서 녹음된 [Waltz For Debby]와 함께 에반스 앨범 중 가장 선호되는 두 작품으로 꼽힌다.

1961년 6월 25일에 있었던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호흡을 맞춰왔던 에반스 트리오는 안타깝게도 뱅가드의 공연이후 불과 10일 만에 스콧 라파로의 비극적인 교통사고 사망으로 일단락 지어진다.

에반스-라파로-모티앙 트리오의 협주는 리드 악기와 리듬파트의 구분에 연연하기 보다는 서로의 적극적인 플레이를 통하여 보다 다채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데 핵심이 있었다. 이 바탕에는 리듬섹션에 대해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했던 에반스의 배려가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이는 모던 재즈의 리듬섹션을 전통의 틀로부터 해방시키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빌 에반스는 스콧 라파로를 대신하여 척 이스라엘(Chuck Israels, 베이스), 폴 모티앙으로 재편성된 트리오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62년 5월에는 역시 리버사이드에서 앨범 [Moon Beams]를 공개하여 'If You Could See Me Now'를 히트시켰다.

명연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을 수록, 62년 6월에 발표한 앨범 [Interplay]는 트리오가 아닌 퀸텟(5중주)으로, 63년에는 기타리스트 짐 홀(Jim Hall)과의 듀오 앨범으로 [Undercurrent]를 각각 선보였는데, 에반스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트리오가 아닌 어떠한 편성에서도 최적의 연주를 들려준 피아니스트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에반스는 헤로인 중독으로 비극적인 말년을 보냈다. 그러나 1929년에 출생하여 1980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그 50년의 생애 동안 남겨놓은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 어느 것을 듣는다 해도 기복이 없는 수준작 이상이었다. 에반스의 곁에서 지켜봤던 지인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서 "미리 예견된, 그래서 서서히 진행된 자살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빌 에반스의 마지막 몇 년은 오직 예술적 희열만이 그 자신의 고통과 끝까지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글 출처 : 희아의 지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