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열전

안나 네트렙코

Anna Netrebko

1971.09.18~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역을 맡은 안나 네트렙코 (201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공연)

 

Meine Lippen sie Kussen so heiss (내 입술 그 입맞춤은 뜨겁고)

프란츠 레하르 코믹 오페라 <주디타>에서

바덴바덴 2007 오페라 갈라

오페라에 전혀 관심 없던 남자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카오디오로 오페라 아리아를 듣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오페라 공연 실황 DVD를 보며 빠져들더니, 급기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오페라 공연을 보러 날아간다. 뇌쇄적인 외모와 관능적인 음색으로 무대 위에서 달리고 구르고 드러누워 노래하는 소프라노 가수 하나가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이 놀라운 반향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사람들이 ‘러시아의 리비에라’라고 부르는 흑해 연안의 매혹적인 도시 크라스노다르. 바로 현재 세계 최고의 인기 오페라 가수로 군림하고 있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1971년 9월 18일에 태어난 곳이다.

지질학자 아버지와 전화국 엔지니어 어머니의 둘째 딸로 태어난 안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아주 행복하게 회상한다. “주말마다 집엔 손님이 넘쳐났어요. 친구들 또는 친척들과 늘 함께 요리하고 웃고 떠들었죠.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그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거나 클럽에 가서 놀아요.” 안나는 서구에서 흔히 선전하듯 ‘재투성이 아가씨였다가 왕자를 만난 신데렐라’가 아니었고, 상당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다섯 살 위인 미모의 언니는 덴마크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때 셰익스피어의 연극 <오셀로>를 본 안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셀로가 죽어가는 연기에 완전히 반해, 어떤 형태로든 꼭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안나는 우선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고, 일곱 살에 소련공산당 파이어니어 궁전 무대에 노래와 춤으로 데뷔했다. 어머니는 안나가 제대로 말을 하기도 전부터 허밍으로 어머니와 이중창을 노래했다고 회상한다. 열한 살에 체조와 농구를 시작해 선수 수준의 교육을 받기도 한 안나는 열네 살에 소련공산당 청소년 당원이 되어 예술교육 기회를 향유하면서 문화적 소양을 제대로 발전시켜 나갔다. 붉은 넥타이를 매고 레닌을 열렬히 숭배하던 소녀 안나는 10대에 파이어니어 궁에서 노래할 때부터 이미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특별한 연기력을 보였다고 사람들은 증언한다. “저희 선조들은 집시였어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가 바로 그 혈통에서 나온 거겠죠. 가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전 화가가 되었을 거예요.” 안나 자신의 설명이다. ▶2008년 러시아 인민예술가(People's Artist of Russia) 상을 받은 안나. “저는 관객을 사랑해요. 그들을 웃고 울게 하고 싶어요. 제가 노래하는 이유는 바로 그거예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시작했던 1985년, 안나는 연극배우가 될까 성악가가 될까 진로를 고민 중이었다.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오케스트라와 음악대학이 있는 도시 크라스노다르에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10대 소녀의 재능은 금방 전문가의 눈에 띄었다. “언제까지 되는 대로 노래를 부를 거니? 넌 성악 테크닉을 제대로 익혀야 해.” 경험 있는 음악교사에게 다섯 달을 배운 뒤 안나는 레닌그라드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 전문대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10월 혁명 이후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이 도시는 1991년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마지막까지 연극학과와 음악대학을 놓고 결단을 못 내리던 안나는 연극학과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친구들 얘기에 얼른 음대에 지원서를 냈다. 음악 전문대는 콘서바토리(음악원)보다 입학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지만 그만큼 수준은 떨어졌다. 입학하자마자 대학 오페라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안나는 두 학기 만에 림스키코르사코프 콘서바토리로 학적을 옮길 수 있었다. 무대를 열망했던 안나는 복식사, 펜싱, 안무 수업에도 열성이었지만, 마린스키 극장에 무턱대고 찾아가 “무대 위에 그냥 서 있는 역이라도 시켜 달라”고 간청해 거대한 ‘불새’의 한쪽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고, 오로지 오페라 연습을 구경하기 위해 극장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에 10시간씩 리허설을 지켜보기도 했다. 안나가 후에 성공을 거두자 서방 언론은 ‘청소원에서 프리마돈나로: 세계 오페라계의 신데렐라 탄생’이라는 식으로 이 스토리를 대서특필다.

Ana Netrebko "From Janitress to Opera Diva" (안나 네트렙코 “청소원에서 오페라 디바로”)

안나 네트렙코가 세계적인 오페라 디바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의 만남은 안나 네트렙코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는 198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키로프 극장(마린스키 극장의 소련 시대 이름)을 토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부단한 노력과 야망으로 구세대 지휘자들을 뛰어넘은 게르기예프는 자신과 호흡을 맞출 젊은 오페라 연출가와 가수들을 원했다. 소련 당국에서 서방세계 여행 허가를 얻은 그는 1991년 뮌헨에서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초연판을 공연했고 유럽 극장들은 다투어 그를 초청했다. 1993년에 글링카 콩쿠르에서 우승한 안나는 게르기예프의 인정을 받아 이듬해 그가 이끄는 마린스키 극장 전속가수가 되었고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1994년 마린스키 무대에 데뷔했다. 이 프로덕션은 같은 해에 독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페스티벌에서도 공연되었고 안나 역시 이 기회에 독일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2013년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린 ‘베르디 갈라 콘서트’에 참여한 안나 네트렙코와 발레리 게르기예프(오른쪽)

1995년 마린스키 극장은 샌프란시스코 극장에 초청되어 글링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공연했고, 류드밀라 역으로 첫 미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안나를 당시 샌프란시스코 신문 크로니클은 이렇게 평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갖춘 가수다. 경탄할 만큼 맑은 음색, 정확성, 유연성, 엄청난 역동성과 풍성함, 상상력, 이해력, 정신성,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다.” 스물네 살짜리 오페라 가수가 이런 평을 얻은 예는 당연히 드물다.

Casta Diva (정결한 여신)

빈첸초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에서

바덴바덴 2007 오페라 갈라

관객을 울고 웃게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성공

이처럼 미국 무대를 통해 세계 언론에 노출되면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본격적인 성공가도가 열렸다. 이때부터 안나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에 서기 시작한다. 1998년부터 매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역 등으로 인기를 끈 안나는 2002년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돈 조반니>의 돈나 안나 역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프로코피예프의 <전쟁과 평화> 나타샤 역으로 메트로폴리탄에도 진출했다. 뒤이어 2003년에는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바이에른 뮌헨 국립오페라, 돈나 안나 역으로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오페라에 데뷔했다. 그리고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빌리 데커가 연출한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은 서른네 살의 안나 네트렙코를 불멸의 존재로 각인시켰다. 오페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공연 실황을 모를 리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높은 DVD 판매고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안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Brindisi (축배의 노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롤란도 비아존(알프레도) & 안나 네트렙코(비올레타)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안나는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또 같은 해 메트에서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바리톤 시모네 알베르기니와 함께 한 <돈 파스콸레>의 노리나 역은 희극 오페라에서 각별히 빛을 발하는 네트렙코의 능청스러운 연기력과 뛰어난 순발력을 입증했다. 이듬해 안나는 동거해 온 알베르기니와 결별하고 우루과이의 바리톤 어윈 슈로트와 동거를 시작해 아들 티아고를 얻었다. 그리고 2013년, 그녀는 슈로트와 헤어졌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안나 네트렙코의 현재 국적은 오스트리아. 안나 자신은 “매번 해외 공연을 떠날 때마다 러시아의 비자 신청 과정이 너무 복잡해 2006년에 국적을 바꿨을 뿐 자신은 영원히 러시아인”이라고 말했지만 물론 러시아 국민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2006년 빈 국립오페라에서 <몽유병 여인>의 아미나 역, 2007년 같은 극장에서 마스네의 <마농> 타이틀 롤, 2008년 베를린 도이체 오퍼에서 푸치니 <라 보엠>의 미미 역, 2009년 출산 후 돌아온 마린스키 극장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 2011년 빈 국립오페라에서 <안나 볼레나>의 타이틀 롤 등 출연하는 오페라마다 세계적인 화제를 낳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영상물로 출시되는 인기를 누려 온 안나는 2013년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역,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 역 등 이전보다 무거운 역에 새롭게 도전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마스네의 <마농>에서 마농 역을 맡은 안나 네트렙코

고가 브랜드의 시계나 오트쿠튀르의 광고 모델, M-TV를 방불케 하는 도발적 포즈와 연기를 담은 오페라 아리아 편집 영상물, 리사이틀에서 청중에게 말을 걸고 장미꽃을 던지는 유혹적인 제스처… 이런 이미지들로 인해 안나 네트렙코는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그녀의 가창에 대해 최고의 찬사로 지면을 도배하는 비평가들이 있는가 하면 ‘성악 비평의 황제’로 불리는 위르겐 케스팅을 비롯해 많은 비평가들은 아낌없는 혹평을 쏟아 놓기도 한다. 열광적이고 충성스런 팬들이 전 세계에 가득하지만, 네트렙코라면 경멸하거나 외면해버리는 오페라 애호가들도 상당히 많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오페라 스타의 하나인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이 그렇듯 안나 네트렙코 역시 성악적인 취약점들을 외적인 아름다움과 연기로 교묘히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D'amor sull'ali rosee (사랑의 장밋빛 날개를 타고)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서

베를린 2011 한여름 밤 콘서트

예를 들어, 벨리니의 <청교도> 엘비라 역이나 도니체티의 <루치아> 타이틀 롤 등을 콜로라투라 기교면에서 비교해보면 네트렙코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나 에디타 그루베로바(Edita Gruberova) 같은 위대한 선배들과는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실력이 처진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같은 역할들을 노래하는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Nino Machaidze)와 비교하더라도 훨씬 부족하다. 실제 공연 무대나 영상물을 볼 때와는 달리 음반으로 들었을 때는 감동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할에 따른 거의 완벽한 연기 변신, 맑고 파워 있는 고음 등에서 네트렙코는 여전히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안나가 아직 20대일 때 어떤 기자가 “당신이 생각하는 커리어의 정점, 그러니까 오페라 가수로서 최고의 성공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대단히 진지하게 대답했다. “무대에 설 때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최고의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프로는 청중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을 감동으로 눈물 흘리게 하고, 잠시 슬픔에 잠기게 했다가는 다시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죠. 무대 위의 성악가는 이런 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가수가 될 수 있다면 저는 정말 행복할 거예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안나 네트렙코는 그녀가 희망했던 의미에서는 ‘최고의 성공’을 이룬 가수였다. 이 정점에서 그녀가 언제 내려오게 될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Album: The Best of Anna Netrebko (2009)

01 O Mio Babbino Caro 00:00 - 02 Quando Men Vo 02:42 - 03 Dome Epais le Jasmin (Flower Duet) 05:18 - 04 Deh Vieni Non Tardar 10:24 - 05 La Ci Darem la Mano 13:51 - 06 Ardon Gli Incensi (Mad Scene) 17:12 - 07 Casta Diva 22:15 - 08 Lied an den Mond 28:02 - 09 Libiamo ne Lieti Calici 33:03 - 10 Meine Lippen, die Kussen so Heiss? 36:09 - 11 Ma Qual Mai... Fuggi Crudele 41:50 - 12 Si, Mi Chiamano Mimi 48:04 - 13 O Soave Fanciulla 53:24 - 14 Belle nuit, o Nuit D'amour 57:32 - 15 Solvejgs Lied 01:00:07 - 16 Addio del Passato 01:03:51 - 17 Eccomi... Oh! Quante Volte 01: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