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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 신해철

오작교 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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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 신해철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을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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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글쓴이 2024.05.09. 11:42

아버지.

오늘 문득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제는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수도 없게된 지금.

그저 가슴안으로 안으로 당신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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