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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core

오작교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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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에 의해 하드코어라는 용어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대충 아주 시끄럽고 소란스런 음악인줄은 알지만 그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 알기란 쉽지 않다. 또 어떤 환경에서 형성되었으며 서태지는 왜 하필 이런 음악을 가지고 온 것일까. 이번에는 근래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부상한 하드코어 음악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서태지에 의해 하드코어에 대한 음악팬들의 관심이 야기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서태지가 국내에 처음으로 이 스타일의 음악을 소개한 것은 아니다. 이미 3-4년 전부터 국내 인디와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널리 퍼진 음악이었고 주류에서도 이미 노바소닉과 H.O.T.가 실험한 바 있는 음악이었다.


H.O.T.의 경우 1999년의 히트곡 '아이야'는 공식적으로 하드코어 힙합계열이란 표현을 썼고 이전에 발표된 '열맞춰'도 강한 록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힙합을 들려주었다. 이 곡은 지난해 내한공연을 가진 미국의 유명한 하드코어 그룹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노래 '킬링 인 더 네임(Killing in the name)'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하드코어(hardcore)란 말은 꼭 음악에서만 쓰이는 말은 아니다. 원래는 어떤 단체나 운동의 중핵(中核)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영화 연극 비디오 등 여러 문화분야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며 어떤 부문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 강한 것 그리고 때로 완고해서 타협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본질적이면서 가장 세고 강경한 것이다. 포르노산업에서 이 말을 가장 먼저 유통시켰다는 설도 있다.


음악에서는 애초 198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 등장한 무지막지하게 시끄러운 펑크(punk)와 곧이어 등장한 마치 탱크처럼 거대한 헤비메탈, 이른바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을 가리키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따라서 하드코어 펑크 그리고 스래시 메탈의 경우는 하드코어 메탈이라는 말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스래시 메탈은 록으로부터 거의 독립되어있는 헤비메탈의 장르이므로 근래에는 하드코어란 말로 거의 연관되지 않는다. 하지만 헤비메탈은 후대의 하드코어 사운드의 중요한 자양분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하드코어 펑크는 이전 19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펑크가 더욱 과격해지고 동시에 메시지는 허무적 색채를 띤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활동한 데드 케네디스(Dead Kennedys) 블랙 플래그(Black Flag) 소셜 디스토션(Social Distortion)과 같은 그룹들이 그런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들은 펑크를 기반으로 하면서 동시에 가장 '세고' '포악한' 사운드를 구사했기 때문에 하드코어란 수식어가 붙게되었다. '죽은 케네디(대통령)들'이라거나 '검은 깃발' '사회적 소음' 등 이름에서부터 공격적이고 반(反)사회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당시 하드코어의 팬들은 대부분 중산층 백인 젊은이들이었으며 머리카락을 부분적으로 모아 끝은 날카롭게 한 스파이크 헤어와 가죽옷이 주류였던 펑크 시절의 패션과 달리 이들 사이에선 문신, 짧은 머리, 군화와 같은 무서운 차림이 유행했다. 우리로선 당시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였던 셈이다. 나중에는 빡빡 머리를 한 악명 높은 '스킨헤드' 족도 가담해 때로 폭력적이라는 혐의를 받기도 했지만 하드코어 그룹과 팬들 스스로가 스킨헤드 족을 배격해 전혀 그것과 무관함을 증명했다.


공연장의 문화도 하드코어는 슬램(slam) 댄싱이라 하여 관객끼리 뒤섞이며 마구 부딪치며 난폭하게 흔들어댔고 심지어 무대에 관객이 올라가 객석으로 다이빙(서핑이라고도 한다)하는 스타일이 전형을 이뤘다. 지금은 국내 라이브 클럽에서도 더러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하드코어는 그룹과 객석의 혼연일체가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포착할 수 있다. 무대의 록밴드가 쩌렁쩌렁 울려대면 객석은 흥분하고 그 흥분은 다시 그룹에게 전해져 연주열기가 강화되고 다시 관객들은 더 강렬하게 헤드뱅잉(head-banging)하는 끝없는 무대와 관객의 '피드백'이 계속되는 음악이다. 이를테면 녹음된 '앨범음악'의 성격보다는 공연을 통해 절정의 분위기를 공유하는 '라이브음악'인 것이다. 서태지가 컴백 TV쇼에서 립싱크 한 것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도 라이브는 하드코어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럼 하드코어의 사운드 성분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 펑크와 헤비메탈을 기본으로 하되 1980년대 말부터는 비트를 세분화한 흑인음악 펑크(funk)와 마구 지껄이는 음악 즉 랩(힙합)이 가세하게 된다. 이 메탈 펑크 펑크(Funk) 그리고 랩 등 소란음악 빅4가 화학적으로 뒤섞여 바로 오늘날의 하드코어로 발전한 것이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모든 음악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난리법석이겠는가. 젊은 팬들은 평범한 것으로는 양이 차는 법이 없어 갈수록 자극의 기대치를 높이는 강성(强性)화 욕망이 강하다. 당연히 그룹들은 사운드 볼륨을 높이고 스피드를 극으로 몰아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시끄러운 장르들은 죄다 모아 합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음악은 당연히 전형적 잡종이지만 단순한 코드의 반복을 벗어나 상당히 세련되어진 게 특징이다. 뭐 '질서 정연한 포효'라고 할까. 그래서 하드코어는 타협점을 모르고 맹렬한 질주를 벌였던 과거와는 다르게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탄탄한 연주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마구 소란스럽게 연주하는 음악으로 생각해선 오산이다.


대표적인 밴드가 바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Korn) 그리고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이다. 불타오른 하드코어 열풍은 심지어 지난해 신예 파파 로치(Papa Roach)의 데뷔 앨범 <인페스트(Infest)>마저 엄청나게 팔리게 했다. 림프 비즈킷과 콘은 서태지 사운드의 모델이 됐다해서 국내에서 앨범이 불티나게 팔려나갈 정도였다.


개성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분모는 펑크와 메탈로 반주를 강하게 때리고 거기에 펑크(funk)의 요소를 더해 중량감을 높이고 가수는 마치 맹수처럼 사납게 질러대며 랩을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음악으로 매를 맞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그룹들의 음악을 하드코어 대신 '랩 메탈'이라고 일컫는 것은 음악의 무게를 랩과 메탈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게 펑크 메탈(funk metal), 펑큰롤(Funk''n'' roll) 또는 노이즈 펑크(Noise Funk)라고 불러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한편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을 '하드코어 성향이 강한 핌프 록'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핌프 록(pimp rock)이란 본고장 록 전문지조차 잘 쓰지 않는 어휘로 하드코어의 형식이나 메시지는 약물 섹스 등 전형적인 거리의 록 성격을 따르는 스타일을 가리킨다. 사실 핌프란 말은 '뚜쟁이'라는 뜻이다. 이런 음악을 하는 그룹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는다. 흔히 림프 비즈킷과 콘을 이 부류에 포함시킨다.


팝의 본고장에서 하드코어의 강세는 팝의 흐름이 근래 완전히 10대 버블 검 음악으로 넘어간 것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분석된다. 댄스 위주의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스트리트 보이스, N싱크 음악이 판을 치자 가만있을 수 없어 소음을 선호하는 팬들이 일으킨 반란인 셈이다. 틴 뮤직을 '감각파'라고 한다면 하드코어라는 '강경파'라고 할까.

국내의 경우 댄스와 발라드로 대표되는 10대 음악의 강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이 왜곡구도가 하루빨리 깨져야 한다는 열망이 퍼져있다. 서태지도 이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하드코어가 그렇듯 여기서 하드코어로 우리 상황을 정면 돌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드코어의 생명은 굉음의 사운드, 자신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따르는 팬들과 호흡하는 현장성, 그리고 제도권을 공격하거나 아니면 그것과 분리되어 사는 언더그라운드성이다. 어쩌면 폭발하는 젊음의 뜨거운 피만이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이다. 언더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 말해주듯 여러 계층의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대중성의 음악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댄스와 발라드만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런 음악은 전혀 주류에 존재하지 못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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