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gtime
19세기 말 미국 남부의 프랑스계 혼혈인 크레욜(creole)에 의해 연주되기 시작해 1차 세계대전 발발 무렵까지 재즈의 본산 뉴올리언스에서 유행했던 '피아노 독주음악'이다. 프랑스인 노예주인은 다른 국가에 비해 흑인 노예에 대해 관대한 편이어서 그들과 결혼도 했고, 그 자제인 혼혈에게는 백인과 동등한 신분을 보장해주었다.
덕분에 크레욜들은 어려서부터 교양으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을 배울 수 있었고 나아가 유럽에 유학하는 특권도 누리게 되었다. 흑과 백의 만남, 아프리카의 토속적 리듬감과 유럽 클래식의 만남을 통해 등장한 음악이 바로 랙타임이다. 그 흑인 요소 때문에 처음에는 외설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비난, 깜둥이 음악이라는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곧 (대륙의 영향을 벗어난) 미국 최초의 대중음악 형식이라는 역사적 규정이 주어졌다.
비록 뉴올리언스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발원지는 미주리이며 거기서 파생되어 나중 두 유파로 발전한다. 하나는 '랙타임의 왕'으로 불리는 스코트 조플린(Scott Joplin)이 태어난 세달리아 유파이며 다른 하나는 역시 스코트 조플린이 옮겨가 바(bar)의 주인인 랙타임 피아니스트 탐 터빈(Tom Turbin) 등과 함께 활동했던 세인트루이스 유파다.
상기한 두 사람 외에 대표적인 랙타임 작곡가로는 제임스 스코트(James Scott), 유비 블레이크(Eubie Blake), 럭키 로버츠(Luckey Roberts)를 들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흑인이었으며 백인 중에는 스코트 조플린의 친구였던 조셉 랩(Joseph Lamb), 조지 보츠보프(George Botsford), 찰스 엘 존슨(Charles L. Johnson), 퍼시 웬리치(Percy Wenrich)가 꼽힌다.
랙타임은 결코 재즈의 원조나 효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재즈 태동의 중요한 단서로 다루어진다. 주어진 악보를 연주한다는 점, 그리고 왼손의 비교적 간소한 화음 반주와 오른손의 빠른 패시지의 선율 연주가 주를 이룬다는 점(그래서 스트라이드 피아노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재즈의 핵심인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유럽의 전통적인 소나티네(sonatine : 입문자용 피아노 독주 음악)에 보다 가깝다. 하지만 선율부분의 다양하고 풍부한 싱코페이션(syncopation)은 재즈처럼 흑인 특유의 리듬감과 스윙(swing)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형식적인 측면은 역시 클래식 기반의 A-B-A-C-A의 전개가 주를 이루는데 익숙한 선율의 A부분을 처음, 중간, 끝부분에 위치시킴으로써 음악의 전체적인 통일감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 전혀 다른 조성의 새로운 멜로디를 첨가시킴으로써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곡은 스코트 조플린이 활동하던 클럽의 이름이며 랙타임의 명곡으로 꼽히는 'Maple leaf rag'이며 틴 팬 앨리의 작곡자들도 랙타임을 수용, 당대의 팝송으로 만들어냈고 랙타임의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대표적인 곡을 꼽으라면 어빌 벌린(Irving Berlin)이 1911년에 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Alexander's ragtime band'(비록 그는 랙타임이 뭔지도 몰랐다지만...)이 되겠고 조지 거신의 초기 대표작 'Swanee'(1919년)도 랙타임의 영향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 주연의 영화 < 스팅 >(1974년)을 잊을 수 없다. 이 영화에 주제곡으로 삽입된 스코트 조플린의 'The entertainer'가 마빈 햄리시(Marvin Hamlisch)의 연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무려 50년 만에 랙타임이 부활해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클래식과 재즈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조수아 리프킨(Joshua Rifkin)이 < Joplin Rags By Scott Joplin >이란 제목으로 내리 3장의 앨범을 팝 앨범 차트에 올려 조플린 바람을 일으킨 것도 1974년이었다.
조수아 리프킨 말고 재즈클래식 분야의 거목인 건세르 슐러(Gunther Schuller),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 등은 지금까지도 랙타임을 연주한다. 하긴 1910년대에 유럽에서 랙타임이 커다란 인기를 모으면서 스트라빈스키는 1918년과 이듬해에 'Ragtime' 'Piano rag music'을 작곡하기도 했으니 그리 놀랄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