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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편성론(編成論) (1)

오작교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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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편성론(編成論) (1)
 
편성을 듣는다는 것

 

많은 초보자들이 재즈곡을 들으며 가장 난감해 할 때는 '어느 곡을 듣더라도 그 곡이 그 곡 같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재즈의 어법에 익숙해 있지 못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법이란 다름 아닌 화성과 리듬으로 이루어진 재즈의 결정적인 특성을 얘기한다. 물론 반드시 이런 요소들만 가지고 하나의 재즈곡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재즈의 맥을 통해 흐르고 있는 정신적인 면들은 그 동안 이 음악이 꾸준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자 본질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요구하는 이런 본질의 관찰은 우리의 관심사로부터 잠시나마 접어둘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어쩌면 재즈를 통해 궁극적으로 느껴야 하는 바는 바로 그런 특성일 것이다.

재즈 듣기의 여러 갈래길 중에서 유난히 편성(編成)에 대한 관심이 불거지는 이유는 이 음악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대화법 때문이다. 그것이 솔로 연주이든, 혹은 듀오나 트리오든, 각각이 지니고 있는 대화법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을 일컬으며 이를 간파하고 공감할 때, 재즈 감상의 단계를 한 계단 상승시킬 수 있다.

 


군중 앞에 선 고독

 

한 사람의 연주자가 무대 위를 가득 메운다. 언뜻 생각하기에 그저 연습 삼아 이러 저러한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쉽지만, 정작 가장 많고도 정연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은 솔로 무대를 통해 가능하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솔로의 무대는 가장 손쉬운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분히 현대적인 관점으로 파악하건대, 재즈 연주는 좋은 솔로가 가능할 때 비로소 뛰어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음악이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무대는, 서로간의 호흡이 중요하다는 관건을 지닌 동시에 듣는 이와의 관계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여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재즈 연주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함께 맞추어' 연주하는 데 급급하다는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기본적인 재즈의 교육 방침은 2시간 앙상블로 연주를 하면, 반드시 솔로 연습을 그에 상응한 시간만큼 요구한다는 데 있다. 여럿이서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보다, 많은 이들 앞에서 혼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 나가는 작업이 실제 상황에서는 더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앙상블이 지닌 장점만큼 혼자서 행해내는 연주에서도 관객은 비슷한 수준 이상의 감동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솔로 연주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재즈라는 음악이 철저한 자기 검증과 노력,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솔로가 가능하지 못한 연주자는 아무리 좋은 앙상블과 협연한다 하더라도 한 곡이 채 끝나기 전에 바닥나는 자신의 얄팍한 음악성을 바라보며 자책을 면할 수 없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거론하는 거장급 연주자들의 어느 예를 들더라도 솔로 연주에서는 오히려 탁월한 능력을 과시한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시각이 훨씬 현대적이다. 재즈만큼 개인주의적인 음악도 별로 없으니까. 물론 사람들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역의 명제를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게 도출된다. 좋은 솔로 무대를 가질 수 없는 연주자 치고 앙상블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눈길 맞추기, 혹은 눈싸움  

 

피아니스트 말 왈드론(Mal Waldron)이 이런 얘기를 했다. '재즈의 본질에 가장 적합한 편성은 듀오이다' 라고. 물론 다분히 주관적인 표현이며 일정 부분 설득력을 잃어버릴 소지가 많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어도 재즈에서 듀오 연주가 가진 짙은 매력은 나름대로 이 말이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접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듀오 연주가 가진 장점이 반드시 두 사람의 연주자가 좋은 호흡을 통해 일관된 정서를 일구어 내는 데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하고 있다. 무릇, 팀웍이라는 것이 과연 재즈의 본질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은 한 두 마디로 쉽게 풀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는데 익숙한 듀오 편성의 연주를 듣는다. 그러나 동시에, 마치 음악성의 경연과도 같은 날카로운 시선이 교차하는 듀오 연주를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듣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두 가지 경우는 모두 똑같은 흥밋거리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둘이서 만들어 내는 큰 하나를 기대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기대할 것인지는 역시 듣는 이의 취향과 시각에 달린 문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이 두 가지 모두 듀오 편성으로서의 강한 개성을 똑같이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른바 공동체 의식에 의거하여 '나'라는 존재가 반드시 다른 '나'와 공감대를 이루었을 때만 좋은 그 무엇으로 인식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반(反)재즈적이다.  


재즈는 근본적으로 어느 한 곳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피상적인 부분을 얘기해도 그러하고 정서적인 부분을 고려해도 이는 진리에 가까운 생각이다. 노년에 이른 거장급 연주자들의 행보를 통해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을 엿본다. 그 동안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음악적 성과의 틀 속에서 계속 같은 발걸음을 반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지속적인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가 있다.

 

물론 인간적으로 얘기했을 때 전자의 경우가 받아들이기 무난한 경우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반복을 일삼는 거장의 노년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내느니, 차라리 한 때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의 젊은 시절 연주를 듣는 것이 매력 있다. 그만큼 좋은 재즈 연주자가 되기는 힘든 일이며 단지 언제라도 새로움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것 또한 재즈 팬들의 공통적인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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