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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역사 - 11(1970년대의 팝음악 1)

오작교 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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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역사 - (11) 1970년대의 팝음악 1

 


1970년대 전반기의 팝 음악의 대표적인 흐름이었던 싱어 송라이터 계열과 마일스 데이비스에 의해 점화된 재즈 록 퓨전, 그리고 록 음악에 클래식을 접목시킨 아트 록 등에 대해 살펴본다.

 

 꿈과 같았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69년 12월, 롤링 스톤스는 샌조村첵?근방의 알타몬트(Altamont)에서 대규모 무료 콘서트를 개최했다. 우드스톡의 열기를 이어 가겠다는 심산이었다. 출연진들도 그레이트풀 데드, 산타나, 제퍼슨 에어플레인,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 영 등 우드스톡에 섰던 음악가들을 대거 초대했다. 그러나 그 외에 모든 것이 준비되지 않은 기획이었다. 공연장소는 겨우 하루 전에 정해졌고, 하루 만에 뚝딱 세워진 공연장의 부실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식수, 편의시설, 사운드 시스템 등도 마찬가지로 형편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존 경찰들 대신 사설 경비대를 고용한 것은 록 공연 사상 최악의 사태를 불러왔다.

 

당시 롤링 스톤스는 경찰의 보호를 거절하고 폭주족이었던 ‘헬스 엔젤스(Hell’s Angels)’를 경비로 세웠다. 보수는 5백 달러어치의 맥주가 고작. 공연 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공연 직후 참담한 현실로 나타났다. 관객들은 서로 엉켜 LSD 등 약물에 취해 아수라장을 연출했고, 이에 헬스 엔젤스는 닥치는 대로 그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다. 약물 쇼크로 3명이 숨지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진 현장은 믹 재거가 ‘Sympathy For The Devil’를 부를 즈음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무대 근처에서 헬스 엔젤스는 한 흑인청년을 둘러싸고 폭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중 몇 명은 칼로 찌르기까지 했으며, 결국 그 청년은 곧 숨을 거두었다. ‘알타몬트의 비극’이었다. 이로써 60년대를 상징했던 록은 순식간에 ‘악마의 노래’가 되어 버렸다.

 

1950년대 말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등이 하나 둘 떠나면서 ‘로큰롤이 죽었을 때’처럼 1969년 알타몬트의 비극 이후 록의 황금시대도 급속히 저물어갔다. 젊은이들의 반항과 자유분방함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았다. 동시에 공교롭게도 비틀스를 포함한 많은 밴드들이 해산했고, 기존 밴드의 멤버들은 각각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솔로 가수들의 행렬. ‘공동체의 시대’가 가고 ‘개인의 시대’(The ‘Me’ Decade)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Singer Songwriter Era

 

“요즘엔 어떤 사람도 메시지 담긴 노래들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룹 시카고(Chicago)의 보컬리스트 로버트 램(Robert Lamm)이 말한 그 한 마디는 70년대를 함축하고 있다. 1970년 3월, 시위를 벌이던 켄트 주립대 학생들에게 연방군이 M1 소총을 발포, 학생 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켄트 주립대 사태’ 이후 대부분의 우드스톡 세대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이상과 반항을 포기했다. 공권력에 대한 공포, 베트남전에 대한 회의, 롤링 스톤스의 브라이언 존스를 필두로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등 록 스타들의 잇단 사망, 비틀스의 해체… 젊은이들은 이제 저항과 꿈을 믿지 않았고 허무와 절망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사회보다는 자신 속으로 숨게 된다. 60년대를 관통하던 시대정신, 즉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러한 변화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70년대에는 개인적인 성찰이나 내성적인 노래들이 많았다. 그 밖에도 다른 큰 요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 가정 내 이혼율의 급증과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였다. 1969년에 1천쌍 당 3쌍 꼴이었던 이혼율이 5년 후에는 4.5쌍, 그리고 70년대 말에는 5.3쌍까지 올라갔다. 또한 그러한 이혼율의 증가와 맞물려서 인해 미국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결혼 기피 현상이 늘어났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당시 성인의 30퍼센트 가량이 더 이상 결혼이 살아가는 데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혼율 증가와 결혼 기피 때문에 자연히 결혼하지 않고 아이만 낳고 사는 커플들이 급증했다.

 

 

01.jpg70년대 싱어 송라이터들은 이혼에 대한 슬픔 같은 사적인 감정들을 발라드로 소화해내 커다란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잃어버린 사랑, 외로움 등을 60년대 포크에 기반해서 아주 구슬프고 고백적인 스타일로 노래했다(그래서 60년대 저항 포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 대표적인 가수가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다.

1970년 앨범 [Sweet Baby James]를 발표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는 아주 부드럽고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소품과도 같은 소박한 어쿠스틱 발라드에 비음 섞인 그러나 달콤하고 깨끗한 음성은 시끄러운 록에 물린 팬들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테일러는 대부분의 70년대 싱어 송라이터들과 마찬가지로 곡을 썼고 어쿠스틱 악기들로 공연했다.


02.jpg 60년대부터 남편 제리 고핀과 함께 브릴 빌딩의 명 작곡콤비로 유명했던 캐롤 킹(Carole King)은 70년대에 가장 성공한 여성 송라이터였다. 피아노, 하나 혹은 두 대의 기타, 베이스 기타 정도만이 뒷받침되는 그녀의 노래는 무척 단순했고, 내성적이면서도 온화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캐롤 킹은 [Tapestry](1971), [Music](1972) 등의 명반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여성 가수로 인정 받았다. 거의 모든 록 연주자들이 남자였지만 70년대에는 여성들도 큰 호응을 얻었다.

 

주디 콜린스(Judy Collins), 조니 미첼(Joni Mitchell), 칼리 사이먼(Carly Simon) 같은 여성 포크 뮤지션들은 60년대 여성 아티스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업적, 비평적 성과를 거뒀다. 그 중 ‘Both Sides Now’ 같은 명곡을 남긴 조니 미첼의 경우는 70년대 중반 이후 포크에서 재즈 보컬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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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국에서는 미국과는 또 다른 형태의 모던 포크가 등장한다. 보다 사색적이고 내적으로 탐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의 대표적인 영국 포크 아티스트로는 닉 드레이크(Nick Drake),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도노반(Donovan) 등이 있다. 이들은 비록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자기 색깔과 발자취를 남겨 제프 버클리를 포함한 후대의 많은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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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Rock Fusion

 

09.jpg 말 그대로 재즈와 록의 융합이다. 재즈 록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는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60년대 중반 이후 록의 ‘일렉트릭’ 리듬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념적으로 ‘지구촌은 음악으로나마 퓨전되야 한다’는 대망을 갖고 있었으며, 또 당시까지 백인들만이 즐기고 있던 재즈를 젊은 미국 흑인들에게 되찾아주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 방편으로 그는 재즈를 일렉트릭화하는 실험을 해나갔다. 재즈의 즉흥연주(improvisation)에다가 소울과 리듬 앤 블루스 식 악기 구성, 그리고 비트와 일렉트릭 리듬을 결합했다.


10.jpg 마일스 데이비스의 1969년도 앨범 [Bitches Brew]는 재즈 록 퓨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진정한 걸작이다. 그 앨범에 스태프로 참여한 칙 코리아(Chick Corea, 피아노), 조 자위눌(Joe Zawinul, 일렉트릭 피아노), 웨인 쇼터(Wayne Shorter, 색소폰),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기타) 등은 모두 향후 재즈 록 발전에 기여한 주요 인물들이 된다.

 

칙 코리아와 그가 있던 밴드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존 맥러플린과 얀 해머 등이 재적하면서 [Birds Of Fire](1973)라는 명반을 탄생시킨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 조 자위눌, 웨인 쇼터, 그리고 천재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있던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알 쿠퍼가 건반을 담당했던 블러드 스웨트 & 티어스(Blood, Sweat & Tears), 마이크 블룸필드, 버디 마일스 등이 활약했던 일렉트릭 플랙(Electric Flag), 시카고(Chicago), 도날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의 듀오 스틸리 댄(Steely Dan) 등이 70년대의 새로운 재즈 록 퓨전 스타일을 갈고 닦은 대표적 밴드들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연주했던 건반 주자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은 물론 카를로스 산타나도 이때 [Abraxas] 등을 통해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록에 경의를 표했다. 일반적으로 재즈 록 퓨전은 록보다는 재즈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반면 재즈보다 록에 더 중점을 둔 아티스트로는 [Blow by Blow] 앨범을 내놓았던 제프 벡(Jeff Beck) 정도를 들 수 있다.

 

글 출처 : 라디오 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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