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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Side Of Bob Dylan(1964)

오작교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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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k Rock의 탄생, 또 다른 모습의 BOB DYLAN

1963년 11월, 오스왈드의 총성에 의한 케네디의 사망은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던 젊은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또 한편, 비틀즈를 위시한 British Invasion은 미국 음악에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물론 케네디의 암살이 곧, 변화와 개혁의 희망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제 개혁에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사건임에는 틀림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64년 여름, 그 수 많은 반전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존슨 행정부는 월남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와 저항 음악의 한계를 느낀 Bob Dylan은 Folk음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그는 항상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보다 정확하고 한 발 앞서 읽어낼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변화된 음악의 시작은 지금까지의 Bob Dylan의 음악과는 다른 모습, 이른바 “Another Side of Bob Dylan” (64)인 것이죠.

Bob Dylan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다시 불러서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던 “My Back Page”, 연인과 갈등이 있었을지 모를 “It Ain’t Me Baby’등 명곡들이 담겨있는 이 앨범에는 그 이전의 심각한 모습과 달리 노래하는 도중 웃음 섞인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예리한 감수성과 허공에 대해 외치는 듯한 분위기는 여전했으나 이후의 가사 내용은 아무리 읽어 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저항과 투쟁 의식 또한 약해져 있습니다. 물론 Bob Dylan 평생의 음악에 깔려 있는 반골의 기질이 그의 음악의 저변에 내재되어 있음은 변함이 없는 것이긴 합니다만.......

1965년 7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에 Butterfield Blues Band와 함께 무대에 등장해서 “Bring It All Back Home”(65) 앨범을 연주하던 Bob Dylan은 관중 들로부터 엄청난 야유와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포크의 제왕을 기대하던 청중에게 일렉트릭 기타와 락앤롤 밴드라니.....

더구나 그 후엔 Rocker족의 전유물인 가죽 쟈켓과 부츠란....

결국은 연주를 끝내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Bob Dylan은 통기타를 들고 나와 “It’s All Over Now Baby Blue” 를 부르고는 이 노래 제목처럼 Protest Folk와 이별을 합니다. 마치 콘서트에서 자신이 이런 식으로 부를 것을 미리 알고 작곡을 한 듯이....

반대하고 야유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한편으로 그러한 시도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Rock 비트를 사용하면서 Folk 음악의 감성을 담아낸 이 Bob Dylan의 새로운 시도를 보고 이를 FOLK ROCK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Bob Dylan은 자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 그리고 Rock 역사에 있어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2 개의 앨범을 연속해서 발표하는데 “Highway 61 Revisited”(65),와 “Blonde on Blonde”(66)가 그것입니다.

   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아무 것도 없을 때, 너는 잃을 것도 없다

   You're invisible now, you got no secrets to conceal.
   이제 너는 드러내 보일, 감출 비밀도 없다

   .................................

   Like a complete unknown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Like a rolling stone
   구르는 돌처럼

초창기 명곡인 “Blowin’ in the Wind”와 함께 그의 대표곡이 된 “Like a Rolling Stone”을 비롯하여 “Just Like a Woman”, “Visions of Johanna”등 명곡으로 가득한 이 두 장의 앨범은 힘있는 Rock의 비트와 Bob Dylan 특유의 비판 정신, 그리고 자유와 사랑에 대한 감정이 한데 녹아 들어, 듣는 이로 하여금 위안과 용기와 희망을 얻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65년 ‘사라 론디스’ 와의 결혼으로 음악적으로나 삶에 있어서나 최고의 시기를 맞이하던 Bob Dylan은 66년 7월 오토바이 사고로 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로 1년 여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었던 Bob Dylan은 완전히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 동안의 저항음악, 또 Rocker로의 돌변, 수많은 집회와 콘서트....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

또 다른 변화 - 내면으로의 Bob Dylan

그가 다시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돌아온 “John Wesley Harding”(68)에서 “All Along the Watch Tower” 를 불렀을 때, “Light My Fire”에 익숙한 청중들은 “Like a Rolling Stone”과 같은 격정을 기대했겠지만 Dylan은 이미 그러한 열정이 한바탕 지나간 뒤였습니다.

게다가 그 다음 발표된 “Nashville Skyline”(69)에서는 오히려 더 부드러워져서 아예 거친 부분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보컬을 선보입니다. 팬들은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고 멀어져 갔으나 비평가와 언론들은 호평을 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랐지만 음악적으로는 더욱 나무랄 데가 없다고나 할까요 ? 전에 없이 음정과 박자, 하모니가 훌륭합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Doors, Jimi hendrix, Jefferson Airplane에 환호를 보냈고 Woodstock에서 사랑과 평화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British Invasion이 끝나고 이른바 Psychedelic의 시대가 온 것이죠.

한편 영국에서는 Led Zeppelin과 Deep Purple이 더욱 강력한 사운드를 만들고 있었고 젊은 David Bowie가 세상을 팔아치울 (Man who sold the world)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 어느 Rocker가 60년대에 Psychedelic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느냐구요 ?있다면 그건 아마 Bob Dylan일 겁니다. ‘존 바에즈’의 말처럼 Bob Dylan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 테니까요.

곧 Bob Dylan은 다시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어 “If not for you”, “Hurricane”, “Tangled up in blue” 등으로 계속하여 자신의 음악사를 써 나갑니다. 쉬지않고 변화하였고, 그러면서도 특유의 반골기질과 냉철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이어간 Bob Dylan 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1930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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