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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Aznavour (샤를르 아즈나부르)

오작교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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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Aznavour(1924 ~ )

 

우리가 샹송, 또는 프렌치 팝이라는 영역으로 부르는 프랑스의 대중음악으로서의 위상은 영어권 팝 음악과 비교했을 때, 그 세계적 장악력에서는 조금 밀릴지 몰라도 오랜 역사와 튼튼한 음악 수요층을 전 세계에 두고 있다.

 

15세기부터 이어진 그 오랜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모던 샹송의 영역만 이야기 하더라도 일찍이 20세기 초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f)와 같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후에도 자크 브렐(Jacques Brel), 프랑소아즈 아르디(Fran?oise Hardy), 이브 몽탕(Yves Montand) 등 다수의 싱어-송라이터들이 프랑스 국내를 넘어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로큰롤 시대 이후 영-미 팝 사운드가 프랑스에 물밀듯 밀려들어와 더욱 다양한 장르로 분화된 시점에도 프렌치 팝을 대표하는 스타들은 꾸준히 탄생했다.

 

세르쥬 갱스부르(Lucien Ginsburg), 프렌치 팝의 8-90년대를 빛낸 쟝 자크 골드만(Jean Jacques Goldman)와 같은 자국파들, 그리고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국내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엘자(Elsa), 제인 버킨(Jane Birkin)이나 죠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처럼 태생은 프랑스가 아니나 이제는 프렌치 팝의 일부가 된 아티스트들까지 프렌치 팝과 샹송이 아직까지 대중음악 씬에서 펼치는 위력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비록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여파를 타고 있지만 카를라 브루니(Carlar Bruni)가 현재 세계적으로 보여주는 인기도도 이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물론 그녀도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지만.)


물론 현재 프랑스의 대중음악의 트렌드가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에서 더욱 활발하게 가속도가 붙고 있기에, 고전적 샹송 보컬들의 입지가 세계적으로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세월의 흐름과는 아랑곳없이 80대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 세계를 누비면서 꾸준히 공연 활동을 하고, 음반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원로', 아니, 진정한 '고참' 남성 보컬리스트가 있다.

 

바로 그가 국내에는 싱글 [Isabelle]로 음악 팬들에게 친숙한 샤를르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이다.
그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써 지금까지 1000곡이 넘는 노래를 작곡했으며, 또한 영화 배우로서 60편에 이르는 영화에 출연했고, 세계적으로 총 1억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한 프랑스 대중문화의 거목이다.

 

아직도 그는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모이는 행사에 초청되어 노래를 부르는 단골손님이며, 1998년에 타임 온라인(Time Online)에서 선정한 '20세기의 연예인' 100위 명단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 게다가 그는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샹송의 매력을 가장 다양한 언어로 전 세계에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국계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어에도 능통한 그는 영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독일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샹송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파했다. 바로 이 점이 그를 프랑스의 국민 가수로서의 위상을 넘어 세계적 뮤지션으로서 그를 인정받게 만든 가장 큰 힘이었던 것이다.

 

팔순이 넘도록 쉼 없이 이어져온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음악 커리어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1924년 5월 22일생으로 프랑스의 생 제르망 드프레(Saint-Germain-des-Pres)에서 태어났고, 미국계 이민자 부모의 아들이었던 그는 이후 파리로 이주해 살았다. 서양인치고는 왜소한 체격와 프랑스계와 다른 독특한 이목구비로 인해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가족이 이미 연예계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일찍이 아역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뮤지컬 단체의 일원으로 순회공연을 다닐 정도로 노래와 연기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파리에서 우연히 음악 감독이자 가수인 피에르 로슈(Pierre Roche)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전문 가수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피에르가 자신의 아파트를 개조해서 운영한 '샹송 클럽'이라는 곳에서 샤를르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시와 노래를 접하고, 자신도 직접 가사와 곡을 쓰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을 확보했다. 그 후 거의 8년간 피에르와 함께 듀엣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는데, 1946년에는 레이몽 베르나르(Raymond Bernard) 감독의 '잘 가요, 내 사랑(Adieu Cherie)'에 처음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서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1946년 미셀린 루겔(Michelin Lugel)과 첫 결혼을 했으나, 8년 만에 이혼한 뒤 그의 인생과 음악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인물인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게 되었다. 에디트는 처음엔 피에르와 샤를르를 자신의 투어 팀에 합류시켰고, 피에르가 그와 결별한 이후에는 그를 솔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혼까지 이르지 못하고 결국 결별했다.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 그는 캬바레 싱어로서의 침체기를 뛰어 넘어 1954년에는 물랑 루즈, 다음 해에는 프랑스 뮤지션에겐 꿈의 무대인 올랭삐아 무대에 진출하면서 진정한 샹송가수로 인정받았다. (물론 영화 배우로서도 50년대 후반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6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는 내놓는 곡마다 히트를 기록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La Mamma], [Les Feuilles Mortes], [Le Temps, Et Pourtant]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그를 대표하는 트랙들이다. 그리고 그의 무대는 자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국 카네기 홀(1964년), 런던 애버트 홀(1967년) 등 세계로 범위를 넓혀갔다. 결국 그는 영-미 대륙에서도 배우와 가수로서 확실한 기반을 닦았고, 아예 헐리우드로 건너간 그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까지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등 미국의 인기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매력적인 보이스는 영화에서도 빛났기에, 당시 헐리우드 제작자들은 그를 매우 선호했었다고 한다.


70년대에 가수로서 그가 거둔 또 하나의 성과는 샹송 보컬로서 영국 차트에서 당당히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일이다. 바로 그 곡이 우리에게는 영화 '노팅 힐(Notting Hill)' OST에서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가 리메이크했던 [She]였다. 그 후에도 80년대와 90년대에도 그는 꾸준히 음반을 발표했고, 음악 활동과 별개로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인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회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선보여 그의 팬들에게 확고한 지지를 받았다.

 

특히, 1998년 아르메니아 지진 사태로 피해를 입은 난민들을 위한 자선 싱글 [Pour toi Arm?nie]는 프랑스의 대표적 가수들이 모두 참여했고, 프랑스 차트 18주간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유네스코에서 아르메니아 영구 친선 대사로 임명되어 자신이 거둔 기금을 해당 국가의 재건을 위해 전액 희사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까지 세워질 정도로 그는 '은사'의 대접을 받았고, 작년에는 해당 국가의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글 출처 :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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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8688 2014.01.03. 18:50

오작교님.

새해 인사가 늦어네요.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탄탄대로가 되길...

올해도 홈 가족을 위해서 좋은 음악 ....

추억이 떠오르는 아티스트을 올려 주셨네요.

대학시절에 음악 감상실에서 알바할때 노 신사분이   Charles Aznavour 음악을 신청하셨는데

구비하고 있지 않아서 들려드리지 못하여는데

다음날 댁에 있는 레코드 를 가지고 오셔서 틀어 드린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오작교님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오릅니다.

지금 바로 제게도 음원이 있는지 하드를 찿아 봐야 겠네요...

오작교 글쓴이 2014.01.04. 21:47

tv8688님.

예. 새해 복 많이 받았습니다.

올 한해는 정말로 말처럼 힘차게 뛰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즈나부르'의 노래들은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던 것인데

동안 기회가 되지 않아서 올리지 못했었습니다.

 

테마음악방을 주욱 돌아보니깐

너무 많은 곡들이 올려지다가 중단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되는 것이 더 중요한데,

가끔 새로운 음악에 빠져서 이 '계속'이 끊어지곤 합니다.

 

여유를 더 가져야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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