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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외탕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엘레지 Op.30

오작교 13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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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uxtemps Elegie for violacello(viola) & piano, Op.30

비외탕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엘레지 Op.30

Henri Vieuxtemps (1820 - 1881)

     

Henri Vieuxtemps

근대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사람이며, 베리오와 함께 근대 프랑코-벨기에 바이올린 악파의 지도자로 불리는 비외탕.

 

엘리지

브리튼의 <라크리메>부터 리스트의 <로망스>, 뷔어탕의 <엘리지>, 본 윌리암스의 <로망스>, 코다이의<아다지오>까지 비올라로 채색한 비감이 마음을 사로잡는 음반. 킴 카쉬카쉬안의 강렬한 비브라토와 농도 짙은 애상의 표현은 비견할 데 없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Kim_Kashkashian.jpg

     

 

Kim Kashkashian (viola)

Robert D. Levin (piano)

     

Kim_Kashkashian_Romances_n_Elegies.jpg

     

고독하고 화려한 느낌의 이 작품은 벨기에 출신이며 외젠 이자이의 스승으로 후에 프랑스 벨기에 악파의 유명한 한 줄기를 (이자이, 그뤼미오, 메뉴인, 셤스키,뒤메이 등) 이루게 하는 첨점에 자리하고 있는 벨기에 태생의 신동 바이얼리니스트이자 교육자로 알려진 비외땅의 보석같은 곡이다 바이얼린의 화려함과 첼로의 중후함 사이에서 늘 고뇌하는 비올라라는 악기의 극렬한 삶의 세계를 새삼 느끼게 해 주는 곡이다. 유리 바슈메트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킴 캐시카시언"은 순수 미국 태생의 비올리스트로 특히 현대 음악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중견 연주자이며 흐르는 선율은 세련되고 기품이 넘친다.

     

Vieuxtemps_.jpg

     

비외탕의 삶

대가의 눈에 띈 잠재력 넘치는 소년의 연주

비외탕 일가의 가장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앙리 비외탕(Henry Vieuxtemps)은 1820년 2월 17일 벨기에의 베르비에에서 태어났다. 4세부터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조율사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르클루(M. Lecloux-Dejonc)를 사사한 그는 6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실력을 선보이게 된다.

비외탕은 1827년 11월 29일에 리에지(Liege)의 Socie、te、 Gretry 연주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이듬해 초에는 브뤼셀에서 몇 차례 연주를 하였는데 이곳에서 대(大)바이올리니스트인 베리오(Beriot)의 이목을 끌어 그의 제자가 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다. 1829년 5월에 제자를 파리로 데리고 간 스승은 비외탕의 데뷔를 위한 무대를 개최해 주었고, 그는 로드 협주곡 제7번을 연주하여 청중의 큰 호응을 얻게 된다. 본 음악회를 지켜본 페티(Fetis)는 비외탕을 ‘타고난 연주가’라 격찬하기도 하였다. 1831년에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베리오는 탁월한 기량을 지닌 제자를 열성을 다해 4년 동안 지도하였다.

 

독일 연주여행의 성공과 파가니니와의 만남

1833년 비외탕은 늘 엄격한 연습을 고집했던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음악적 지평을 넓히기 위해 독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그는 당시에 저명하던 음악가들­슈포어(Louis Spohr), 몰리끄(Wilhelm Bernhard Molique), 마이세더(Joseph Mayseder)­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을 접하게 된다. 비외탕은 순회연주 도중 지몬 제흐터(Simon Sechter)에게 대위법을 배우고, 베토벤과 가까이 지내던 음악가들의 사교모임에 합류하게 되면서 1834년 초 비엔나에 정착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당시 실질적으로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익히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비외탕은 2주간의 연습 끝에 이루어진 1834년 3월 16일의 연주회에서 베토벤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복원시키게 된다. 지휘자이자 비엔나 음악원 학장이었던 란노이(Eduard von Lannoy)는 그의 연주가 ‘독창적이고 참신하면서도 고전적이다’라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라이프치히에서는 작곡가 슈만으로부터 그의 연주가 파가니니에 비견된다는 평을 듣는 등 연주여행을 통해 비외탕의 명성이 독일 전역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필하모닉 소사이어티(Philharmonic Society)에서 이루어진 그의 런던 데뷔 무대는 독일에 비하면 그리 열광적인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하였으나, 그곳에서 자신에게 음악적 영감을 심어주고 당시 런던 전체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린 바 있는 파가니니를 만나 음악적 조언을 듣게 된다.

 

작곡 공부와 러시아 연주여행 재개를 통한 지속적인 발전의 길

비외탕은 1836년 초까지 라이하(Antoine Reicha)에게 작곡을 배우며 파리에서 지냈다. 그는 스스로 비오티 협주곡의 웅장하고 장대한 형식에 근대의 테크닉적 진보에 발맞춘 화려한 기술을 결합시킨 곡을 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파가니니로부터의 음악적 영향을 명백히 보여주는 바이올린 협주곡 f#단조(나중에 협주곡 제2번 Op.19로 출판되었다)이다.

라이하 밑에서 작곡 수업을 마친 비외탕은 1837년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특히 러시아에서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1840년 3월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근간에 작곡된 「환상 카프리스(Fantaisiecaprice) Op.11」과 제1번 협주곡이 초연되기도 하였다. 첫번째 협주곡의 성공 여파는 브뤼셀에서도 이어졌으며, 1841년 1월 12일 파리에서 베를리오즈는 “훌륭한 독주자로서의 기량이 넘쳐나는 비외탕은 이제 작곡가로서도 그에 못지 않은 명망을 얻고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1841년 4월 19일에 비외탕은 다시 런던을 찾아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그는 런던을 자주 방문하였고, 1845년 첫 시즌부터 베토벤 4중주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1843∼4년, 피아니스트 탈베르크(Talberg)와 함께한 1857∼8년, 그리고 1870∼71년 3회에 걸친 미국 연주여행을 성황리에 끝내었다.

 

러시아에서 맞이한 비외탕의 전성기

러시아 황제의 전속 궁정음악 연주자로서, 그리고 러시아의 바이올린 연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성 페테르부르크음악원 교수로 지냈던 1846∼52년의 5년 동안 비외탕은 러시아에서 절찬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불리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4번 d단조를 완성하고, 1851년 12월에 파리에서 연주하였다. 베를리오즈는 제4번 협주곡을 ‘바이올린 솔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장대한 교향곡’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한편, 비에니아프스키가 가장 아끼는 곡으로 유명해진 비외탕의 협주곡 제5번 a단조는 1861년에 완성되었다.

 

혼신을 다한 후진 양성과 벨기에 악파의 성립

1844년에 비엔나 출신 피아니스트인 요제핀 에더(Josephine Eder)와 결혼한 비외탕은 1855년 프랑크푸르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으나, 1866년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2년 후에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게 되자, 그는 해외 연주여행에 몰두하여 그로 인한 성공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1871년 비외탕이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브뤼셀 음악원으로부터 교수 제의를 받게 된다. 그는 벨기에 바이올린 악파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전력을 다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Eugene Ysa¨ye)도 이 시기 그의 제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1873년에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몸이 마비된 비외탕은 비에니아프스키에게 자신의 교수 자리를 임시로 위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1877∼8년부터는 병세가 호전되어 조금씩 레슨을 재개하게 되었지만, 1879년에는 학교측으로부터 결국 사임 당하게 된다. 병마와 싸우던 그는 2년 후 알제리 무스타파의 한 요양소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Portrait_du_Violoniste_Henri_Vieuxtemps-opazizi.jpg

     

비외탕의 음악세계

기교와 표현력 사이에 음악적 ‘중용’을 꾀한 독창적인 작곡가

비외탕의 작곡가적인 면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베를리오즈와 다른 평론가들의 일화는 오늘날 다소 과장된 채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 정황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할 일이다. 비외탕이 1840년에 그의 첫 협주곡을 작곡했을 때 베리오의 협주곡들은 청중들에게 품위있는 오락거리 이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고, 비오티(Giovanni Battista Viotti), 로드(Pierre Rode)와 크로이처(Rodolphe Kreutzer)의 레퍼토리들은 너무 고전적이었던 반면, 파가니니의 협주곡들은(당시는 출판되기 전이었지만) 현란한 기교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비외탕은 솔로 파트를 풍부히 하고, 근대적인 교향곡 구조로 구상함으로써 프랑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개념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작품에는 파가니니의 마법과 같은 기교는 없지만, 베리오와 파가니니의 기술적 요소들을 자신의 독자적인 어법으로 융해시켜 가장 바이올린다운 음악 양식을 창조해냈고, 이는 19세기 내내 유행하게 된다. 비외탕은 제4번 협주곡을 통해 카덴차를 포함하는 즉흥적인 서주곡, 느린 악장, 스케르초와 피날레로 구성되는 4악장 구조 형식을 고안해내었다. 제5번 협주곡에서는 마지막에 카덴차가 붙는 통합된 한 악장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이처럼 비외탕은 협주곡의 개혁자로서 리스트에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형식을 적합한 음악적 내용으로 채우는 일에 늘 성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의 영웅주의는 지나치게 극적이었고, 그의 열정은 너무 수사적이었고, 그의 선율은 과할 정도로 감상적이었다. 매우 잘 작곡된 일부 작품들에 한하여 그러한 그의 음악이 고결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우아함이 넘치는 특색을 띠었다.

비외탕의 바이올린 소품들은 음악적으로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보다 화려하고 밝다. 그러나 그 중 가장 걸작들은 오늘날의 얄팍한 솔로 레퍼토리들과는 거리가 있다.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무장된 탁월한 비르투오조

비외탕은 풍부한 음색과 뉘앙스 넘치는 표현을 구사하면서도 정확하고 절도 있는 연주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발현하는 솔리스트였다. 또한 뛰어난 실내악 주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바흐, 케루비니 등의 작품들로 구성된 실내악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연주자 조직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동년배들은 비외탕이 훌츠, 린케(Joseph Linke)로부터 내려오는 비엔나 실내악 전통의 대가라고 서슴없이 칭한다. 이처럼 그는 실내악을 즐겨 연주하며 애호가 양성과 실내악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꾀하였던 것이다.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바이올린 연주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자,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고 정확한 해석에 바탕을 둔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수많은 청중들에게 뜨거운 감격을 선사한 비외탕은 거장의 면모를 지닌 연주가로서, 19세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글·박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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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아 2011.10.19. 03:23

천재고 신동이라도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네요..

그러면서 모두 그것을 바라지요..

윗 글을 읽으면서.. 비외탕도 그리 순탄한 삶이 아니었구나 싶으니 마음이 안됐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미모가 대센지.. 얼굴도 실력도 출중한 사람들이 어찌 이리 많은지요..

즐감하고요..

단악장 한 곡으로 끝나니 대단히 아쉽네요..ㅎㅎ..

비외탕에게.. 킴 캐쉬카시언에게.. 오작교님에게 드립니다.

오작교 글쓴이 2011.10.19. 09:06
루디아

국화.

신이 맨 마지막에 만들었다는 꽃.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꽃입니다.

이슬을 머금고 있어서인지 더욱 더 아름답네요.

감사합니다.

여명 2011.11.24. 13:42

연주도 이미지도 안나옵니다.

저도 국화를 몹시 좋아한답니다.

달콤한 향이 아닌 그윽한 그향이 있기에.....

오작교 글쓴이 2011.11.24. 15:21
여명

연주도 이미지도 수정했습니다.

늦게 발견이 되어서 늦게 수정이 되었군요.

여명 2011.11.24. 21:07
오작교

오우~~ 기막힌 이연주.....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요즈음 편찮으시답니다.

방송을 중단 하시고요...

많이 맘이 아프답니다.

오늘도 사모님이랑 통화 하고요...

선생님이랑 황인용 선생님이랑 원래 클래식 이거든요.

 덕분에 많은 클래식 이야기 오페라 이야기 동요 이야기 등등

사오십년 세월동안. ...

선생님 음악 이야기 속에서 살었었는데....

연주를 들으며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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