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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100년 악기 100년 - 색소폰 4

오작교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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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50년대에서 60년대로 넘어오면서 재즈는 그야말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드 밥이라는 재즈의 한 양식(樣式)이 클럽가와 마니아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을 무렵 갑자기 등장한 보사노바 재즈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브라질의 민속 음악인 삼바를 발전시킨 보사노바. 영화 [흑인 올페]의 음악을 담당한 브라질 음악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루이즈 본파에 의해 널리 알려진 보사노바는 조빔이라는 인물이 [Samba De Orfeus]를 발표하면서 처음 대중들에게 선보였고, 루이즈 본파는 영화 주제곡인 ‘Manra De Carnival’(카니발의 아침)에서 재즈와 삼바를 교묘히 결합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보사노바의 창시자로 조빔과 본파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보사노바와 스탄 겟츠


보사노바를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전파한 인물은 미국의 재즈 뮤지션 스탄 겟츠이다. 그러면 스탄 겟츠는 60년대에 갑자기 등장한 신인인가? 그렇지 않다. 스탄 겟츠는 40년대부터 활약한 중견 재즈 색소포니스트로 10대 시절 이미 연주력에 있어서 평론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인물이다. 그러던 스탄 겟츠는 한창 멋드러진 연주로 스타덤에 올라 있을 무렵인 40년대 중반, 갑자기 불어 닥친 비밥과 하드 밥의 열풍으로 잠시 일선에서 물러서 있어야만 했다. 그 후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의 소개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만났고 두 뮤지션의 의기투합으로 보사노바 앨범이 탄생되었다.

 

스탄 겟츠는 벤 웹스터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음을 길게 늘어트리는 비브라토 연주를 선보였고 테너 색소폰이 주는 묵직한 톤을 감미로운 톤으로 바꿔 연주했으며, 스윙감이 풍부한 미디엄 템포에서의 연주는 또 다른 벤 웹스터의 등장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스탄 겟츠가 젊은 시절 우디 허맨 밴드에서 활약할 당시 주트 심스, 세르쥬 살로프, 허비 스튜어트, 그리고 스탄 겟츠를 가리켜 4인방으로 칭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스탄 겟츠가 얼마나 뛰어난 연주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탄 겟츠에게는 늘 불운이 따라 다녔다. 보사노바 재즈로 잠시 인기를 되찾나 싶더니 또 다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즈계는 록의 인기로 주춤하다가 알 수 없는 멜로디와 난해한 즉흥연주가 난무한 프리 재즈의 세계로 빠져 들더니 급기야 많은 연주인들이 미국을 떠나 유럽을 택하는 변화의 시대를 맞이해야 했다. 이로 인해 스탄 겟츠는 또 다시 마약과 함께 세월을 보내야만 했는데, 이 때 적당한 멜로디와 난해한 듯 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주를 들고 나온 정통 재즈 맨 웨인 쇼터는 재즈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에서 매우 발빠른 행동으로 후세에 큰 이름을 남겼다.

 

 

프리재즈와 오넷 콜맨


프리 재즈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며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했던 뮤지션은 오넷 콜맨이다. 오넷 콜맨은 웨인 쇼터보다 한층 더 난해한 연주로 아방가르드적 색채가 혼합된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60년대 재즈계는 이상 기류에 편승하여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의 연주에 끊임없는 혼을 불어넣는 연주인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재즈가 연주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 핸더슨 같은 인물은 프리 재즈가 가장 큰 영역을 확보하고 있던 60년대 중, 후반에 한시도 쉬지 않고 전통에 입각(立脚)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스탠리 터렌타인 역시 블루 노트 사에서 스탠더드만을 고집하며 음악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사회적 흐름과 색소폰 주자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합류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스탠리 터렌타인 역시 70년대로 넘어 오면서 음악적 색깔을 바꿔 퓨전이 가미된 펑키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스탠더드에서 그 맛을 자랑하는 그의 색소폰 음색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묵직한 테너의 여유 있는 연주와 덱스터 고든 스타일의 풍만한 사운드는 테너 색소폰만이 낼 수 있는 사운드를 가장 잘 소화하는 연주인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50년대부터 꾸준히 활동하던 잭키 맥린 역시 60년대로 넘어와 펑키한 사운드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일부 연주인들은 고유의 음악적 영역을 자랑하는 음반사와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맞춰 나갔는데 소니 크리스라는 인물은 60년대 후반 프레스티지(Prestige)사에서 펑키한 리듬을 바탕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기관총이라는 애칭이 알토 색소포니스트 소니 크리스의 뛰어난 연주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찰리 파커의 속사포 같은 연주와도 비교될 만큼 뛰어난 연주력을 선보인 소니 크리스는 1970년대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다가 77년 11월 19일 권총으로 자살한다. 소니 크리스의 대표작 [Up Up And Away] [Rockin'' in Rhythm] 등의 앨범들을 들어보면 그의 뛰어난 연주력에 감탄할 것이다. 특히 [Rockin'' in Rhythm]의 첫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비틀즈의 ‘Eleanor Rigby’는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들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다.

 

 

70년대 다시 프리재즈로


70년대 가장 주목할 만한 재즈 스타일은 역시 프리 재즈이다. 퓨전 재즈 역시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프리 재즈만큼 다양한 패턴을 보인 재즈는 드물다. 이 시기 다양한 흡입력으로 재즈신을 장악한 여러 연주인들 가운데 줄리어스 햄프힐은 매우 독특한 스타일에 속한다. 실험성이 매우 강한 줄리어스는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다소 급진적인 연주를 보였는데 일부 재즈 평론가들은 "그의 연주에서는 재즈적인 요소를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아트 록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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