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편성론(編成論) (4)
재즈 편성론(編成論) (4)
편성에 따른 편곡의 확대, 퀸텟, 섹스텟, 셉텟
퀄텟까지의 편성과 다르게 5중주, 퀸텟 이상이 연주할 때는 무엇보다 편곡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물론 독주나 듀오에서도 편곡도 언제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듣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이에 시선이 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음악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연주력을 바탕으로 두 명 이상의 관악기 연주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선보이는 순수한 잼 세션 무대를 제외한다면, 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편곡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해석, 그리고 접근 방법이 드러나는 것은 퀸텟 이상의 편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시도된 퀸텟은 피아노 트리오 위에 트럼펫과 색소폰이 하나씩 가미된 편성이었고 이는 지금도 앙상블로서의 재즈가 보여주는 가장 일반화된 형태이다. 트럼펫이란 악기가 비교적 다른 관악기에 비해 넓은 음역을 지니고 있고, 곡에 따라 혹은 그 밴드의 음악성에 따라 소프라노에서 앨토, 테너, 그리고 바리톤 색소폰 중 하나가 가세하는 형태. 우리는 이런 퀸텟 편성을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정통 재즈를 통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비밥과 쿨 재즈 계열에서 어느 거장급 연주자가 보여준 음악 활동의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대부분의 연주자는 여러 퀄텟과 퀸텟에서 활동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리고 퀸텟에서 어느 특정한 관심도에 의해 또 다른 관악기가 포함된다거나 기타, 혹은 비브라폰 같은 악기들이 가세하는 경우 우리는 어렵지 않게 6중주, 섹스텟의 편성을 만나고 나아가 7중주, 셉텟의 편성을 접하게 된다. 앞서도 편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이들 앙상블을 듣는 구체적인 묘미는 어디에 있을까.
앙상블로 연주되는 재즈에서 편곡의 접근 방법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 중에 특히 세 가지 방법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서포팅(Supporting), 에코우잉(Echoing), 췌이싱(Chasing)이 그들이다. 서포팅은 전면에 나선 한 악기의 연주에 화성 변화를 꾀하는 다른 악기가 받쳐주는 경우, 에코우잉은 서포팅과 유사하지만 시간의 격차를 두고 앞선 악기의 모티프(Motif)를 반복하는 경우이다. 서포팅과 에코우잉의 차이점은 대위법의 적극적인 도입 여부에 있다. 즉 에코우잉이 서포팅에 비해 대위법적이다.
가수가 부르는 멜로디 뒤에서 순수하게 코러스를 노래하는 다른 가수의 이미지가 서포팅에 가깝다면 에코우잉은 리더를 따라 돌림 노래를 하는 가수의 그것과 흡사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재즈가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던 부름과 응답(Call & Response)의 일환으로 파악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췌이싱은 역시 에코우잉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리듬이나 화성의 구애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인이 앞선 악기의 소리를 견제하거나 북돋는 역할을 한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방법들은 퀸텟 이상의 편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우이며 가장 기본적인 편곡의 접근이다. 듣는 입장에서 이런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재즈를 듣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이 동원되는 경우, 앙상블로 연주되는 재즈곡의 참맛은 어디에 있을까.
화성의 구축은 음악을 하나의 공동체로 파악하거나 반대로 철저한 견제를 위해 도입되었다. 물론 전자의 경우가 보다 원시적이며 단순히 모서리를 맞추어 책 정리를 하듯 끼워 넣는 식의 편곡은 더 이상 아무런 매력을 전해주지 못한다. 트럼펫과 테너 색소폰이 피아노 트리오와 퀸텟을 구성하여 연주했을 때, 두 악기의 음색은 차이가 크지만 어떤 음역에서, 혹은 얼마만한 간격을 둔 화성을 도입하여 연주하는가 하는 점이 그 곡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
가장 쉽게 쓰이는 Minor 3rd, Minor 5th, Diminished 7th의 화성, 혹은 Augmented 5th의 화성은 듣는 이에게 '재즈적이다'는 감성을 부여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트럼펫이 연주하는 어떤 멜로디 밑에 테너 색소폰이 연주하는 멜로디의 화성이 트럼펫 멜로디보다 3칸 정도 낮은 음을 연주하는 것과, 정확히 3칸이 아닌 2칸 반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을 때의 차이점은 확연하다. 물론 후자가 재즈적인 효과를 지닌다.
시대가 흐르면서 음악인들이 사용한 화성의 개발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앞서 얘기한 서포팅, 에코우잉, 췌이싱의 방법이 효과적으로 동원되었을 때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재즈를 자주 접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현상에 익숙하다. 아마도 재즈를 처음 듣는 이들이 느끼는 난감함의 실체는 바로 이런 재즈만의 특성에 아직 귀가 열려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이루어진 앙상블의 연주를 접하며 그것이 어느 정도의 역사성과 참신함을 동시에 수반할 때, 우리는 그 연주를 두고 '좋은 편곡'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재즈
많은 이들이 빅 밴드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빅 밴드는 재즈의 음악적 특성, 장르 구분과는 무관한 순수한 악단 편성, 혹은 편곡 구성의 표현일 뿐이다. 빅 밴드로 연주된 곡 중에 유난히 스윙 곡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관례상, 혹은 사회적인 여건상 나타났던 현상이지, '대규모 편성으로서의 연주'라는 빅 밴드의 본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학자에 따라서는 빅 밴드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이는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연주되는 빅 밴드의 모습이 엄격히 말해 일반 퀸텟이나 섹스텟, 혹은 셉텟 정도의 편곡 구성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빅 밴드를 실내악(室內樂)으로 보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타당하다.
빅 밴드로 구분하기 위한 편성의 인원수에 어떤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8중주, 옥텟(Octet)이나 9중주, 노넷(Nonet) 이상부터는 빅 밴드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10중주, 텐텟(Tentet)부터는 누구라도 빅 밴드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정확히 갖추어진 빅 밴드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고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시각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악단 편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곡 방법의 문제이지 인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글에서 피아니스트 말 왈드론의 어록, '재즈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편성은 듀오'라는 얘기를 인용한 적 있다. 빅 밴드에 대한 얘기까지 논의가 진척된 상황에서 이 말을 좀 더 풀어 보면, 재즈라는 음악이 '직관'과 그에 대한 '견제'가 일구어내는 긴장감에 상당 부분 핵심을 지니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빅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에서, 이런 두 가지 움직임 이외에 중재자, 즉 제3의 존재가 생길 수 있고, 그 중재자와 다른 이들의 관계 속에 피어나는 또 다른 흐름의 탄생과 그 새로운 흐름을 견제하는 제4의 존재가 설정될 수 있다.
두 말 할 것 없이 이런 복합적인 흐름의 인지는 빅 밴드 듣기의 핵심이다. 천편일률적인 편곡이 발길에 채이는 빅 밴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앞서 얘기한 '복합적인 흐름의 인지'가 빅 밴드 듣기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빅 밴드는 우스개 소리처럼 무늬만 빅 밴드인 것이다. 전통의 고수라는 측면에서 예전에 행해진 거장의 편곡을 들을 바에는, 이미 시중에 널려 있는 앨범을 구해 듣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편성의 새로운 꿈을 위하여
실험적인 편성을 시도하는 음악인을 종종 만나게 된다. 소규모 앙상블을 생각할 때, 바이올린-기타-베이스의 현악 편성으로만 이루어진 스트링 트리오 오브 뉴욕(String Trio Of New York)이나 네 명의 색소폰 연주자들이 리듬과 화성을 모두 함께 관장하는 월드 색소폰 퀄텟(World Saxophone Quartet)과 로바 색소폰 퀄텟(Rova Saxophone Quartet) 같은 밴드가 먼저 떠오른다. 베이스와 드럼의 단순한 리듬 섹션을 배경으로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 프렌치혼 같은 브라스 악기들만으로 편성된 레스터 보위(Lester Bowie)의 브라스 판타지(Brass Fantasy) 악단도 있고 일곱 명의 피아니스트들이 함께 한 피아노 세븐(Piano Seven) 같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참신한 편성'이라는 말로 관심 둔 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미 이단적인 형태의 편성이 재즈에서는 여럿 출현해왔으며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얘깃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새로운 편성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편곡이 일반적인 편성의 그것보다 그다지 발전되었다고 할 것 없는 미미한 수준의 것이라면 무모한 시도는 그치고 전통을 따르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물론 위에 언급한 몇몇 예들은 나름대로 높은 성과를 올린 밴드들이다.
오히려 한 번쯤 눈여겨볼 것이라면 한 가지 계열의 악기만으로 이루어진 빅 밴드 편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10명의 색소폰 연주자들이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거나 12명의 기타리스트들이 함께 연주한다면 어떨까. 충분히 가능한 얘기지만 이런 경우를 빅 밴드로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좀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편성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경우를 이야기하려면 구성론에 대한 논의와 곡의 구조에 대한 접근이 필수적으로 거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