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 팝 스타들의 다채로운 이력서
펑퍼짐한 옷차림에 고무장화를 신고 갯벌에 퍼질러 앉아 굴을 따고 있는 빌리 조엘(Billy Joel)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혹은, 황금빛 평원 한 귀퉁이에서 땀을 뻘뻘흘리며 삽질에 여념이 없는 스팅(Sting)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트럭을 모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모습은 간단히 떠올릴 수 있다. 그가 트럭 운전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빌리 조엘이 가수로 성공하기 전 굴 채집 잡부와 페인트 공으로 연명했다는 것과, 스팅이 시골마을에서 노역을 하며 목구멍에 풀칠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엘비스나 스팅, 빌리 조엘의 경우와 같이 뮤지션으로 데뷔하기 전에 단순/육체노동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던 아티스트들은 참으로 많다. 영화 <8마일>을 통해 잘 묘사된 것과 같이, 래퍼 에미넘(Eminem)은 미국 자동차 공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틈틈이 랩 가사를 썼고, 오아시스(OASIS)의 리더인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또한 ‘영국 가스(British Gas)’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잡부 일을 한 바 있다.
노엘 갤러거는 이 회사에서 산업재해를 입었는데, 가스 파이프를 나르다가 떨어뜨려 오른쪽 발의 뼈들이 모두 으스러져 버린 것이다. 덕분에 노엘은 ‘창고 관리’라는 다소 편한 보직으로 인사발령을 받았고, 창고를 지키는 한가한 시간동안 그가 써낸 곡들은 차후 오아시스의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를 통해 빛을 보았다.
이외에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나 소니 롤린스(Sonny Rolins)처럼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들도 각각 뉴욕 우체국 소속의 집배원 노릇이나, 일용직 노동자/청소부 등의 단순 노무직으로 연명했던 시기가 있었다. 두 사람은 데뷔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지면 다시 ‘체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다고.
음악이 아니라 다른 예술 부문에서 데뷔하기 위해 준비하다가 진로를 급선회한 경우도 꽤 있다. 도어즈(The Doors)의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애초 영화감독을 꿈꾸며 UCLA 영화과를 다녔다.
당시 그의 과 동기생으로는 <대부>, <지옥의 묵시록>으로 유명한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와 <바보들의 행진>으로 유신시대 한국영화의 전설이 되어버린 감독 하길종이 있었다. 짐 모리슨이 UCLA 영화과 재학시절 찍었다는 단편 습작은 아직까지 전설로만 회자되고 있다.
블러(Blur)의 데이먼 알반 또한 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드라마 스쿨에 입학한지 1년 만에 자신에게는 배우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음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곡 작업에 열중했다고 한다. 데이먼의 예시와 같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명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능력 또한 성공한 자의 중요한 자질일 수 있는 것이다.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이는 스포츠 선수 출신 아티스트들도 있다. 메탈리카(Metallica)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는 10대 후반, 고향인 덴마크에서 ‘프로 테니스 스타’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어느날 밤 딥 퍼플(Deep Purple)의 공연을 본 후 라켓을 꺾었다고. 또한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잭 와일드(Zakk Wylde)가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강단과 위력을 갖춘 ‘피킹(picking)’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음악과 관련된 이력을 보유한 뮤지션들도 많다. 얼마 전 사망소식으로 수많은 기타 키드들을 탄식하게 했던 판테라(Pantera)의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Dimebag Darrell)은 텍사스 기타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수상한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전업 음악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스팅(Sting) 역시, 시골마을의 잡역부 일 뿐만 아니라, 천주교계 초등학교에서 음악 교사직을 수행한 이력 또한 가지고 있다.
‘교사’직과 관련해서는 일본의 2인조 락 유닛, 비즈(B’z)의 보컬 이나바 코시(稻葉浩志)가 고등학교 수학교사 출신이라는 점과, 한국의 락 밴드 체리 필터의 보컬 조유진이 중학교 교사 출신이었다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음악이란 사람이 만드는 것.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음악에 녹여낼 수 있는 삶의 깊이는 그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 성공한 아티스트들이 보유한 다양한 이력들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