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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역사 - 3(1950년대의 팝음악 2)

오작교 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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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역사 - (3) 1950년대의 팝음악 2 

 

 

로큰롤 이외의 다른 음악들

 

1950년대 로큰롤은 춤추기 위한 음악이었다. 파티, 클럽, 콘서트 어디에서건 젊은이들은 로큰롤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빠른 로큰롤이 십대를 사로잡았지만 나긋나긋한 발라드의 인기전선에는 이상이 없었다. 발라드는 여자 아이들을 유혹하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발라드와 스탠더드 팝 분야에는 아무래도 백인들의 강세가 이어졌다.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빙 크로스비 등 ‘스탠더드 빅3’를 비롯해 페리 코모, 토니 베넷, 앤디 윌리엄스 등의 40년대부터 활동해왔던 백인 가수들의 인기는 여전했다. 이들의 황금계보는 조니 마티스로 이어졌다. 조니 마티스의 히트 곡 ‘It’s Not For Me To Say’와 ‘Wonderful! Wonderful!’은 각각 39주 동안 싱글 차트에 머물며 오랜 사랑을 받았고, 딘 마틴의 ‘Memories Are Made Of This’는 6주간 빌보드 차트 1위의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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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팝 가수들로는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 패티 페이지(Patti Page), 로즈마리 클루니(Rosemary Clooney), 도리스 데이(Doris Day) 등이 활약했다. 스탠더드의 여왕 패티 페이지는 ‘Changing Partner’에서 ‘자유연애’의 은근한 뉘앙스를 남겼다. ‘Tennessee Waltz’, 재즈적 느낌이 물씬했던 로즈마리 클루니는 ‘Come On A My House’ 등의 노래를 통해 우아한 격조를 보여주었다. 배우 겸 가수였던 도리스 데이는 ‘Whatever Will Be, Will Be(Que Sera, Sera)’ 같은 곡에서 낙천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을 전했다. 피아노 주자였던 냇 킹 콜은 흑인으로는 거의 유일한 스탠더드 팝 가수였다. 냇 킹 콜은 거의 백인에 가까운 달콤한 크루닝 창법으로 백인들에게도 큰 호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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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jpg 냇 킹 콜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발라드는 비단 백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1940년대부터 ‘두~왑’이라는 목소리로 리듬을 맞추며 부르는 흑인 그룹들의 발라드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를 들려준 여러 흑인 그룹들이 히트 퍼레이드 순위에 등장했다. ‘Yakety Yak’을 불렀던 코스터스(Coasters), ‘Stand By Me’라는 불멸의 히트 곡을 남긴 벤 E. 킹이 속해있었던 드리프터스(Drifters), 플래터스(Platters), 문글로스(Moonglows) 등이 대표적인 그룹들이다. 그 중 플래터스는 ‘Only You’, ‘Smoke Get In Your Eyes’, ‘The Great Pretenders’ 등의 명곡들을 발표하며 최고의 흑인 그룹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1957년경에는 또 다른 로큰롤 스타일이 등장했다. 바비 달린(Bobby Darin), 팻 분(Pat Boone), 디온(Dion), 폴 앵카(Paul Anka), 리키 넬슨(Ricky Nelson) 등 남부 출신이 아닌 백인들에 의한 로큰롤이었다. 그들의 음악적 배경은 로큰롤의 전례가 아니라 백인 도시 음악이었다. 그들은 기존의 로큰롤보다 좀더 매끄럽고 온화하게 노래했다. 분명히 로큰롤적인 리듬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기본은 틴 팬 앨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의 스타일은 거칠고 세속적인 로큰롤의 특성을 생략했다. 대신 현악기 중심의 스튜디오 오케스트라와 감성적이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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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인 취향의 인스트루멘틀 팝(Instrumental Pop)도 5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다. ‘이지 리스닝’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45명에 이르는 악단이 연주하는 경음악(light music)이었는데, 주로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파되었다.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만토바니(Mantovani) 등이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다. 특히 만토바니 악단은 45인조 악단 중 32명이 현악기를 담당할 정도로 스트링을 강조했다. 그의 ‘Around The World’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2주나 머물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14.jpg 같은 시기, 영국 음악가들은 미국의 음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50년대에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민요와 미국의 로큰롤을 융합해 스키플(skiffle)이란 음악을 탄생시켰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이고 소박한 스타일의 음악이었는데, 이 스키플이 영국의 로커들에게 갖는 의미는 리듬 앤 블루스가 미국의 로커들에게 갖는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롤링 스톤즈나 비틀즈가 모두 이 스키플 밴드에서 출발했다. 또 클리프 리처드는 밴드 섀도우스(Shadows)와 함께 영국적 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로큰롤의 죽음, 그러나 다가오는 부활의 빛

 

5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로큰롤이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인가 완전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 첫 신호탄은 리틀 리처드가 기독교로 귀의한 것이었다.

 

‘A-Wop-Bop-Aloo-Bop-A-Lop-Bam-Boom’이라는 불멸의 가사를 남긴 그는 1957년 갑자기 로큰롤을 팽개치고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인 1958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군복무를 위해 음악계를 떠났다. 미군 이발사의 면도날에 의해 엘비스의 상징이던 구렛나루가 밀어지던 그날.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화가 끝나는 순간이며, 그것은 존 레논에 의하면 ‘로큰롤의 죽음’이었다.

 

제리 리 루이스 역시 열세 살짜리 사촌 마이라와 결혼한 것이 영국 언론에 의해 집중포화를 당했고 결국 로큰롤을 포기해야 했다(그는 이후 예전에 했던 컨트리로 복귀했다). 게다가 로큰롤의 보급자였던 디제이 앨런 프리드는 페이올라 스캔들 때문에 방송국에서 해고되었다. 더 이상 라디오에서도 로큰롤을 틀지 않았다.

 

1959년은 로큰롤 역사에 있어서 최악의 해였다.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척 베리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미성년인 여자를 데리고 주경계선을 넘어 연방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과 여자가 나이를 속였다는 점, 그리고 재판이 인종주의적인 이유로 날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랜 재판 끝에 결국 척 베리는 3년형을 선고 받았다(그러나 그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면서 나중 복권되었다). 1960년 영국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던 에디 코크런과 진 빈센트의 택시가 화물 트럭과 충돌했다. 코크런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빈센트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여생을 장애로 고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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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로큰롤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 로큰롤의 위치는 위태로웠고 곧 사라질 듯 보였다. 로큰롤은 그러나 얼마 후 영국 록 밴드들에 의해 극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그 주역들은 바로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였다. 이들은 영국인이면서도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로큰롤을 찾아 들으며 성장했으며 그들이 10대 후반의 나이이던 50년대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로큰롤 밴드를 결성해 척 베리, 버디 홀리, 리틀 리처드 등의 음악을 커버하기 시작했다. 로큰롤의 죽음과 더불어 50년대는 저물지만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성장과 더불어 역동하는 60년대를 맞게 된다.

 

 

1950년대 미국과 영국의 사회, 문화


17.jpg 전후 새로운 세계의 강자는 미국이었다. 50년대 접어들면서 미국은 훨씬 더 부유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큰 차와 가전제품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아주 희망적인 미래관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동시에 ‘청년 문화(Youth Culture)’도 태동했다. 미국 십대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차별된 문화를 갖기 시작했다. 다른 취향과 태도를 지닌 신세대였다.

 

젊은이들은 보수적인 백인 어른 세계의 낡은 소리에 등을 돌렸다. 그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타입의 음악들, 빌 헤일리(Bill Haley)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연주하는 로큰롤을 들었다. 점점 더 흑인 가수의 신선한 있는 사운드가 미국 십대들에게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그 미국의 새로운 음악을 수입했다.

 

미국은 모든 면에서 안정된 시기였다. 2차대전의 승리로 유일한 강대국이 된 미국은 1945년부터 역사상 전례 없이 길고 꾸준한 경제성장과 번영을 이룩했다. 이러한 경제적 번영은 구매력의 증대와 베이비붐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출생률의 폭발적 증가는 전국에 걸쳐 쇼핑센터, 공장, 운동경기장이 새로 새워지는 건축붐을 일으켰다. 교외에 생겨나는 새로운 주거단지에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경제적 번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방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그 혜택은 대부분 백인 중산층에게만 돌아갔다. 미국정부는 빈민, 흑인, 유태인 등에게는 주택융자 혜택을 주지 않았다. 또한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빈민굴을 소탕했지만 빈민굴이 있었던 곳에는 들어선 것은 저소득층의 주택이 들어선 것이 아니라 주차장, 쇼핑센터, 고층빌딩 등이었다. 흑인들은 여전히 소외당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지위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18.jpg 사회적으로는 가정과 모성애, 종교가 강조되었다. 반면 청소년들은 텔레비전 앞에만 있는 부모들과는 달리 영화관에 몰려들었다. 할리우드는 [이유 없는 반항], [폭력교실] 등 젊음에 대한 예찬과 숭배를 바치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백인 가수들은 종전까지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흑인들의 리듬 앤 블루스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또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카 스테레오가 대량 보급되면서 음악 수요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편 일부 문인들은 중산층과 교외 지역 생활의 획일적 사회를 거부하고 나섰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비트(beat)’ 시인들이었고, 그들은 마약을 복용하며 개방된 성생활을 과시했다. 비트 시인들은 미국의 청년들에게 부모들의 물질 만능주의와 당당한 자신감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영국의 경우도 미국보다는 덜 하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 보수당 정부 아래 복지 규정이 강화되었고 완전고용이 거국적 우선과제가 추진되고 있었다. 정치적 안정은 예술에서의 실험과 혁신에 큰 활동영역을 제공했다. 예술가들이 소설, 시, 음악 부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BBC]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의 문화적 선구자로 등장했다. 1946년 시작된 제3프로그램은 음악과 방송에 큰 자극이 되었다. 영화 또한 점차 예술적 실험의 수단이 되고 있었다. 영화는 싼 입장료와 격식 차리지 않는 분위기로 대중들을 이끌었다.

 

한편 인도, 파키스탄 등 대부분의 영국 식민지가 독립을 획득하면서 제국시대가 무너졌다. 그러던 중 수에즈 위기가 발생했고 영국은 세계여론의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대 후반 영국은 전후 가장 부유한 시기였다. 특이한 점은 미국과는 반대로 출생률이 저하되었으며, 이는 소규모의 보다 풍요로운 가족을 의미했다. 근로자들의 소득은 상승했고 노동일수는 감소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소유했고 싼 이자로 집을 살 수 있었다.

 

노동계급 또한 지중해 연안으로 단체여행을 갈 수 있었고 높은 임금과 단축된 작업시간이 가져다 준 자유를 만끽하며 술집, 클럽 등지에서 흥청거리며 놀았다. 이러한 생활방식과 확산되어 가는 대중문화와 더불어 노동계급 젊은이들은 예전과 매우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었다. 술과 마약이 자유롭게 사용되었고 스커트가 무척 짧아졌으며 성적인 규제가 훨씬 완화되었다. 사고는 더욱 자유분방해졌고, 군대 징집 폐지로 인해 젊은이들의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자료 출처 : 라디오 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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