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먼저, 영국의 월간 음악지 『MOJO』나 『Q』를 생각해보자. 다루는 내용도 다르고 포맷도 다른 두 잡지지만 음반 리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동일하다. 두 음악지는 잡지의 성격에 맞는 음반을 추려 리뷰를 싣는데, 각각 한 달 평균 200장 정도의 음반 리뷰가 들어간다. 한 잡지에서 1년 동안 다루는 리뷰의 양은 산술적으로 평균 1천 장 정도가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발매되는 모든 음반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목적인 『CD저널』의 경우 일본에서 발매되는 모든 앨범과 그 달의 수입앨범을 모두 다룬다. 한 달 동안 리스트로 만들어지는 음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대략 어림짐작으로 한 달에 1천 장 가량의 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반 1001장』에 실린 1001장은 프랭크 시내트라가 1964년에 발표한 'In The Wee Small Hours'부터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2005년 앨범 'Get Behind Me Satan'까지 다루고 있다. 50년의 시간을 다루는 셈이다. 영국 음악지를 이 숫자에 대입해보자. 한 달에 1천 장씩 50년이면 5만 장이다. 1001장이라고 했을 때는 꽤 많은 것 같은데, 이렇게 계산하고 보니 아주 적다. 단 하나의 음악지가 다루는 양으로만 환산했을 때도 이렇게 적은데, 리뷰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거나 미국 또는 영국에서만 발매되는 음반까지 포함한다면 1001장이라는 숫자는 생각한 것보다는 많은 분량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반 1001장』은 50년의 역사를 1001장의 음반으로 압축했기 때문에 수많은 음반 사이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더구나 ‘명반 500선’ 식의 리스트가 연도에 구애 받지 않다 보니 특정 아티스트의 거의 모든 음반이 선정되는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연도별로 적정한 배분을 병행하면서 균형을 잡는다. 예를 들어 비틀즈의 경우 60년대 중반부터 발표하는 모든 앨범이 명반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또다시 듣게 되는 지루한 반복이 이어질 가능성을 처음부터 줄였다. 게다가 주로 영미 대중음악이 중심이긴 하지만 제3세계에서 제작되었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음반까지 거론해줌으로써 1001장의 음반 리스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또한 90명이나 되는 세계 각국의 저널리스트의 예리하고 섬세한 리뷰는 딱딱하게 서술된 역사 중심의 대중음악사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저널리스트가 참여해 공동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해도 처음부터 1001장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 개개인이 생각하는 명반의 기준과 충돌하는 지점이 반드시 생긴다는 점은 인정한다. 지금까지 명반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음반이 누락되었다든지 한 아티스트의 대표작이라고 알고 있던 음반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음반을 1001장의 리스트에 포함시켰다든지 하는 불만은 이 책을 읽는 모두가 느끼는 부분이다. 특히 음악 좀 들었다고 자부하는 음악 팬의 경우라면 불만의 정도는 더 심할 것이다. 이 모든 불만을 해소하려면 1001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1964년부터 2005년 사이에 발표된 모든 음반의 리뷰를 담은 수백 권짜리 전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BBC 라디오의 전설적인 DJ 존 필이 짠 리스트라고 해도 100% 공감할 수 있는 리스트는 결코 만들 수 없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음반 리뷰가 연결되면서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종과 횡으로 분배해 재배치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다란 흐름을 표현해낸 셈이다. 아직 록음악이 대중음악의 전면에 나서기 전에 재즈와 블루스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듯 초반에는 재즈 음반이 자주 등장한다.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펑크 음반과 영국 인디 씬의 폭발,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음악 흐름까지 구석구석 훑어나가고 있다. 앨범 리뷰에서도 단순하게 음반의 소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앨범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만약 록을 중심으로 한 1001장의 음반을 모아놓았다면 빌 헤일리 앤 히즈 카미츠의 ‘Rock Around The Clock’에서 시작하는 것이 거의 정석이겠지만 이 책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반에서 시작한다. 리뷰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될 텐데,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반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찮게 LP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역사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이야기했지만, 같은 아티스트의 음반을 두고 필자마다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것도 이 책이 가진 작은 매력이다. 좋고 나쁨에 대한 견해가 모두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책의 집필자들이 직접 보여주고 있다. 누구의 의견을 따를 것인가는 읽는 독자가 결정할 일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수록된 1001장의 앨범을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대중음악은 개인의 취향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취향에 맞지 않는 음반까지 억지로 들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떠나간 애인 생각에 찔찔 짜는 궁상맞은 노래가 갑자기 내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것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것이 대중음악이다. 혐오했던 음악이 위로가 되는 경험, 이렇게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기준 때문에 명반 리스트와 꼭 들어야 할, 그것도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반의 리스트는 항상 변한다. 여기 소개된 1001장의 음반은 언제든지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1001장의 음반 리스트는 그렇게 멋진 순간이 좀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집필자의 소망을 담고 있다.
글 출처 : 출판사(마로니에북스)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