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ulos)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ulos)
그리스 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지휘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는 현대음악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1940년대에 이미 12음계 음악을 지휘한 몇 안되는 지휘자의 하나였다.
그는 원래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베를린에서 부조니와 함께 공부를 하였으며,그 이후에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와 함께 지휘를 공부하였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는 1896년 3월 1일,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나 1960년 11월 2일,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연습하던 도중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서(急逝)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검소하게 살았고, 사람 사귀기를 싫어하여 오직 음악에로의 외길로만 살았던 인물이었다.
미트로풀로스는 대대로 그리스 정교회의 사제를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도 역시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어려서부터 남달리 음악을 좋아해서 결국은 그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1910년 아테네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화성학을 배우고, 1918년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음악원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즉시 벨기에로 유학가서 작곡을 폴 길손(Paul Gilson)에게 사사하였다.
이어 1920년에는 베를린으로 가서 작곡과 피아노를 페루치오 부조니(Ferruccio Busoni)에게서 배웠다.
1922년부터 3년간 베를린 국립가극장 부지휘자와, 1924년부터 아테네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아테네 음악원 교수로 있었다.
1930년 베를린에서 협연 예정이던 피아니스트 에곤 페트리(Egon Petri)가 병이 나서 출연하지 못하게 되자, 그는 지휘와 독주를 겸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것이 난곡(難曲)으로 알려졌던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었으므로 그 반향은 더욱 거셌고 뜨거웠다.
그뒤 유럽 각지에서 객원지휘를 하여 명성을 떨쳤다.
1936년에는 보스톤 교향악단을 객원지휘하기 위해 도미했다.
1937 - 1949년 까지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의 후임으로서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서 SP시대에 많은 명반을 녹음하였고, NBC 교향악단과 뉴욕 필하모니를 객원지휘하였다.
1949년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와 더불어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1954년 이후에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지휘도 맡았다.
1951년 뉴욕 필하모니를 이끌고 영국을 방문하였고, 1958년 그 자리를 사임할 때까지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주었다.
미트로풀로스는 현대음악 소개에 아주 열성이었고, 때때로 새로운 작품들을 과감하게 연주했다.
그와 같은 활동은 그의 예술적 자질과 음악에 대한 자세를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그의 청교도적인 생활과 음악에 대한 헌신을 생각할 때 그의 지휘에서 생겨나는 음악의 성질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가 남긴 레코드로는 뉴욕 필하모니를 지휘한 베르크(Alban Berg)의 <보체크, Wozzeck>, 역시 뉴욕 필하모니를 지휘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정화(淨化)된 밤, Verklärte Nacht> 등이 아주 정평이 높았고, 프로코피에프의 연주도 좋았으나 지금은 모두 폐반되었다.
현재 현역반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지노 프란체스카티와 협연하고, 뉴욕 필하모니의 지휘에 의한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결합반이 녹음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명연반으로써 클래식애호가들에게 많은 아낌을 받고 있다.
그리고 같은 콤비에 의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이 아주 사랑을 받는 충실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Dimitri Mitropolous (1896 – 1960)|작성자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