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곡(幻想曲, Fantasia)

환상이란 문자 그대로 종잡을 수 없는 상상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는 소나타와 같이 엄격한 형식이 없다. 소나타나 푸가(Fuga)와 같은 악곡에는 하나의 엄격한 규칙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이 환상곡은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악상으로 전개되는 환상풍의 곡이다. 옛날 이탈리아에서 판타지아라 불리어지던 것이 비올 족(Viol Family)이라 해서 바이올린보다 먼저 생긴 현악기 혹은 실내악곡 등을 위해 작곡되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어떤 악기를 우해서도 작곡할 수 있다.

환상곡에는 어떤 내용을 포함시키는 예가 많다. 우선 즉흥적인 곡이 있다.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1702년 그가 괴텐 시절에 쓴 작품인데, 풍부한 환상을 거장적인 즉흥성으로 전개시킨 것이다. 거기에는 서정미와 극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데, 다양한 색채를 하나의 악기에 의해 충당시킴으로써 환상곡의 한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시 바흐의 음악이 어디까지나 이지적이고 문법적이며 기계적인 객관성을 띤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서정성은 환상곡이 지닌 특성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작곡의 피아노 환상곡 d단조에 있어서나 베토벤의 판타지아 b단조 Op. 77에서도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809년에 작곡하여 프란츠 브른스빅 백작에게 바친 이 작품은 극히 자유로운 형식으로, 계속적으로 전개되는 악상을 즉흥적으로 전개시켜 나간다. 물론 시대에 따라 그 차이는 있겠지만 즉흥적인 환상의 세계는 그들의 작품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꿈을 보는 양 몽상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환상곡으로는 예컨대 브람스의 환상곡집 Op.116을 들 수 있다. 4개의 곡집으로 된 이 피아노곡집은 그가 본래 고전 형식을 숭상하는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일체 복잡한 것을 피하여 간소하고 이해하기 수운 것으로 자유분방하게 다루었다. 그것은 그의 영감이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그의 황혼기에 느끼는 일종의 고독의 표현의 일단일는지도 모른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환상곡 f단조 Op. 49는 그의 유일한 이 부류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것은 1841년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같이 노안에서 지낼 무렵의 명작이다. 쇼팽의 천품이 최고도로 발휘되었을 무렵인 만큼 그가 지닌 마력으로써 충분히 빛낼 시기의 명작이다. 그의 가장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인 이 환상곡은 그의 상념을 자유롭게 전개시켜 정열의 힘과 기괴함을 첨가하여 공상적인 설계로 전개시켰다.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는 애정과 동정으로 폐부를 찌르는 음악이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환상곡의 한 종류는 자유로운 형식에 의한 특수한 소나타 등을 들 수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서 베토벤의 소나타 Op. 27의 2곡을 들 수 있다. 1800년경에 쓴 그의 피아노 소나타 No.13번 Eb 장조 op.27-1은 환상곡풍의 소나타로서 내면적으로 고양된 자유스런 표현 등 즉흥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다음 제14번 c#단조 op.27-2(월광곡)은 1801년에 쓴 작품으로서 문학적인 공상을 담은 요소가 강한 것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저명한 평론가 렌시타프가 이 작품의 제1악장을 가리켜 「스위스의 루체른 호반의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다」라고 비유해 말한 데서 Moon Light란 말이 생겼다. 소나타 형식이지만 자유로운 환상곡풍으로 작곡되어 있다.

한편 슈만의 환상곡 C장조 op.17은 장대한 구성과 악상에 정열이 넘쳐흐르는 환상곡이다. 1836년 경 슈만이 그의 아내가 될 클라라와의 사랑과 그녀의 아버지 비크의 몰이해 등등 고민에 사로 잡혔을 때의 작품으로써 슈만은 클라라에게 전한 글 속에 「이 환상곡은 내가 당신을 단념한 1836년의 불행한 여름을 생각하기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 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머릿속에 뒤섞였던 사랑과 번뇌와 정열과 감정 등을 이 같은 환상의 세계를 통해 작품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다음은 오페라의 포 푸리(Pot-Pourri), 다시 말해서 잘 알려진 멜로디를 몇 개 연결시켜 만든 접속곡이 있다. 이것이 오페라의 주요한 선율들을 접속시켜 작품을 만들었으며, 그 접속부에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처리를 하는 예가 많다. 19세기 낭만파 음악의 거장 리스트의 《돈환 환상곡》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16-17세기의 악곡의 한 형식으로서의 환상곡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다소 대위법적인 양식으로 썼는데, 그 대조적인 의미에서는 별반 환상적인 기분이 내표되어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당시의 환상곡이란 엄격한 대위법과 푸가의 전 단계를 이루는 모방적인 기악 형식의 이른바 리체르카레(Ricercare)의 자유로운 변형으로 생각하여 이 같은 환상곡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널리 애용하던 현악기의 일종인 류트(Lute) 연주자들에 의해 환상곡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이르러 영국에서의 환상곡적 기악곡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점차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17세기경에는 무곡풍의 소품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아무튼 환상곡이란 자유로운 형식으로 된 기악곡으로 풍부한 환상을 가진 곡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