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CF에서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와 낸시 시내트라(Nancy Sinatra) 부녀가 함께 부른 노래 “Something Stupid”를 들으며 ‘그래,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었지!’ 혼자 탄식하며 옛날 생각에 잠시 젖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금년 68세(글을 쓸 당시 2003년 기준)의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년~2007년)가 3월 14일에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또 한 사람이 떠나가는 아쉬움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3월 14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두고 봐라.”라고 했다지요.
오래전부터 이번 메트로폴리탄 공연이 고별무대가 될 것이라고 밝혀온 파바로티는 드디어 3월 14일 공연을 끝으로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원래는 70세가 되는 2005년의 생일에 맞추어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이번 공연을 하면서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더는 곤란하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는 무대에서의 동작이 둔한 것도 문제였지만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비판을 계속해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파바로티의 미련입니다.
“1년 뒤에 내가 무대를 뛰어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은퇴를 번복할 수도 있다.”
“누가 아는가,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미련이라기보다는 무대에 대한 애착이겠지요.
1971년 프랭크 시내트라(1915년 12월 12일 ~ 1998년 5월 14일)는 갑자기 은퇴를 선언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쉰다섯.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그러나 시내트라 본인은 40년을 노래했는데 이제 더 이상 화장하고 무대에 서는 일은 싫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1971년 6월, 드디어 로스앤젤레스의 뮤직센터에서 고별 공연이 있었습니다.
샹송이 원곡인 “My Way”는 이때 폴 앵카(Paul Anka)의 개사로 그의 고별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프랭크 시내트라를 잘 아는 사람들은 “두고봐라, 또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2년 후 1973년 11월 NBC 텔레비전을 통해서 프랭크 시내트라는 다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컴백 프로그램의 타이틀은 “Ole Blue Eyes is Back”. “Ole Blue Eyes”는 그의 애칭이었습니다.
프랭크 시내트라는 거물이었습니다.
영화계나 음악계에서 전무후무한 그의 명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직 폭력배들과의 관계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그를 괴롭혔지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레이건 그리고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프랭크 시내트라는 미국 대통령의 농담 친구였으며 골프 친구였습니다.
◀ 1957년의 시내트라특히 레이건 대통령과의 친분이 돈독해서 레이건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는 그야말로 발 벗고 나서서 모금 운동에 앞장섰고,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그는 가장 중요한 출연자였습니다. 특히 영부인 낸시 레이건과의 관계는 기자들의 입방아에 끈질기게 오르내릴 만큼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언젠가 레이건 대통령이 권총 피습을 당한 적이 있지요. 그때에도 서둘러 워싱턴을 방문한 그는 병원에 있는 레이건보다는 백악관에 있는 낸시 레이건을 먼저 찾아 위로한 것이 기자들의 입방아에 올랐었습니다.
아무튼 미국 CIA나 마피아와의 연루설을 비롯해서 연예계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로서 많은 사람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노래와 영화로서 비난을 비켜 가고, 사람들의 사랑을 끌어내는 묘한 카리스마의 존재였습니다. 1950~60년대 최고 인기 여배우로 군림했던 요염의 대명사 에바 가드너, 미아 페로 같은 여배우들과의 결혼도 화제였지요.
1973년 컴백하고 나서도 젊은이 못지않은 정열로 음악 활동에 전념해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컴백 이후 출반된 음반 기록을 보면 정말 놀랐습니다. 물론 이 중에는 옛날에 나왔던 것을 재편집한 것도 있습니다만.
누가 뭐래도 가장 미국적이었던, 또한 한 시대의 영웅이었던 프랭크 시내트라는 1955년부터 1980년까지 모두 68곡의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지만 1위까지 올랐던 노래는 3곡뿐입니다. 1위까지 올랐던 노래 중에 “Something Stupid”는 1967년 첫째 딸 낸시와 듀엣으로 불렀던 명곡이지요.
1955년 이전의 노래들은 빌보드가 집계하지 않았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글 출처 : 팝송은 죽었다(이종환, 리즈앤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