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our, C'est Pour Rien  /  Enrico Macias

Comme une salamandre l'amour est merveilleux Et renait de ses cendres comme l'oiseau de feu nul ne peut le contraindre Pour lui donner la vie Et rien ne peut l'eteindre Sinon l'eau de l'oubli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pas le vendre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l'acheter Quand ton corps se reveille Tu te mets a trembler Mais si ton coeur s'eveille Tu te mets a rever Tu reves d'un echange avec un autre aveu Car ces frissons etranges Ne vivent que par deux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pas le vendre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l'acheter L'amour, c'est l'esperance Sans raison et sans loi L'amour comme la chance Ne se merite pas Il y a sur terre un etre Qui t'aime a la folie Sans meme te reconnaitre Pret a donner sa vie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pas le prendre L'amour, c'est pour rien Mais tu peux le donner L'amour, c'est pour rien L'amour, c'est pour rien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 미국에 다녀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누군가 주변에서 일본이나 미국에 다녀온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야말로 입을 헤 벌리고 부러워하던 시절이었지요.

보도국 기자들은 가끔 외국행 기회를 잡지만 그 또한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몇몇이 외국에 특파원으로 나가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전화 상태도 좋지 않아서 뉴스 소스 이외에는 전화사용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종로 인사동에서 발송하던 시절에 누군가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일본 도쿄에 가 있는 특파원을 시켜서 이번 주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팝송 세 곡을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큐 시트가 당장 만들어졌습니다. 첫 곡은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파 송 3위곡을 먼저 소개하고 두 번째 곡은 일본을 연결해서 일본의 3위 곡을 듣는 형식이었습니다. 세 번째 곡은 다시 서울의 2위 곡, 네 번째 곡은 일본의 2위 곡, 다섯 번째 곡은 다시 서울의 1위 곡이고 여섯 번째로 일본의 1위 곡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물론 녹음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일본과의 전화 연결 때 국제 전화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첫 곡부터 여섯 번째 곡까지 계속해서 전화를 연결해 특파원을 대기시키는 게 아니라 일본 특파원의 멘트만 전부 정화르 미리 녹음해서 세 컷으로 편집해서 그 프로그램을 짜깁기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한꺼번에 모두 다 녹음해 놓고는 특파원과 계속 전화통화를 하는 것처럼 청취자를 상대로 웃기는 사기를 쳤던 것이지요. “서규석 특파원, 지금 서울에서 인기 있는 3위 곡을 들으셨지요?”하고 물으면, 특파원은 천연덕스럽게 “네 노래 참 좋은데요. 그러면 이번에는 제가 도쿄의 3위 곡을 소개할까요?”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물론 음악을 전화로 들려줄 수 없으니까 일주일 전에 일본 특파원 석 장의 도넛판을 미리 보내줍니다. 일본에서 매주 보내주는 싱글 디스크인 도넛판은 앞뒤로 노래가 두 곡이 실리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본을 통하여 입수하는 최신 팝송이어서 우리로서는 감지덕지의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서규석 특파원 정순일 특파원, 두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만 해도 그 무렵 팝송은 그런대로 보급되었지만 우리나라는 팝송의 공급 루트가 공식적으로는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미군부대 PX에 출입하는 상인들을 통해서 LP를 몇 장씩 사들이곤 했는데 문제는 그 상인들의 LP는 방송국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사는 게 아니고 상인이 들고 온 것은 무조건 모두 사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울며 겨자 먹기라고 필요 없는 LP도 살 수밖에 없었지요.

더더욱 가관인 것은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의 최신 곡을 방송하려는 경쟁체제여서 PX 상인을 홀대했다가는 그나마도 구경을 못 하게 되니까 그 사람들이 들고 오면 무조건 굽실대면서 사야 하는 딱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미8군 무대에 출연하던 신중현 씨 정도가 가끔 최신곡 도넛판을 구해다 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때는 다른 방송보다 앞서 최신곡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인사동 MBC에 입사한 것이 1965년 2월이었습니다. 그 당시 시중에 인기 있던 팝송은 수 톰슨(Sue Thompson)의 “Sad Movies”, Los Tres Diamantes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조앤 바에즈의 “Donna Donna” 등등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문제는 이런 음악들조차 MBC 라이브러리에는 한 곡도 없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시중의 음악 감상실에서 LP를 빌려다가 녹음해서 보관하는 작업을 하느라 한달에 20일 이상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특파원이 보내준 도넛판 중에 귀가 번쩍하는 기가 막히게 좋은 샹송이 한 곡 있었습니다.

그 샹송을 소개할 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닭살 돋는 다음과 같은 방송 멘트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MBC가 일본에서 가장 최근에 단독 입수한 달콤한 샹송을 들어보십시오.”

당시의 그 샹송은 앙리코 마시아스가 불렀던 “L’Amour C’est Pour Rien”이었습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은 이 노래의 제목을 “연심(戀心)”이라고 붙였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우리댈 제목을 정하고 거의 매일 방송하다시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곡만은 TBC에도 DBS에도 없을 때니까.

그런데 이 샹송이 일이 년 뒤에 큰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 귀국한 길옥윤 선생이 작곡하고 패티 김이 노래한 “사월이 가면”이 발표되고 그 인기가 충천할 무렵 누군가가 입을 놀렸습니다. “길옥윤의 ‘사월이 가면’은 표절이다.”

그 곡은 앙리코 마시아스의 “L’Amour C’est Pour Rien”“이 완전한 복사판이었습니다. 불행히 방송금지곡이 되었구요.


L'amour, C'est Pour Rien

사랑이란 전설속의 불도마뱀처럼
경이롭고, 불새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요.
어떠한 것도 사랑의 생명을
끌 수는 없답니다.
다만 망각의 바다만이
사랑의 불을 끌 수 있지요.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팔 수 없지요.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을 살 수 없지요.
당신이 사랑에 눈뜰 때면
근심이 시작된답니다.
당신이 사랑에 빠질 때면
꿈을 꾸기 시작하지요.
알 수 없는 이 사랑의 전율은
둘만이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의 고백을
서로 꿈꾸게 된답니다.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팔 수 없지요.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을 살 수 없지요.
사랑, 그것은 이유도 없고,
법칙도 없는 희망이랍니다.

사랑과 행운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요.
당신을 알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답니다.
저의 모든 인생을 맡길 것입니다.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뺏을 수 없지요.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지요.

그러나 당신은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글 출처 : 팝송은 죽었다(이종환, 리즈앤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