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하지 않아요)
            / Edith Piaf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Avec mes souvenirs 
J'ai allume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Balayes les amours 
Et tous leurs tremolos 
Balayes pour toujours 
Je repars a zero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


  최희준 씨가 작곡가 김호길 선생의 하숙생을 노래한 것은 1966년입니다. 당시 최희준 씨가 무대에 나설 때는 반드시 ‘학사가수 최희준’이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가수가 거의 없던 시절에 최희준 씨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으니까 그럴 만도 했지요.

   단 한 번도 크게 화내는 것을 본 사람이 없을 만큼 최희준 씨는 신사입니다. 그러나 최희준 씨에게 뺨을 맞은 단 한사람이 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공연이라도 있으면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조용히 기사에게 말합니다.

   “이봐요. 차 좀 세워요.”

   차에서 내린 최희준 씨는 기사를 불러 세웁니다.

   “이봐요. 나만 죽으면 괜찮아요. 잘못되면 당신도 죽어요. 80Km 이상 달리지 마세요!”

   철썩!

   그 기사 양반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최희준 씨한테 뺨 맞은 사람일 겁니다.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겸손한 사람 최희준. 그가 가장 난감했던 것은 한창 인기 있을 때였습니다. 나름대로 관록이 있다는 작곡가들이 너도나도 자기 작품도 노래해 달라고 들고 오는 경우입니다.

   작품을 들고 온 작곡가는 최희준 씨가 일단 불러만 준다면 받은 성공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작곡가들이 부탁을 하고 더러는 수준미달의 작품도 있지만 그는 절대로 그 자리에서 거절하거나 그 자리에서 박절하게 돌려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 사정을 말하고 작품을 되돌려 줍니다. 다른 작곡가의 자존심을 존중하는 마음 씀씀이지요.

   히트 곡 작곡가에게는 가수들이 매달리지만 작곡가가 무명일 때는 인기가수가 자신의 작품을 선택해주길 고대합니다. 이문세 씨가 송창식 씨의 작품을 받기 위해 경기도 퇴계원 집으로 찾아갔다가 작품은커녕 송창식 씨 집 마루에서 혼자 밤만 세우고 와서 어처구니 없어한 적도 있습니다.

   

   샤를르 뒤몽(Charles Dumont)이 무명의 작곡가 시절에 대스타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드디어 기회를 잡습니다. 카리스마가 남다른 피아프가 집으로 찾아와도 좋다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피아프가 있는 거실에 들어갔을 때 피아프의 첫마디는 “날 왜 찾는가?” 였습니다. 뒤몽은 그녀의 카리스마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뒤몽은 대 가수 피아프에게 헌정할 작품을 가지고 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뒤몽이 만난 대스타 피아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고 지쳐서 마치 유령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흠모했던 피아프를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 뒤몽의 가슴은 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쓴 곡이라면 당신이 한 번 불러 봐요.”

   뒤몽은 식은 땀을 흘리면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Non! Rien De Eien....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닙니다!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난 후회하지 않습니다.”
“Ni Le Bien Qu’on M’ 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쯤 노래했을 때 피아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멋있어요! 당신은 정말 멋있는 곡을 썼어요. 내게 딱 어울리는 가사에요. 어쩌면 나의 유언장이 될 수도 있는 노래에요. 당신은 요술쟁이군요.”

   1960년 12월 그렇게 “Non! Je Ne Regrette Rien(후회하지 않아요)”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제2의 ‘사랑의 찬가’로 평가받으며 이 노래는 샹송 팬, 그리고 피아프의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물론 뒤몽은 자신이 몇 번째인지도 모른 채 피아프의 침실로 부름을 받습니다.

   “사랑의 찬가”만큼이나 높이 평가되는 이 노래를 부르고 3년 뒤, 피아프는 세상을 떠납니다.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나하고는 아무 상돤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미 대가를 치렀고 잊은 일입니다.
난 과거에 관해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불 밝던 나의 모든 추억 슬픔 기쁨들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당신과 함게 시작되니까요.

글 출처 : 팝송은 죽었다(이종환, 리즈앤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