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ding Cake / Connie Francis 

Don't be troubled 'bout me 'cause I'm tired
From workin' 'round the house when day is done

Don't think you failed me 'cause you can't afford
That dishwasher to make my life more fun
You know, the measure of a man is
Much more than just the money he can make
And every woman knows a lot of joy and tears
Come with the wedding cake 

The wedding cake is not all icing
And love and tender whispers in the dark
One slice is concern for all your dreams prayed
They won't come true and break your heart
Another slice is feedin' kids and wipin' noses
Cryin' when the doorbell rings and there are roses
Every woman knows a lot of give and take
Comes with the wedding cake

It's facin' shadows of the future
Prayin' they will fall away 
As we walk toward them searchin' for the sun
And it's long and anxious hours with the wolf at the door
Hugs and kisses when, at last, we see the dawn
So when the hands of time trace tellin' lines upon our face
And lace our hair with strands of gray
We laugh and say for all who will partake
It all comes with the wedding cake

Yes, for all who will partake
It all comes with the wedding cake
Yes, for all who will partake
It all comes with the wedding cake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말 중에서 ‘입방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번 총선 때 일본의 모리 총리가 투표참가에 열의가 없는 젊은 부동층을 향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에이고, 그냥 잠이나 푸 자 버려라.”

   이 한마디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모리는 엄청난 표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표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의 입방정은 심각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대만의 첩보망을 노출시키는 바람에 중국에 들어가 있던 대만 첩보원들이 일망타진 되었습니다.

   그는 총통 선거유세에서 대만인들로 하여금 중국이 무서운 적국임을 인식시키기 우해서 중국이 우리를 수많은 미사일로 겨냥하고 있다면서 미사일의 숫자와 미사일 기지가 있는 지역 이름까지 낱낱이 밝혔습니다. 중국의 장관급 고위인사들도 모르는 군사정보를 까발렸으니 중국이 간첩색출에 나설 수밖에요. 대만에서 건너간 첩보원이나 고정 간첩은 거의 전원 체포되었고요.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던 사람이 두부를 사들고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방정은 저주에 가깝습니다. 내가 LA에서 KCB라는 교포를 위한 방송국을 개국했을 때 첫 달부터 흑자가 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흑자가 나면 최신형 캐딜락을 타야겠다고 입방정을 떨었더니 개국 4개월 만에 흑인폭동이 일어나면서 수금도 못하고 광고도 다 떨어졌습니다. 망했지요.

   

   1957년부터 1969년까지 빌보드 차트를 누빈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는 말하자면 여자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코니 프랜시스의 인기는 한때 필설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알려진 그녀의 노래는 트윈 폴리오가 번안가요로 불렀던 “Wedding Cake”, 그리고 요즘 TV에서 광고 음악으로 들리는 “Stupid Cupid”, “Exodus(Havah Negilah)”, “Never On Sunday” 정도랄까요.

   1974년은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었지만 그녀의 전국적인 인기는 대단해서 자선공연을 우해 11월 8일 뉴욕에 와 있었습니다. 총 연습이 끝나고 호텔에 돌아와서 스태프들과 간단한 회의를 끝내고 2층으로 돌아가면서 예의 입방정이 나왔습니다.

   “내 방에 강도라도 들면 어쩌지?”

   본인이야 별 뜻 없이 한 말이지만 그 말 한마디가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침대에서 잠을 청할 무렵 눈 깜짝할 사이에 창문이 열리더니 방안으로 괴한이 쳐들어 왔습니다. 소리 지를 틈도 없이 괴한은 그녀를 덮쳤습니다. 의식을 잃은 그녀는 폭행당했고 사람들이 달려 왔을 때는 이미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톱스타에게 일어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톱뉴스로 보도되었고 코니 프랜시스는 1960년대 미국 최고의 여가수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망가졌습니다.

   “재앙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코니 프랜시스의 인생은 이때부터 송두리째 파괴됩니다. 그녀의 폭행사건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달려가던 남동생이 깡패들의 총질에 희생되고 이어서 날아온 소식은 남편의 이혼 요구였습니다.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에 받은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생명과도 같은 그녀의 음성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불행의 극한을 경험 한 것이지요. 사건으로 유산을 하면서 그녀는 더욱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이 모든 고통도 삶의 일부려니 하고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코니 프랜시스의 재기공연은 1981년 문제의 그 사고 호텔에서 있었습니다. 악몽과도 같은 그 호텔의 무대에 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른 무대에 설 용기가 생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3천 명의 청중들은 “I Love Connie!”를 외쳤고 꽃다발은 발밑에 쌓였습니다. 무려 일곱 번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재기 공연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옛날의 인기가 되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글 출처 : 팝송은 죽었다(이종환, 리즈앤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