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ll / Beatles

Michelle, ma belle
These are words that go together well, my Michelle
Michelle, ma belle
Sont l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That's all I want to say
Until I find a way
I will say the only words I know that you'll understand

Michelle, ma belle
Sont l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I need you, I need you, I need you
I need to make you see
Oh, what you mean to me
Until I do I'm hoping you will know what I mean
I love you

I want you, I want you, I want you
I think you know by now
I'll get to you somehow
Until I do I'm telling you so you'll understand

Michelle, ma belle
Sont l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I will say the only words I know that, you'll understand, my Michelle


영국의 팝음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성공한 것은 사실상 비틀스가 선두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비틀스 이전에도 몇몇의 영국 아티스트나 그룹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었지만 거의 참패였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팝 시장은 완고했습니다.

예를 들면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가 대표적인 영국출신으로 영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의 여세를 몰로 미국시장에 진출했지만, 1963년에 "Living Doll"이 30위에 올랐을 뿐 후속곡들은 90위권에 턱걸이하는 정도였습니다. 소위 영국의 국가대표로서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클라리넷 연주자 Acker Bilk가 "Stranger On The Shore"로, 그리고 Tornadoes가 "Telstar"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단발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비틀스가 단판에 미국 시장을 석권한 것처럼 얘기를 듣고 있지만 알고 보면 비틀스도 처음 탄생 했을 때부터 집요하게 미국 시장을 두드렸지만 미국이 팝 씬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비틀스의 음악은 거의 Capitol 레코드를 통해서 발표되었지만 그것은 미국에서 성공하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미국 진출을 염원하던 비틀스는 Capitol을 만나기 전에 네 군데의 레코드회사와 계약을 하고 출반했지만 번번이 실패였습니다. 영국에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지만 그 인기가 미국으로 옮겨지는 행운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행운은 엉뚱한 곳으로부터 왔습니다.

당시 미국 최고의 텔레비전 음악프로그램으로 "에드 설리번 쇼"가 있었는데 진행자 에드 설리번이 영국에서 볼일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히드로 공항에 나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공항은 온통 10대 청소년들의 함성으로 마비 직전이었습니다. 비틀스가 스웨덴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몇 차례 비틀스의 출연 교섭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또 Capitol 레코드가 그들과의 음반계약에서 멈칫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던 에드 설리번은 너무나 놀라서 예약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에드 설리번은 당장 비틀스를 관리하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1964년 2월 두 차례 아니면 세 차례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기로 전격적으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에드 설리번은 Capitol 레코드에 연락을 했습니다. "뭐하고 있는가? 비틀스는 대박이다."

Capitol은 부랴부랴 "I Want To Hold Your Hand"의 싱글 레코드를 1963년 12월에 발매했습니다. 이 노래를 가히 핵폭탄에 비유되었습니다.

비틀스는 1964년 2월 7일 케네디 공항으로 입국하게 되어 있었는데 2월 1일자 빌보드 차트는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순식간에 1위에 올렸습니다.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은 하늘의 계시였습니다.

2월 7일, 뉴욕 케네디 공항은 10대 청소년들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신문들은 너도 나도 한마디씩이었습니다.

"언제 이발했는지 모를 긴 머리의 영국청년들 뉴욕에 오다"
"열광적인 팬들을 앞세우고 케네디 공항에 내린 비틀스"
"비틀스의 미국 침공"

재미있는 것은 이미 네 군데의 레코드 회사가 발매했다가 실패한 노래까지 덩달아 뒤늦게 뜨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Swan 레코드의 "She Loves You", Vee-Jay 레코드의 "Please Please Me", MGM의 "My Bonnie", Tollie 레코드의 "Love Me Do"까지 덩달아 차트의 상위권을 공략했습니다.

"I Want To Hold Your Hand"는 그토록 콧대를 세우며 완강하게 버티던 미국 시장을 한 순간에 초토화 시키면서 연속 7주일 동안 차트 정상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에드 설리번 쇼"에 미국의 인기가수 1회 출연료가 7천 달러였지만 비틀스 네 사람에게 준 출연료는 불과 1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나라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마주 바라보는 국민감정은 경멸고 부러움으로 갈립니다. 피차 상대방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호감을 가지는 시선인데 폴 매카트니는 프랑스를 문화적으로 흠모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프랑스어가 들어가는 이국적인 노래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프랑스어 교사였던 친구를 찾아가 한곡의 노래를 들려주면서 두 음절에 들어갈 괜찮은 프랑스어를 부탁했습니다. 노래를 듣던 친구는 지체 없이 "Michelle, Ma Belle"을 외쳤습니다.

1965년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에서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최우수 가곡상은 비틀스의 "Michelle"에게 돌아갔습니다.

Michelle

"미셀, 사랑하는 사람이여.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나의 미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알기 전까지는
이 한마디가 내가 하고픈 말의 전부였습니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말이구요.
알려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의 전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글 출처 : 팝송은 죽었다(이종환, 리즈앤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