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annah Woman / Tommy Bolin

Savannah Woman dressed in white 
Stands out of tropical rains 
She pulls her gin and tonics tight 
And curses her lonely domain
흰옷을 입은 사바나 여인
열대 소나기 속에 서 있네
진과 토닉을 잔뜩 들이켜
그녀의 외로운 영토를 저주해

Brazilian winds blow warm in Rio 
A white estate they call "La Nada" 
Meant for her soul or so she says 
Hides her sadist gin made eyes
브라질의 바람은 리오에서 따뜻하게 불어
흰색 땅을 그들은 "라 나다"라고 불러
그녀의 영혼에 중요했어 그래서 그녀는 말해
눈빛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깨진 진을 숨겨

No nulle knows but me 
How she left me so behind 
Savannah Woman 
I could never leave you so unkind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아
그녀가 어떻게 나늘 떠나 숨었는지
사바나 여인
당신을 떠날 수 없었어 너무 무정해

Snow white and with desire 
That vamp from the magazine 
Cold and Distant as the moon 
why can't she burn like fire?
하얀 눈이 내려 소망을 안고 
잡지의 섹시한 계집은 
춥고 멀어 달 처럼
왜 그녀는 불 처럼 태워질 수 없는가

No one knows but me 
How she left me so behind 
Savannah Woman 
I could never leave you so unkind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아
그녀가 어떻게 나를 떠나 숨었는지
사바나 여인
당신을 떠날 수 없었어 너무 무정해

Tommy Bolin

"한 그룹에 오래 있지 못하는 나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음악적인 열정이 강하다보면 한 밴드의 색채 속에서 때론 답답함이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1951년 8월1일 미국 오하이오 주 Sioux City에서 태어난 토미 볼린은 12세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여 드럼을 배우기 시작하고, 기타와 오르간 등에도 손을 대지만 끝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기타였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그는 스쿨 밴드를 조직해 음반을 통해 고독을 풀곤 했다. 긴 머리 자르기를 거부하는 등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Tommy는 결국 1968년 학교를 자퇴하고 덴버로 간다.

Django Reinhardt, Carl Perkins, Jimi Hendrix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는 1968년 콜로라도의 로컬 그룹 'Zephyr'를 결성하면서 프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틸, 어쿠스틱, 일렉트릭, 12현 기타, 보컬을 맡은 그는 Janis Joplin 같은 음색을 지닌 여성 보컬 Candy Givens(P/H), David Givens(B), Robbie Chamberlin(D), John Faris(O/F/SS)등과 함께 라인업을 갖추고 활동에 들어섰다.

이듬해 Grand Award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레코딩에 들어가 1970년에 데뷔 앨범 [Zephy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블루스, 재즈, 락의 요소를 혼합시킨 사운드로 당시로서는 시도하기 힘들었던 음악세계를 선보여 평론가들의 탄성을자아내게 했다.

수록곡 중 Janis Joplin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는 'Somebody Listen, 'Sun's A-Rising'을 히트시켰으며, 훗날 블루스 락 그룹 'Ultimate Spinach'를 탄생시킨 John Faris의 역량이 탁월하게 전개된 대곡 'Sail on', 'Hard Charging Woman'도 호평을 받았다.

1971년 드러머가 Bobby Berge로 교체되어 두 번째 앨범 [Going Back To Colorado]를 발표했는데, 전작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Tommy의 매끈하면서도 블루스에 바탕을 둔 연주력은 'Night Fades Softly'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외 빠른 스피드의 'Showbizzy'와 다양한 변화가 담긴 'At This Very Moment'가 호평을 받았다. 이어 1972년에 세번째 앨범 [Sunset Ride]를 레코딩하였으나 공개되지 못했고, 실력에 비해 판매가 저조했던 이유로 그룹은 그 해 말 해산되었다.

이어서 재즈 락 그룹 'Energy'에 참가하지만 이 팀 역시 곧 해체되고 마는데, Tommy Bolind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James Gang'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전임자인 Dominic Troiano가 그룹 'The Guess Who'로 가버리는 바람에 Joe Walsh의 추천을 받아 James Gang에 가입한다. 이 그룹에서 Tommy는 1973년 앨범 [Bang]과 1974년 [Miami]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Bang]에서 'Alexis', 'Mystery' 같은 작품에서 특유의 블루스 필의 기타 워크를 선보여 호평을 받고,[Miami] 역시 Tommy의 영향력이 컸던 음반이기도 하다.


2장의 앨범에 참여한 Tommy는 James Gang을 탈퇴하고, 플루트 연주자 제레미의 소개로 'Mahavishnu Orchestra'의 드러머 Billy Cobham의 앨범 [Spectrum]에 세션을 맡아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낸다.

이후 Tommy는 Abert King과 순회공연을 갖기도 하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정리하는 솔로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LA, 뉴욕, 런던 등을 오가며 평소 함께 연주해보고 싶었던 뮤지션들을 만나 앨범 제작을 함께 할 것을 제의한다.

이즈음 Ritchie Blackmore가 'Rainbow' 결성을 위해 'Deep Purple'을 떠나자 Jon Lord는 Tommy에게 Deep Purple과의 세션을 권유한다. 약 20분에 걸친 세션이 끝나자 Deep Purple은 Jeff Beck, Dave "Clem" Clempson을 뒤로 하고 Tommy를 Ritchie Blackmore의 후임 기타리스트로 맞이한다. 이렇게 해서 Tommy는 1975년 거의 전 곡을 작곡하고 연주하여 Deep Purple의 앨범 [Come Taste The Band]의 완성을 맞는다.

수록곡 중 2부작 'This Time Around'와 'Owed To 'G''에서 표출된 Tommy의 열정적인 기타 연주를 Ritchie Blackmore 못지 않은 힘과 테크닉을 선보인다. 같은 해에 Tommy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 [Teaser]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팝, 락, 재즈, 블루스가 혼합된 이른 바 퓨전 락의 총아가 집결된 앨범으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음악적 방향을 가늠케 해 주고 있으며,그의 理想은 Jan Hammer, David Sanborn, Phil Collins, David Poster, Michael Walden,Jeff Porcaro 등 당대의 내노라 거물 뮤지션들을 게스트로 초청하여 전폭적인 서포트로 그 결실을 맺는다.

이국적인 향취와 넘실대는 기타 애드립,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인상적인 솔로가 일품인 명곡 'Savannah Woman'은 국내 모 CF에 삽입되면서 많은 수의 팬들을 양산하게 된다. 명곡 'Hello Again'에 필적하는 아름다운 발라드 'Dreamer', 가공할 기타 솔로와 Jeff Porcaro, David Sanborn을 포함한 걸출한 사이드 맨들의 개인기량이 유감없이 표출된 퓨전 재즈 락의 모범답안 'Marching Powder' 등의 필청 트랙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보석과 같은 곡들이다.


한편, 음악적인 면에서나 멤버 간의 유대에 있어서나 난향을 겪던 Deep Purple은 결국 1976년 해체되고, Tommy는 그 해 9월 두 번째 솔로 앨범 [Private Eyes]를 완성한다. Vanilla Fudge의 키보디스트였던 Mark Stein을 비롯하여 Reggie McBride(B), Bobby Hall(P), Zephyr 시절 드러머였던 Bobby Berge가 참여하여 꼼꼼한 사운드로 가슴 저미는 'Hello Again'과 'Gypsy Soul'을 히트시키며 이 작품을 기화로 Tommy는 다시 Norma Jean Bell(S), Mark Stain(K) 등과 그룹을 결성하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마약 중독 등으로 인해 밴드를 유지하기가 힘들게 된다.

그러던 1976년 12월 4일 그가 존경하던 선배이자 천재 기타리스트였던 Jeff Beck과의 마이애미 합동공연 후 마이애미 호텔에 머물던 중 약물 중독이 악화됐고,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여자 친구가 급히 구급차를 불렀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나이 25세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Tommy는 아이오와 주 ioux에 묻히지만 그가 남긴 여리면서도 호소력 짙은 감성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핑거링과 솔로잉, 각 트랙마다 빛나는 천재적인 작곡법은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재즈적 어프로치를 소유한 락 기타리스트이다. 한때는 James Gang이나 Deep Purple 등 하드 락 밴드에서 명성을 날리기도 하지만 그의 진짜 면모는 재즈적 색채의 애드립에서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펜타토닉 스케일을 도리안 등 재즈적인 모드와 겸용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보다 퓨전적인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며 특히, Billy Cobham의 1973년 솔로 앨범 [Spectrum]에서 이와 같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이외에 그는 멜로디 라인에 대한 착상도 뛰어나 'Savannah Woman', 'Gypsy Soul', 'Someday Will Bring Our Love Home', 'Hello, Again' 등과 같은 감동적인 곡들을 많이 만들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뛰어난 기타리스트임과 동시에 작곡가로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셈이다.

Tommy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던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리 길지 않았던 기간 동안 그가 쏟아 놓은 음악들은 그를 진정 천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인물로 기억하게 한다. 블루스와 하드 락, 소울과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의 스펙트럼을 펼쳐 내며 음악가들 사이에서 먼저 알려진 그였지만 James Gang에서는 Joe Walsh에게, Deep Purple에서는 Ritchie Blackmore가 남겨 놓은 카리스마에 가리어 정작 대중들에게는 무시당해야 했고, 무절제한 마약과용으로 결국 더운 심장을 식혀 버린 무척 불행한 연주자였다.

하지만 그가 Zephyr와 James Gang, 그리고 Deep Purple의 기타리스트로서 남긴 음반들과 재즈 락 드러머 Billy Cobham의 음반을 비롯한 일련의 세션 작업,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어 놓은 두 장의 솔로 앨범은 모두 락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들로 재평가 받고 있다.

글 출처 :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