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Mahler :
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 Symphony No.5 in c# minor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Recording :
No.1 - 1974/10 (ⓟ 2005) Stereo Konzerthaus, Wien(Live Recording)
No.5 - 1972/04 (ⓟ 2005) Stereo Musikvereinssaal, Wien

21세기들어 가속화된 우리나라의 말러(Gustav Mahler) 열풍이 심상치 않다. 불황속에서도 말러 1번 교향곡은 2005년 9월에만 무려 6회나 공연되기도 했고, 말러에 관련된 서적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Morte a Venezia)>에 사용되어 유명해진 <5번 교향곡 >의 4악장(아다지에토) 등 대중적인 면이 있음에도, 말러 음악은 복잡하고 장황한 스케일 때문에 입문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편이다. 해법으로 2for1 염가 세트로 발매된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말러 1번/ 5번 교향곡 >를 제시한다. 말러 입문에 적격인 두 교향곡과 함께 명 바리톤 토머스 햄슨(Thomas Hampson)의 음성으로 말러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fahrenden Gesellen)>까지 담고 있는 환상적인 입문반이다.

말러 음악이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 교향곡 전곡 녹음을 통해 오늘날의 말러 붐을 예견한 번스타인은 말러 스페셜리스트답게 강조할 부분이 어딘지 확실히 알고 있다. 말러의 제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말러 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칭하기도 했던 <1번 교향곡>에서 번스타인은, 칸타빌레부분에서 템포를 늦춰 선율미를 최대한 살리고 피날레에선 웅대한 스케일로 블록버스터 적 쾌감을 선사한다. <5번 교향곡 >도 불꽃 튀는 명연으로, 앞서 언급한 '4악장'에서 아름다움을 유유히 잘 살려내며 5악장에서는 드라마틱한 연출로 빛나는 승리를 끌어낸다.
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작품의 배경 및 개요

말러의 교향곡 작곡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으로 20대 청년 시절의 방황과 고뇌가 투영되어 있다. 방황하는 젊은 시절에 이 곡은 탄생되었고, 젊은 말러의 시절을 담은 곡이다. 초연의 실패를 딛고 수정을 거쳐 오늘날에는 ‘거인’ 이라는 부제로 널리 연주되고 있다. 4도 음정과 민요에서 인용한 선율 등이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구스타프 말러가 〈교향곡 1번 ‘거인’〉의 구상을 시작한 건 1884년 무렵의 일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말러는 교향곡에 도전한 적이 있었는데, 1882년에 ‘북극 교향곡’이라는 제목의 관현악곡을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한계를 느끼고 중단했다. 이후 다시 도전한 교향곡의 작곡은 1884년부터 약 4년간 계속되었다.

당시 20대의 청년이었던 구스타프 말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혼란과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카셀 극장의 지휘자로 있던 그는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여러 극장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당대 유명한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의 문하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가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요한나 리흐테르라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해서 구애했지만 거절당했고, 작곡가 베버의 손자의 아내를 만나 사랑을 키워가기도 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실연의 상처에 가슴아파하는 등 여느 청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말러의 젊은 시절은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관현악 반주가 붙은 이 가곡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 잠긴 청년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이 가곡집은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교향곡 1번 ‘거인’〉에도 영향을 주었다. 말러의 제자였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는 20대 청춘의 방황과 열정을 반영한 〈교향곡 1번 ‘거인’〉이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렸고, 이 곡을 가리켜 “말러의 베르테르” 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곡은 1889년 11월 2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첫 선을 보였다. 몇 년에 걸쳐 공들인 이 교향곡의 초연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 충격은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한 시간 여에 달하는 이 곡이 지루할 뿐 아니라 곳곳에 등장하는 불협화음이 주는 불편함, 매끄럽지 못한 음과 음 사이의 연결 등에 불평을 쏟아냈다. 민속 선율을 패러디해서 사용한 부분 역시 보수적인 청중의 강한 비난을 받았다. 실패로 끝난 초연 무대 이후, 한동안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말러는 이후 작품을 수정하고 보완했으며, 3년 후, 바이마르에서 이 곡을 다시 연주한다.

‘교향곡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음들의 시, 거인’이라는 제목과 다섯 개로 이루어진 각 악장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를 덧붙인 채였다. 말러는 전체 악곡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전반부 ‘청춘의 날들에서. 젊음, 결실, 고뇌 등 날들에서’는 1악장 ‘끝없는 봄’, 2악장 ‘꽃의 장’(블루미네), 3악장 ‘돛에 바람을 싣고’의 세 악장 구성이며, 후반부 ‘인간의 희극’은 ‘좌초’라는 부제가 붙은 4악장과 마지막 5악장, ‘지옥에서 천국으로’까지의 두 악장이다.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의 전체 악보는 작곡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출판되었으며, 출판 과정에서 말러는 악장 구성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기존의 5악장 중에서 2악장 ‘블루미네’를 제외하고 4악장만을 출판했고, 악장에 붙여 놓았던 부제들도 모두 삭제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연주되는 4악장 구조의 〈거인〉이 완성되었다. 초연 당시에는 여러 가지 비판도 있었지만 이 〈교향곡 1번〉은 이후에 말러의 대규모 교향곡들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향곡 1번〉에 자신의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1883~1885)의 선율을 사용하기 시작한 말러는 〈교향곡 2번〉(1888~1894)부터는 본격적으로 교향곡에 성악을 삽입하면서 독창적인 교향곡의 세계를 열어나가게 된다.

이 교향곡은 초연 후 얼마 동안은 <교향곡 제1번>으로 불리지 않고 <교향시>로 되어 있었으며, 5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제2악장까지를 제1부로 하여 「젊은이, 미덕, 결실, 고뇌, 등의 날들에서」. 그 이하의 제5악장까지를 제2부로 하여 「인간이 희극 」이라는 표제를 붙이기도 했다. 그 후 함부르크(1892년)와 바이마르(1894년)의 연주 때에는 다시 대략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하고, 전곡에 <거인>(Titan)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제1부 청춘의 날들에서 . 젊음, 결실, 고뇌 등.

제1악장 끝없는 봄. 서주는 동틀 무렵 깨어나는 자연을 묘사
제2악장 꽃의 장(章)(안단테)
제3악장 돛에 바람을 싣고(스케르초)

제2부 인간의 희극.

제4악장 좌초. 칼로의 서식(書式)(바이마르에 있는 「 사냥꾼 장례식」)에 의한 장송행진곡. 만약 필요하다면 다음의 설명이 요긴할 지도 모르겠다. 즉, 작곡자는 이 패러디풍의 회화에서 표면적인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이 「 사냥꾼 장례식」은 옛날 이야기 책으로 남부독일의 모든 아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거기에서는 숲의 동물들이 사냥꾼의 관을 따라 걷고 있다. 산토끼들은 깃발을 들고, 보헤미아의 음악가 악단은 선두에 있 다. 거기에는 고양이, 두꺼비, 새 그 밖의 동물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더해진다. 사슴, 여우 그 외의 짐승과 숲의 날개있는 생물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행진을 따른다. 여기에서 이 곡은 때로는 밝게 떠들고 때로는 음침한 무리들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곧 다음 악장이 이어진다.

제5악장 지옥에서 천국으로(알레그로 프리오소). 깊이 상처받은 마음을 갑자기 표현한다.
이 표제들은 1896년 베를린 연주 때에 <거인>까지 포함하여 모두 없애버렸는데, 장 폴의 <거인>이라는 소설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말러는 청년시절부터 이 소설을 즐겨 읽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 1악장 D장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Langsam, Schleppend, wie ein Naturlaut - Im Anfang sehr gemächlich (자연의 소리처럼 느리고, 쳐지게 - 처음에는 매우 서두르지 말고)

여기에는 「자연의 소리처럼」이라고 적혀있다. 솔직하고 간결함을 보여주는 듯한 현의 긴 A음의 오르겔풍의크트 위에서 오보에와 파곳이 4도 하강하는 특징적인 동기를 연주하고, 이어서 클라리넷이 멀리서 들리는 듯한 팡파르를 연주한다. D단조에 기초하여,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말러에 의하면 첫머리의 4도 동기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자연의 고요함이 펼쳐진다.

제2악장 A장조 3/4박자, 3부 형식.
Krä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강한 움직임으로,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처음에 저음현에 의한 힘찬 오스티나토의 베이스가 나타난다. 말러는 이 악장에서 오스트리아 산악지방의 요소들을 동반한 춤곡 분위기를 도입했다고 하는데, 브루너 발터는 말러가 소년시절에 자주 들어 귀에 익었던 춤곡을 정교화한 것이라고 다른 견해를 보인다.

제3악장 D단조 4/4박자, 3부 형식.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평온하게, 쳐짐 없이)

앞에서 얘기 했듯이, 프랑스의 화가 칼로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은 악장. 팀파니의 연타에 의한 4도 동기에 실려 먼저 콘트라베이스, 이어서 첼로, 그리고 튜바의 순으로 카논풍의 허무감으로 가득찬 옛 보헤미아의 민요 <형제 마르틴> 또는 <형제 야꼽> 또 프랑스 민요 <자크 형제> 에 의한 선율이 나타난다.

제4악장 2/2박자, 소나타 형식.
Stürmisch bewegt (폭풍처럼 움직임)

곡은 자유롭고 변화가 많은 소나타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3개의 큰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 제1부는 F단조이며, 피로에 지친 절망의 수렁에서 완강히 반항하여 일어서려는 것처럼 강렬하고 정열적으로 전체 악기가 연주된다. 제 2부는 현이 연주하는 제2주제가 시작되며, 제3부는 잠시 회상하는 듯하나 곧 호른으로 제1악장 최초의 4도 동기 - 자연의 힘의 동기를 제시하여 자연의 승리, 인간의 패배, 그에 의한 인간적인 희극을 묘사해 낸다.

글 출처 : Daum 백과, 클래식 사랑 그리고 인생
Symphony No.5 In c# minor

작품의 배경 및 개요

웅대한 자연 시(詩)에서 질풍노도의 피날레로 이어지는 1번, 죽음과 부활의 고통스런 변증법인 2번,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공포에서 시작해 자연과 인간과 절대자의 교감을 발견하는 3번, 어린이가 보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한 4번, 앞의 네 곡은 분명 젊은 사람의 음악이다. 극단적인 고뇌와 환희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캐묻는 모습은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하지만 5번에서 말러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뇌는 이미 확인된 고뇌고, 환희 또한 이미 확인된 환희다. 이것은 성숙한 인간의 음악이다. 모든 정서는 더욱 단단히 압축된, 정제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악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5번은 순수한 기악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말러의 5번은 앞의 네 곡에서 보여준 방황의 결산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특징짓는 방황과 고뇌는 아직 끝나기에는 멀었으니, 훗날 9, 10번에서 말러는 다시 삶에의 집착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5번은 그가 걸어간 길이 한복판에 가장 견고하게 서 있는, 그의 인생의 표적과 같은 곡이다. 말러는 이 곡에 대해 음악 외적인 표제를 붙인 일이 없다.

말러는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고 엄숙하며 인간이 모든 감정으로 가득하지만,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는 말을 남겼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190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빈 국립 가극장의 감독으로 4년째 알하며 지휘자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고, '괴짜', '이방인'이라는 편견을 벗고 작곡가로서도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아름답고 총명한 알마 쉰틀러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에 작곡하기 시작한 이 곡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적나라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20세의 젊은 알마에게 결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할 수 없었던 말러의 거대한 내면, 그 고독한 세계이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부

제 1악장 Trauermarsch
'장송 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

어린 시절 듣던 군대 나팔 소리의 추억에서 끌어낸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한다. 처절한 장송곡의 리듬과 격렬하고 사나운 절망과 슬픔의 기나긴 패시지가 교차한다. 변형된 행진곡 멜로디를 플루트가 연주하는 끝 부분은 귀기(鬼氣)를 느끼게 한다. 말러가 진정한 천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가만 보면 말러가 교향곡에 어울리지 않는 여러 형식들을 새롭게 자신에 고에 활용하고 있다지만 의외로 그중 많은 것은 100년 전 베토벤이 이미 응용한 것이다. 베토벤은 이미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하였고(말러는 이 비교를 싫어하였다), 느리고 빠른 변주곡을 사용하였고, 푸가 패시지를 집어넣었고, 장송 행진곡을 사용하였다.

이런 방법들은 말러의 곡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장송 행진'에서 조금 더 나아가 '죽음의 행진'이란 것은 말러의 대명사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번 교향곡의 시작이 그렇고, 3번 교향곡의 첫 악장에서도 장송 행진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1번 교향곡의 3악장은 물론, 심지어 가곡에도('북치기 소년'이라든지, '기상 나팔'이라든지) 죽음의 행진곡을 집어넣는 작곡가는 없을 것 같다.

말러의 다섯 번째 교향곡도 바로 이 죽음의 행진으로 시작된다. 첫 머리에 등장하는 트럼펫의 군대 풍 팡파르는 말러에게 전형적인 것이다. 장례 행진을 사용하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팡파르로(그것도 어두운) 교향곡을 시작하다니, 자주 들으니까 익숙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어쨌든 말러는 이 주제의 셋잇단음 리듬이 언제나 속도를 붙여서 연주되기를(정말 군대의 팡파르처럼) 악보에서 지시하고 있다.

제2악장 Stürmisch bewegt, mit größter Vehemenz)
'폭풍처럼 움직여서, 가장 격렬하게.'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1악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고뇌가 더욱 사납게 물결친다. 음악적 갈등이 심화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극적인 반전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지평이 열리곤 하는데 이 기법을 '개파(durchbruchsform)'라고 한다. 분노의 테마에서 평화의 테마로 반전이 일어나는 대목의 '개파'는 이 곡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전곡의 클라이맥스는 2악장 종반에 펼쳐지는 금관의 찬란한 코랄이라고 할 수 있다. 얼어붙은 하늘을 뚫고 한순간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말러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찬란한 대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유령 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다시 눌려버리고 만다.

말러의 5번 교향곡에서는 엉뚱하게도 첫 악장이 아니라 두 번째 악장이 선명한 소나타 형식(스터디 스코어의 첫 번째 에디션에서는 제시부에 반복 지시까지 있었다)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점 때문인지 말러는 자필 악보에 이 악장은 '주 악장(Hauptsatz)'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이 악장은 앞의 악장과의 연계가 분명해서 트럼펫 팡파르의 셋잇단음 리듬이 악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제2주제는 앞 악장의 두 번째 트리오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물론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에 등장하지 않는 점도 몇 가지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재현부 마지막에 D 장조 코랄이 갑자기 등장한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화가 나서 투쟁하고 있는 듯한 곡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것으로서 긍정적인 분위기의 마지막 악장을 예고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악장은 또한 1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자주 비교된다. 격렬한 '지옥' 주제에서부터 '천국' 주제로 전개되어 가고, 악장 지시도 '폭풍같이'인 것이다. 성격이 음험한 많은 말러리안들이 이 악장에 사로잡혀 잇는데, 파울 베커에 따르면 심지어 이 악장이 '열정의 분출하는 힘과 내용의 강렬함이 담긴 것으로, 교향적 예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2부

제3악장 Scherzo. Kräftig, nicht zu schnell
스케르쪼.

말러가
"삶의 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 sumus)"
라고 표현했듯이, 삶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상념을 뿌리치지 못하는 말러의 이중성을 들려준다.

호른 협주곡이라고 불릴 만큼 호른 독주가 곡 전체에서 활약하며 말러의 교향곡에서 빠뜨릴 수 없는 렌틀러(오스트리아의 민속 무곡)도 등장한다. 말러의 스케르쪼 중에서는 드물게 아이러니나 패러디 등의 비뚤어진 심성이 없다. 점점 피날레의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3부

제4악장 Adagietto. Sehr langsam
'아다지에토, 아주 느리게.'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인 이 곡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와서 유명해진 부분이다. 관악기들은 쉬고 현악 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매우 아름답고 고요한 악장이다. 폭풍 사이에 환상처럼 잠시 맛보는 평화라고 할까? 하지만 싸늘한 햇살 속에서 꾸는 피곤한 꿈처럼 쉽게 깰 것만 같은 안타까운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운 악장은 분명히 말러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이 곡이 루키노 비소콘티의 영화 <베니스의 죽음>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더라도(정말이지 시종일관 이 음악이 흐른다) 이 곡은 누군가에 의해 유명해졌을 것이다. 알마 말러가 이 곡의 주제이자 목적지인데, 이 에피소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빌렘 멩겔베르크이다. 그는 악보의 여백에다 '이 아다지에토는 구스타프 말러의 사랑의 고백이다. 말러는 편지 대신 이 곡의 원고를 보냈고, 알마는 말러에게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써넣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이 이야기를 멩겔베르크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알마 말러 역시 뛰어난 작곡가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고, 멩겔베르크는 이 에피소드를 알고 잇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남의 연애 이야기에 대한 지식의 과시는 가히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심지어 악보의 다른 빈곳에는 '나의 태양,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잇는지'로 시작되는 시까지 적고 있다. 말러 수집가(?) 혹은 학자인 길버트 카플란이 늘 이 곡은 죽어 가는 슬픔이 아니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근거에서이다.

많은 지휘자들이 이 곡을 10분이 넘는 길이로 연주하는 반면 카플란은 발터와 함께 7분대에서 마무리하고 있고, 아바도는 이 보다는 조금 길지만 9분대에서 연주한다. 다행히 말러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롤이 발견되어서 카플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잇는데, 이 피아노 롤을 들으면서 카플란은 벅찬 가슴을 안고 감동에 못 이겨 말했을 것 같다.

제5악장 Rondo-Finale. Allegro–Allegro giocoso. Frisch
피날레.
여러 가지 점에서 1악장 장송 행진곡과 대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5악장에 이르면 1악장의 행진곡에 표현된 고통과 슬픔은 떠들썩한 기쁨의 함성으로 반박되는 것이다. 2악장에서 잠시 연주되었던 금간 코랄은 여기서 진정한 환희의 합창으로 울려 퍼진다. 그러나 5악장은 지나치게 가볍고 들떠있어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5악장의 기쁨을 단지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곡은 서주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중간에 상당히 많은 푸가 패시지가 삽입되어 있다. 말러가 그토록 공부한 바흐의 다성음악은 이 곡 전체에 펼쳐져 있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푸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이 악장인 것이다. 이 악장에 대한 학자의 의견은 대체로 양분되어 있다.

리하르트 슈페흐트나 파울 베커 등의 좀 오래된 세대들은 '삶의 의지', '힘을 향한 의지', '지상의 삶에 대한 찬가' 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는 반면, 아도르노를 선두로 한 보다 최근의 학자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아도르노는 "말러는 형편없는 예스맨이다. 그의 목소리는, 니체가 가치를 주장할 때, 그 자신이 이 '극복한다'는 역겨운 개념을 연습할 때처럼, 깨뜨려진다. 그는 마치 즐거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음악을 만들어 놓았다." 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양분된 해석에 공통된 것은 결국 이 곡이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긍정적인 악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D 장조 코랄은 밝은 빛 속에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사실 생애에서 거의 유일하게 흠 없이 행복한 순간에 있었던 말러였기에 이런 곡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러가 브루크너와 가끔 비교되지만, 이 두 작곡가가 완전히 다른 점은 바로 이 코랄에서 나타난다. 두 작곡가 모두 교향곡에서 즐겨 코랄을 사용했지만 브루크너는 한번도 이 곡에서 쓰인 것과 같은 경박한(?) 코랄을 쓰지 않았다. 말러와는 달리 그에게 음악은 종교와도 같이 성스러운 것이었는지 그는 언제나 교회 코랄만을 사용한 것이다.

글 출처 : 想像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