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피리,소리:박영태
장고:박진섭
아쟁:박병원
소리:이장단,김대례
대금:김방현
해금:홍옥미

Total timing 00:53:55
  1. 살아남은 사람을 위한 굿 - 해남 씻김굿의 이념과 음악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자연섭리이다. 씻김굿은 죽은 이에게 이승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해 맺혀 있는 원한을 살아남은 이들에게 풀어줘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노래와 춤이,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서 신성한 의식을 만들어가는 종교의식이다. 씻김굿은 길게 할 때는 사흘 정도 지속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8시간 정도 진행한다.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데 밤새 음악과 춤과 노래가 계속된다. 간혹 구경꾼의 요청에 따라 굿음악이 아닌 세속적인 음악도 굿음악 중간에 군데군데 삽입되어 연주된다.

    굿이 갖는 정신 치유의 효과는 누누이 보고되어 있거니와, 그 안에 어떤 요소가 사람을 정신적으로 회복시켜주는 것일까? 당골은 춤과 노래와 음악을 중요한 매체로 삼아 신과 영과 소통한다. 서사적인 내용과 서정적인 시는 단순하거나 세련된 노래를 통해 그 의미가 신에게 전달된다. 음악은 굿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면서 접신接神의 상황으로 몰입시킨다. 타악기의 소리는 주술적인 작업과 신들림에 필요하다. 징이나 정주는 멀리 있는 사자의 혼을 부르거나 나쁜 악령을 쫓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치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씻김굿은 넋굿, 진오기굿(경기도), 수왕굿(평안도), 오구굿(경상도), 시왕맞이굿(제주도) 등 한반도 전역에서 분포된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죽은 영혼에 남아 있을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풀어주고, 편안히 저승으로 모신다는 것이 씻김굿의 주제이다. 특히 진도나 해남은 섬이거나 해변에 위치하여 죽음과 장례의식이 특이하다. 초분장을 거쳐서 육탈된 시신을 다시 매장하는 풍습이 의례의 발달과 세련을 가져왔다.

  2. 참여한 무녀와 고인 소개

    해남씻김굿에 참여한 무녀와 고인을 소개하기로 한다. 주된 소리는 무녀 이장단이 맡고 있으며, 무녀 김대례가 이 음반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두 분의 소리 색깔이 서로 닮아 있다. 박병원씨가 아쟁과 소리를 맡고 있으며, 피리와 소리는 박영태, 장고와 소리는 박진섭, 그리고 대금에는 김방현, 해금에는 홍옥미씨가 맡아서 한 판을 만들고 있다. 이장단은 목구성이 아주 뛰어난 창자이면서 그 소리에 친근한 맛이 잘 드러난다. 김대례의 그늘 짙은 성음이 돋보이고, 박영태박진섭의 뒤를 든든히 막아주는 목소리가 조화롭다. 목에 듬뿍 그늘이 붙어서 그 창자의 가슴에 담고 있는 만만치 않은 세계의 무게가 처연하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대례박병원은 진도씻김굿의 인간문화재이다. 그리고 김방현 홍옥미 두 사람은 진도씻김굿판에 늘 참여해온 명인들이다. 해남씻김굿과 진도씻김굿은 사설이나 음악짜임새가 서로 거의 비슷하여 참여한 예인들도 쉽게 그 음악어법에 동화하여 연주할 수 있었다. 다만 진도 씻김굿이 해남 것보다 기교면에서 더 다양하고 세련된 음악구조로 짜여 있으며, 해남씻김굿은 더욱 토속적이고 순박한 맛을 담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 할 수 있다.

    해남굿의 무녀와 악사들은 우리나라 최고수준의 예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도로 숙련된 무녀와 악사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소리하고 연주하고 있다. 한 연주자가 자신의 가락을 내보이면 다른 악기 주자는 자신의 소리를 죽여 그것을 돋보이게 받쳐준다. 자유롭게 자신의 선율을 가져가던 대금 주자가 뒤로 물러앉으면, 아쟁이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선율을 가져간다. 그러자면 피리가 나와서 가장 무뚝뚝하고 서슬 깊은 선율로 내로라하며 자랑을 하다가, 해금에게 그 입지를 내주기도 한다. 이 가락들은 장고 장단을 지휘 삼아 자유롭게 서로 만나고, 교묘하게 조금씩 겹치기도 하고 서로 교묘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각개의 굿은 몇 개의과정을 가지고 있다. 또 각각의 과정들은 번갈아가며 2개 이상의 노래와 연주로 구성되어 있다. 때때로 이 작은 단락들 사이에는 휴지부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단락의 구분은 특별히 쉬거나 바뀐다는 언급이 없어도, 가사나 음악적 형태, 연주스타일, 내용, 장단이 바뀜으로서 눈에 띄게 된다. 음악은 대개 느리게 시작하여 중간속도를 거쳐 빠르게 진행된다. 각각의 굿음악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 01. 안당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첫 번째 과정을 말한다. 흔히 ‘초가망석’이라고 불리는 안당은 죽은 이의 혼을 굿판으로 불러오는 구실을 하는 초혼굿이다. 굿거리 속도인 흘림장단으로 두 무녀가 무가를 주고받는다. 뒷부분에서 자진모리 4장으로 조여 풀어 끝난다.

    • 02. 선부리
      이장단과 그 일행이 함께 부르는 진양조의 슬픈 노래가 지속된다. 노랫말은 억울한 일을 등장가자는 내용에서 시작하여 슬픈 사설을 함께 노래한다. 뒷부분에서 굿거리장단의 성주굿이 붙어 있다.

    • 03. 제석굿
      우리 서사무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굿으로, 천왕제석님이 마을에 시주를 내려오는 위용을 엄숙하면서도 해학적으로 담아 노래 부른다. 남도의 굿에서는 제석굿이 간략화 되어 있어 두 시간 이상 계속되는 중부지역의 서사무가다운 이야기성은 느껴지지 않으나 그 대신은 음악적으로 아름답게 짜여 있다. 사설 한 대목이 진양조로 불리다가 빠른 속도의 흘림장단에 이르면 당금애기의 맵시를 소개하고 인연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서 시주를 원하는 제석님과 시주할 수 없다는 애기씨의 대답이 엇모리로 흥겹게 연출된다. 말미에 붙은 중타령은 나중에 판소리에 그대로 차용된다. 이장단의 소리공력이 잘 느껴지는 굿이다.

    • 04. 오구굿
      오구굿은 우리 서사무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굿 바리공주를 연행하는 굿이다. 제석굿과 마찬가지로 남도의 씻김굿에서는 오구굿도 간략화 되어 있는데, 이 해남씻김굿은 그래도 그 형태를 비교적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바리데기 이야기는 딸을 일곱이나 낳아 버려진 바리데기가 병든 부친을 위하여 황천에 가서 약물을 해 바치고 무조巫祖가 된다는 신화이다. 바리데기 대부분의 사설을 빠른 엇모리로 엮고, 뒷부분에 진양조로 음악적인 면을 부각시킨 다음, 서서히 돌아가는 식으로 중모리, 굿거리장단이 이어진다.
글 : 유영대 (고려대 교수), 글 출처 : 황봉구 미 그리고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