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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흥보가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로, ‘박타령’이라고도 불린다.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었더니, 그 제비가 물어 온 박씨를 심었다가 얻은 박을 타서 보물을 얻어 부자가 되고, 부자이나 심술궂은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서 고쳐 주고 얻은 박씨를 심었다가, 박 속에서 나온 상전, 놀이패, 장수 따위에게 혼이 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짐승이 사람에게 은혜와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몽고의 ‘박 타는 처녀’ 이야기, 일본의 ‘혀를 자른 새’ 이야기, 중국의 ‘은혜를 갚은 누런 새’ 이야기 따위에서도 보이듯이, 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해 내려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조선 왕조 어느 때쯤에 가객들이 판소리로 짠 것 같다.

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있고, 또 놀보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잠도 들어 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이 강한 마당으로 꼽힌다. <흥보가>를 재담소리라고 하여 한편으로 제쳐 놓던 가객들도 있었던 점으로 봐서도 <흥보가>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와는 달리,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과 같이 민중의 해학이 가득 담긴 판소리로 꼽힌다고 하겠다.

조선 왕조 초기 문헌에 “광대소학지회”라는 광대 놀음에 관한 글이 보이는데, 판놀음 속에 판소리가 끼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흥보가>도 부분적으로라도 그때에 이미 판소리로 불렸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지만, 문헌에 자세히 보이지 않으니 짐작에 그칠 뿐이다. 판소리 <흥보가>의 내용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순조 때의 문인 송만재가 쓴 “관우회”라는 글이다. 그 속에는 <흥보가>를 포함한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이 짧게 소개되어 있다. 조선 왕조의 영조 때에서 헌종 때에 걸친 시대의 명창인 권삼득이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니, “관우회”가 쓰인 순조 무렵에는 <흥보가>가 꽤 널리 불렸을 것이다.

권삼득의 뒤를 이어 많은 명창들이 <흥보가>를 불러 <흥보가>는 훌륭한 판소리로 발전했던 것 같다. 권삼득은 특히 놀보가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설렁제 대목을 더늠으로 내어 놓아서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 순조 때의 명창인 염계달도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헌종 때에 전라도 장흥 사람인 명창 문석준도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는데, 특히 흥보가 궤에서 돈과 쌀을 매우 빠르게 떨어 내는 대목을 소리로 짠 것으로 유명하며, 그 대목은 그의 더늠으로 오늘날까지 전재하고 있다. 그밖에도 헌종 때의 경기도 수원 명창인 한송학, 철종 때의 전라도 함평 명창인 정창업, 충청도 한산 명창인 정흥순과 최상준이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고종 때에 원각사에서 창극을 이끌던 명창 김창환도 잘했는데, 특히 제비가 강남에서 박씨를 물고 흥보 집까지 날아오는 과정을 그린 ‘제비 노정기’를 잘 짜 불러 이름이 높았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명창들이 이 대목을 김창환 더늠으로 부르고 있다. 고종 때에 원각사에서 김창환과 같이 일하던 명창 송만갑도 잘 불렀는데, 특히 흥보가 박을 타며 부르는 ‘박타령’이 장기였다. 1978년에 죽은 여자 명창 박녹주도 <흥보가>를 잘하였다.

지금 전해지는 <흥보가>에는 송홍록에게서 송광록과 송우룡을 차례로 거쳐 송만갑에게 이어지는 동편제 <흥보가>와, 정창업에게서 김창환에게 이어지는 서편제 <흥보가>가 있으며,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전해지던 중고제 <흥보가>는 전승이 끊어졌다. 송만갑의 <흥보가>는 김정문을 거쳐 박녹주, 강도근이 이어받았고, 또 박봉래를 통하여 박봉술이 이어받았다. 김연수의 <흥보가>도 동편 계통에 든다. 서편제 <흥보가>는 김봉학, 오수암, 박지홍을 통하여 정광수, 박초월, 박동진이 이어받았다.

<흥보가>는 내용으로 보아, 첫째로, 초앞에서 흥보가 쫓겨나가는 데까지, 둘째로, 흥보가 매품 파는 데에서 놀보에게 매 맞는 데까지, 세째로, 도사 중이 흥보 집터 잡는 데에서 제비 노정기까지, 네째로, 흥보 박 타는 데에서 부자가 되어 잘사는 데까지, 다섯째로, 놀보가 흥보 집 찾아가는 데에서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데까지, 여섯째로, 놀보가 박 타는 데에서 뒤풀이까지로 가를 수 있다.

<흥보가>에서 유명한 소리 대목은 놀보 심술, 돈타령, 흥보가 매 맞는 대목, 중타령, 중이 집터 잡는 대목, 제비 날아드는 대목(사설에 따라 “겨울 ‘동’자, 갈 ‘거’자…”라고도 불린다), 제비 노정기,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타령,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따위를 들 수 있다. <흥보가>를 도막소리로 할 때에는 이 가운데에서 골라서 하는 수가 많다. 그런데 놀보가 박 타는 대목은 재담이 많고, 놀이패들이 잡가를 부르는 대목이 많다 하여 여자들은 소리하기를 꺼렸다. 박녹주의 것도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까지만 짜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