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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갑득은 3.1운동이 나던해인 1919년 12월 12일 전라남도 광주 수교동에서 태어났다.다른명인명창들이 그렇듯이 그의 집안도 음악의 명문이였다.할아버지 한덕만은 대금과 가야금의 명인으로 이름이 드날렸고,아버지 한성태는 수리성과 양성을 겸비한 천구성으로 판소리계에 일세를 풍미한 바 있다. 한편 그의 동생 한승호는 판소리, 그의 부인 박보아는 판소리와 창극,여성 국극 활동을 활발히 하여 대를 물리는 예술가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과시하고 있다.

한갑득의 거문고의 거문고 산조는 백낙준에서 이어지는 박석기류의 것이 토대가 된다. 그러나 명인명창이 많았던 그의 집안 핏줄은 그로 하여금 스승에게서 배운 산조에 많은 창작성을 불어 넣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가 타는 거문고 산조는 절반이 그의 스승 박석기의 가락이요, 나머지 절반은 그의 창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범수는 젓대,해금,퉁애의 명인으로 이들 각 악기의 산조를 만들어 연주하였다.한범수의 젓대 산조는 그 창시자로 알려진 박종기의 음악을 전승한 것으로 여기에 역시 박종기의 제자였던 한주환의 가락을 참고하여 자신의 가락인<한범수류 대금산조>를 내놓은 것이다.한편 한범수의 해금산조는 김경선의 산조를 이어받은데다 자신의 대금산조 가락을 많이 삽입하여 만든것이다.

최인서는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구한말 이래로 취고수로 활약한 호적의 명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날나리가 좋아서 당시 동대문 부근에 사는 박순오에게서 태평소의 연주법과 취타가락을 배웠다 하며,18세가 되면서는 겸내취로 활동하였다고 한다.그가 실제로 겸내취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그가 최후의 취고수 중 하나인것만은 분명하다.최인서는 단절될 위기에 있었던 취타의 태평소 가락을 현대에 전승해 준 몇 안되는 장본인으로,이에 대한 그의 공로는 간단히 평가할 수 없다.

한일섭의 아쟁산조는 현재 박종선과 윤윤석 등에게 전승되고 잇는데 이 음반에서 아쟁산조를 연주한 윤윤석은 1984년에는 전주 대사습의 장원,1986년에는 문공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한편,여러 공연무대에서 귀재를 인정받은 뛰어난 아쟁연주자이다.여기에서 연주한 아쟁산조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등 산조의 기본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최헌>

하현해탄은 본래<영산회상>하현도드리를 연주할때, 그 변주로 연주하는 것이지만, 민속음악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장시간의 거문고 산조를 연주하기에 앞서 다스름처럼 음을 고르고 손을 풀기 위해서 연주하기도 한다.

가곡을 이루는 부분 곡명은 <초수대엽>,<이수대엽>,<삼수대엽>과 같이 곡의 순서에 따라 곡 이름이 붙기도 하며,혹은 <소용이>,<농>,<낙>,<편>과 같이 음악적인 특징에 따라 붙여졌는데, <태평가>만은 그 가사의 첫머리인('태평성대'앞의 '이려도'는 실제 연주에서 생략한다.)를 따서 명명되었다.

김기수의 목소리는 대체로 건장한 그의 체구에 걸맞게 묵직하고 굵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높은 음역에서는 청아한 음색을 띠고 있다.그가 소남 이주환이나 두봉 이병성 같이 가곡으로서 많은 연주활동을 한것은 아니나 독특한 가곡의 음악세계를 들려주고 있다.여기에 실린<언락>은 그가 국립국악원의 원장으로 있던 1973년에 녹음한것이다.

김정연은 평양출신의 여류 서도소리 명창으로 어려서 부터 김칠성 선생에게 서도 소리를 배웠고 1971년 오복녀와 함께 중요무형 문화재 제 29호 서도 소리 기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박초월은 전북운봉 출신의 판소리 여류 명창으로 그의 '수궁가'는 정광수와 같이 유성준제 '수궁가'로서 동편 소리에 든다.동편제는 소리에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잔가락이 적으며 대개 대마디대장단으로 사설을 촘촘히 붙여나가는데다 속도가 빨라 발림을 할 여유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글 출처 : 다음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