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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 1집 / My First Story

1994년 대한민국은 성별을 분간할 수 없는 미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댄스 쪽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점령해 있는 와중에 룰라 같은 혼성 그룹의 각축전이 벌어져 있었고,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등등 내노라하는 가수들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 독특한 가성으로 가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수가 있었죠. 이 글의 주인공인 조관우 입니다.

'소리꾼의 피'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을까요?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워낙 유명했던 소리꾼이었으니 그 역시 그런 유전자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음악적 재능과는 별개로 그의 유년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해외 공연이 잦은 아버지의 출장 등으로 가족의 정을 느끼지 못 하고 할머니와 고모집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런 성장 환경 탓인지 또래 친구들은 없었지만 그는 친구 대신 음악을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어릴 적 그가 주로 들었던 음악은 Stevie Wonder. 7살 때 이미 판소리 가락이 가지는 음의 떨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천재성을 보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음악을 하는 것을 무척 반대했습니다. 진정한 소리꾼이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던 당신은 당신 자식이 그런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볼 수 가 없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그 가풍이 어디 가겠습니까? 중학교 3학년 때 대한민국 청소년 연극제에 승무(僧舞)라는 작품으로 참가해서 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그는 여러 학교에서 입학을 제의받았고, 결국 그의 선택은 국악예고 였습니다. 창을 하는 외할머니와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가야금을 선택했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학한 국악예고에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가야금은 그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호텔과 클럽 등의 밤업소(이 무렵이 우리나라 밤업소의 전성기 였습니다. 송골매, 김태화, 김현식 등이 밤무대를 휘어잡고 있을 시기였죠)에서 자신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밤업소는 조관우 풍의 노래를 인정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나는 가수다'에서 윤도현과 박정현은 살아남고 김연우와 이소라는 탈락한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시대가 그를 몰라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는 묵묵히 내공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스승은 Earth, Wind & Fire와 Bee Gees였죠. 그 중에서도 Barry Gibb의 하늘거리는 팔세토 창법을 그 만의 것으로 소화시킨 그는 문선대에서 스스로를 단련시켰고 전역 이후, 밤무대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한 명인 하광훈을 만나게 됩니다.

변진섭, 이승철 등과 같이 작업을 했던 하광훈은 그 당시 최고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 들어왔죠. 하광훈은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기 위해 그를 훈련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의 시작이자 끝은 등산과 달리기 였습니다.

조관우가 진성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이유는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BMK 같은 폭발적인 성량이 그에게는 없었죠. 그 대신 그는 가성을 특화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성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서양 음악에서 말하는 팔세토(Falsetto) 창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면, Bee Gees의 'Stayin' Alive'나 'Tragedy' 같은 곡을 찬찬히 들어보시고, 조관우의 노래를 들어보시면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Barry Gibb의 떨림이 위 쪽에서 이루어진다면 조관우의 떨림은 그보다 아래 쪽에서 이루어지죠. '가성' 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관우의 목소리는 팔세토 보다는 요령목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조관우의 노래 중 저역('늪'의 예를 들자면 '가려진 커텐 틈' 까지)은 '가성'이 아닌 '희성' 입니다. 진성과 가성의 중간 소리로 가성을 깎아서 내는 소리지요. 그런데 이 희성은 실처럼 가늘다고 해서 '실성'이라고도 합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당연히 실성은 들리지 않게 되겠죠. 진성을 깎아서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음역 대의 목소리에 힘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성에 힘을 붙이기 위해서는 복근과 폐활량을 늘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폐활량을 늘리기에 등산과 달리기만큼 좋은 운동은 없죠.

'가수 만들어 준다고 데려가 놓고는 운동선수 만드는 줄 알았다'라는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혹독한 훈련을 거친 후, 조관우라는 이름이 찍혀있는 앨범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슈퍼스타의 등장이었죠.

충격적인 가사에 '불륜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종교단체에서 항의를 받았던 그의 타이틀 곡인 '늪'은 말 그대로 전국민을 조관우라는 늪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그 어떤 가수도 부르지 않았던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며 여자 가수보다도 높이 올라가는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죠.

이 앨범은 두 번째 트랙인 '다시 내게로 돌아와'를 타이틀 곡으로 선택했지만 '늪'이 방송을 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관우라는 세 글자를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하늘, 바다, 나무, 별의 이야기'와 미국의 흑인 소울 그룹인 The Stylistics의 히트곡인 'Because I Love, Girl'을 리메이크 하면서 연주곡을 제외한 9개의 곡 중에서 4개의 곡이 히트했습니다. 세상에는 '늪'이 워낙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면서 그의 이름을 알렸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조관우가 가장 열심히 불렀을 곡은 'Because I Love, Girl'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소울 음악을 사랑했던 그에게 The Stylistics 만큼 훌륭한 스승도 흔치 않았을 테니까요.

이 앨범의 엄청난 성공 이후, 그에게 거는 기대치는 급상승해 있었고, 데뷔 앨범 발매 1년 후 그는 리메이크 앨범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의 거의 전 곡이 히트를 하게 되었죠. 그 중에서도 '꽃밭에서'는 원곡도 정훈희라는 엄청난 가수가 부른 곡인데 그 때 까지 유일하게 원곡보다 잘 부른 리메이크 곡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으니 이제 조관우의 시대가 열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하광훈과의 결별 이후 각종 루머에 시달리며 서서히 몰락해 가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클래스는 영원한 법. 그는 이대로 묻힐 가수가 아닙니다. 아직 조관우는 그의 모든 걸 보여주지 못 했습니다. 그의 모든 걸 보기 위해서는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줘야 합니다.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조관우의 노래를 좋아하니까요.

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