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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Das Musikalisches Opfer BWV1079 [음악의 헌정]

[음악의 헌정]은 바흐의 마지막 작품이자 [푸가의 기법]과 더불어 최고의 걸작 중 하나다.
1747년 5월 만년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포츠담 상수시 궁전을 방문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를 알현했다. “짐은 국가의 제1 공복”이라는 말을 남겼으며 예술과 학문을 사랑한 프리드리히 2세는 플루티스트이자 작곡가였고, 음악을 포함한 예술 전반에 대한 후원자였다.

이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부친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군인왕’이라 불릴 정도의 군국주의자였다.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난폭했다. 반면 어머니 조피 도로테아는 헨델이 [수상음악]을 작곡해 템즈강에서 바쳤던 하노버 선제후 조지 1세의 딸로 세련된 교양인이었다. 그녀는 프랑스 귀족 출신 가정교사를 초빙해 일찍이 프랑스 문화를 아들에게 교육했다.

어머니를 닮은 프리드리히 2세는 음악을 좋아했고 플루티스트 요한 요아힘 콴츠로부터 플루트를 배웠다. 프리드리히 2세는 걸핏하면 “계집애 같은 놈”이라고 때리며 음악교육을 반대한 아버지를 싫어했다. 군대라면 지긋지긋했던 그는 라틴어, 시, 철학과 문학에 심취하고 바흐, 비발디, 헨델의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다.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전에 초대받은 바흐

프리드리히 2세는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에 손수 스케치한 상수시(Sanssouci, ‘번민이 없다’는 뜻의 프랑스어) 궁전을 지었다. 음악 감상실과 플루트 연주실, 도서관과 서재가 있는 아름다운 이 궁전에서 프리드리히 2세는 볼테르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을 초청해 예술과 문학, 철학, 종교, 역사, 전쟁, 의학, 과학 등 광범위한 주제로 몇 시간이고 대화와 토론을 열었다. 이곳에서 프리드리히 2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음악을 연구하고 연습하고 연주하면서 보냈다 한다.

다시 바흐로 이야기를 돌리면 1747년 당시 대바흐의 차남인 카를 필립 엠마누엘 바흐가 왕의 쳄발로 주자로 일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상수시 궁전이 모습을 갖추자 건반의 대가이며 대위법의 1인자로 유명했던 부친 대(大) 바흐를 초대했고 바흐도 둘째 아들과 가족을 보고 싶어서 흔쾌히 왕을 알현했다.


상수시 궁전의 음악회에서 플룻을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 <출처: Wikipedia>


1747년 5월 7일 포츠담에 도착한 바흐는 상수시 궁전에 초대되어 즉흥연주를 펼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다음날 다시 궁전에서 프리드리히 2세는 바흐에게 주제 하나를 제시하고 6성의 푸가로 연주해 줄 것을 부탁했다. 위엄있는 분위기의 주제였으나 푸가로 만들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바흐는 그 주제를 즉흥으로 연주할 자신이 없어, 대왕의 허락을 받아 자기가 택한 주제로 6성 푸가를 연주하였다. 연주는 뛰어나서 사람들의 칭찬을 얻었지만 바흐는 마음이 왠지 찜찜했다. 왕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돌아오자마자 이것을 완성해 동판에 인쇄해서 대왕에게 헌정했다. 바흐는 작품에 “삼가 폐하에게 음악의 헌정물을 바칩니다”라는 헌정사를 붙였다.

왕이 하사한 주제로 만든 푸가를 왕에게 바치다

[음악의 헌정] 곡의 배열은 자유롭다. 1970년 이후로는 3성푸가로 시작해 프리드리히 2세의 주제에 의한 무한 카논 후 5개의 카논, 카논 풍의 푸가, 그 뒤 6성 푸가, 2성 및 4성 카논 뒤 트리오 소나타, 마지막에 무한 카논 순서로 연주하는 배열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곡의 구조적인 배열을 건축학적인 미학으로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리체르카레로 시작해 다섯 개의 카논이 이어지고 그 중심을 트리오 소나타가 차지하고 있다. 다시 다섯 개의 카논과 리체르카레로 끝나는 대칭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생긴 건물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트리오 소나타이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플루트, 바이올린, 통주저음으로 악기가 지정돼있다.

라르고, 알레그로, 안단테, 알레그로라는 네 개의 악장이 설정돼 있어서 왕의 주제를 여러 가지로 변주시킨다. 플루티스트이기도 한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배려가 보인다.

대칭형의 양쪽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체르카레는 프리드리히 2세가 바흐에게 주제를 제시하고 즉흥연주를 요구했던 두 개의 문제에 대한 답이다.

6성 리체르카레는 스케일이 크며, 곡 전체의 종결에 알맞게 되어 있다. 트리오 소나타와 리체르카레 사이에 5개의 카논을 배치했는데, 전반부의 카논은 왕의 주제 위에 쌓아 올린 카논이며, 후속 성부가 차례로 전조를 계속하는 나선 카논에서는 상승하는 선율과 함께 왕의 영광이 높이 오르도록 염원하는 바흐의 심경이 담겨 있다.

바흐 시대의 중요한 건반악기였던 하프시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