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rack 01 ~ 04
Ernest Lush(piano)
Recording : 3.IX.1962, live at the Edinburgh Festival, Freemason's Hall

Track 05 ~ 6
Daniel Barenboim(piano),
Pinchas Zukerman(violin)
Recording : VII.1972, in concert by Israel Radio: Frederick Mann Auditorium, Tel Aviv

Total timing 01:10:15

01. Brahms : Sonata for Cello and Piano No.2 in F major, Op.99

작품의 배경 및 개요

브람스는 첼로와 피아노용의 2중주곡을 적어도 3개 이상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그 중에는 18세 전후의 작품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첼로 소나타로서는 작품 38번과 작품 99번 2곡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중 ‘1번’은 유명한 ‘독일 레퀴엠’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브람스의 특유의 우수에 찬 서정성이 강하게 나오기 시작한 제2기의 작품이고, ‘제2번’은 원숙한 수법을 보여주는 만년의 작품이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와 함께 자주 연주되고 있는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는 명실공히 낭만파 시대의 첼로 소나타의 대표적 걸작이다.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 F장조 작품99. 수많은 첼로 소나타 중에서 단연 백미라 할 수 있는 이 곡은 브람스가 그의 첫번째 첼로 소나타 e 단조를 작곡한지 21년만인 53세때의 작품이다. 이 곡은 브람스가 창작열이 가장 원숙기에 접어든 1886년 여름, 스위스 알프스 신록이 병풍처럼 둘러선 툰 호수에서 친구들과 휴가를 보내던 중 작곡되었다. 브람스의 소나타 2번은 1번에 비해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남성적인 정열을 강하게 그려내는 그야말로 가장 첼로다운, 그리고 첼로의 장점을 가장 잘 나타낸 곡이라 할 수 있다.

「첼로 소나타 2번」은 1번 소나타보다는 음역이 넓고 표현하는 요소들도 많으며, 전체적으로 세련되어 있고 섬세하다. 첫 번째 소나타, Op.38이 심각하면서도 슬프며, 위대한 선율적 매혹으로 상상 속의 풍경을 주의 깊게 구성했다면, 두 번째 소나타 Op.99는 밝고 정열적이며 자연의 떨리는 에너지 모두를 생생하게 잡아낸 진짜 풍경이었다. 브람스의 작품에는 실제로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을 연상시키는 음형들도 적지 않은데, 아마 스위스의 아름다운 호수 에서 오가는 자연의 밀어를 훔쳐 이 소나타에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Allegro Vivace
첼로가 마치 트럼펫이 소리를 내뿜듯이 시작한다. 첼로의 이 흥분 섞인 노래가 제 1주제이다. F장조, 소나타 형식 격렬한 정열을 발산하는 듯한 피아노의 트레몰로 위에 첼로가 폭 넓게 힘찬 동기를 노래한다 스위스 알프스의 웅장한 풍경을 여기서 느낄 수 있다 이 악장에서는 피아노에 또는 첼로에 트레몰로의 움직임이 격렬한 음향과 긴박감 그리고 역동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 트레몰로가 이처럼 많이 쓰이는 예는 드물것이다.

제2악장 Adagio affettuoso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원래「첼로 소나타 1번」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브람스 전기 작가로 유명한 막스 칼베크의 추측일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 악장에는 브람스가 이중주에서는 잘 쓰지 않던 피치카토(pizzicato)주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효과는 매우 인상적이다. F샤프 장조, 3부 형식 첼로의 피치카토로 시작되며 피아노의 풍요한 울림 위로 첼로가 흐르듯 아름다운선율을 노래한다 하이 포지션으로 노래하는 가락은 달콤하며 열기가 있다 곡은 조용한 서정을 간직한 채 이따금 정열적인 가락을 드높이는 것이다 브람스의 작품 중에서 낭만적인 정서가 이처럼 직접적으로 묘출된 일은 드물다.

제3악장 Allegro passionato
'빠르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라'는 악상기호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폭풍처럼 몰아치는데, 군데군데에는 돌발적인 휴지가 있고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교묘하게 대비되어 있으며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한 패시지도 들어 있다. 이 악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스케르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F단조, 3부 형식 스케르쪼풍의 정열적인 움직임이 돋보인다 독특한 리듬을 타고 첼로와 피아노가 눈부시게 움직인다 중간부에서는 첼로의 표정 어린 풍성한 선율을 들을 수 있다.

제4악장 Allegro Molto
첼로와 피아노의 다정한 주제로 시작된다. 1,2,3악장이 모두 상당히 긴 곡인데 반해 이 마지막 악장은 좀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완벽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F장조, 론도 형식 밝고 따뜻한 선율로 론도를 이룬다 첼로의 힘찬 음향에 의해 밝은 선율은 확고한 모습을 돋보이며 피아노가 화려하게 그것을 돕는다 간결하지만 세부는 치밀하게 만들어졌으며 코다는 힘찬 울림 속에 끝난다.

02. Peter Tchaikovsky : Piano Trio in a minor, Op.50

작품의 배경 및 개요

러시아 작곡가들 중 자신이 존경하던 음악가가 타계하자 그를 추모하는 3중주곡을 작곡한 예가 유난히 많다. 특히 곡의 형태가 다름 아닌 실내악의 피아노 3중주인 것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세 악기가 어우러지는 앙상블이 슬픔의 감정을 가장 잘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러시아의 실내악 명작이 이런 3중주에 몰려 있는데 사실 러시아의 음악 중에서 실내악의 장르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평소 존경하던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을 지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ein, 1835~1881)이 작고한 것을 아쉬워하며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작곡한다.

이런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자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가 차이코프스키를 추모하여 역시 <슬픔의 3중주(Elegiac Trio)> Op.9를 작곡하였다. 또한 작곡가 아렌스키는 러시아의 첼리스트 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장을 지낸 카를 다비도프(Karl Davidov, 1838~1889)를 추모하는 피아노 3중주 제1번 d단조 Op.32를 작곡한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이 피아논 3중주곡 Op.67은 평론가이자 음악학자인 솔레르틴스키(Iva Ivanovich Sollertinsky)를 추모하는 곡이다.

이런 네 곡의 작품 중에서 가장 슬픔이 돋보인 곡은 단연 차이코프스키의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부제로 붙은 ‘어느 예술가의 추억을 기리며’ 역시 이런 분위기를 더욱 진하게 하며 슬픔의 3중주 음악 중 단연 백미를 장식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실내악은 현악 4중주 3곡, 현악 6중주 1곡 그리고 피아노 3중주 1곡으로 모두 5곡이다. 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피아노 3중주라 하겠다. 하지만 피아노 3중주란 장르가 러시아 실내악의 전통상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또 차이코프스키 자신도 이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특히 1880년 겨울에 폰 메크(Nadezhda Filaretovna von Mekk, 1831~1894) 부인의 피아노 3중주 작곡 의뢰를 거절하였는데 편지에서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이 세 악가를 위한 3중주를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큰 괴로움입니다.”할 정도였다.

그런데 1881년 3월 파리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객사를 하게 된다. 니콜라이는 차이코프스키의 스승이었던 안톤(Anton Rubinstein)의 동생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 그리고 모스크바 음악원의 창립자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를 지내며 니콜라이와 친구처럼 지냈고, 니콜라이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을 다수 초연하며 남다른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1875년 작곡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두고 생긴 둘 간의 불화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1878년 니콜라이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파리에서 연주하여 둘은 우정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니콜라이가 1881년 파리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리콜라이의 별세로 공석이 된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으로 차이코프스키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고사하고 그해 11월 로마로 여행을 떠나 니콜라이를 애도하는 피아노 3중주를 이듬해 1882년 완성하고 악보에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기리며(a la memoire d’un grand srtiste)’라고 적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피아노 3중주 작곡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었던 그가 불과 1년 만에 피아노 3중주를 작곡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인데 그만큼 니콜라이에 대한 남다른 감정과 우정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1882년 2월 곡을 완성하여 초연은 3월 23일 고인의 1주기를 기념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제자이자 동시에 니콜라이의 제자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타네예프(Sergey Taneyev, 1856~1915)가 피아노를 맡고, 바이올린에 그리말리(Ivan Grimaly), 첼로에 피첸하겐(Wilhelm Fitzenhagen)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곡은 모두 2악장의 구성인데, 2악장 주제와 변주곡(Theme and variations)이 크게는 11개의 변주(variation)와 종변주와 코다(variation finale and coda)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실은 3악장으로 볼 수 있다. 1악장은 ‘비가적 악장’으로 추모의 정을 담고 있는데 이 주제는 2악장 코다에 다시 등장시켜 곡을 마무리하고 있다. 2악장은 회고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주제는 차이코프스키와 니콜라이가 모스크바 근교 스페를링산에 갔을 때 들은 민요를 근거로 하고 있다. 특히 변주가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어 추모의 정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수법적으로는 피아노의 역할을 강조 명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글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