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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말러에게 있어 교향곡 5번은 새로운 출발이다. 불혹을 넘긴 그는 새로운 기악 교향곡의 첫 작품인 교향곡 5번에서 고도로 세련된 작곡 기법을 구사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교향곡의 구성을 살짝 비틀어 특유의 음악적 풍자와 냉소를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냈다. 자신의 삶과 음악을 밀접하게 관련시키곤 했던 말러는 교향곡 5번에서도 그가 경험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교향곡 5번에 착수하던 1901년에 말러는 심각한 장출혈로 위기를 겪은 데 이어 교향곡을 완성하던 1902년에는 미모의 알마 신틀러와 결혼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비록 그 자신은 교향곡 5번에 어떠한 표제도 붙이지 않았지만, 비극적인 장송 행진곡으로 시작해 유난히 밝고 경쾌한 5악장으로 마무리되는 교향곡 5번은 죽음의 위기와 결혼의 행복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나타내는 듯하다. 비극적인 음악에서 환희의 음악으로 마무리되는 전개 방식은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전통적인 독일 교향곡의 구성과 닮았지만, 말러는 이 교향곡 곳곳에 자신의 가곡에서 따온 선율을 암시하며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말러가 교향곡 5번에서 이뤄낸 가장 놀라운 업적은 작곡 기법에서의 성취가 아닐까 싶다.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선 그 어떤 선율도 단순하게 등장하는 법이 없다. 하나의 주제가 또 다른 주제와 동시에 제시되는가 하면 조그만 반주 음형이 거대하게 자라나 전체 음악을 압도하기도 한다.

1, 3악장에선 트럼펫과 호른이 마치 협주곡의 솔리스트인 양 전면에 드러나고, 3, 5악장에선 여러 악기들이 매우 정교한 ‘폴리포니’(polyphony)를 만들어내며, 2, 5악장 마지막 부분에선 금관악기들이 통쾌한 코랄을 연주한다. 물론 교향곡 5번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인 4악장 ‘아다지에토’의 아름다운 음악은 영화음악으로 사용될 정도로 로맨틱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말러가 교향곡 5번에서 그토록 다양하고 세련된 작곡 기법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말러가 J. S. 바흐의 작품을 깊이 연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01년 3월경, 말러는 바흐의 악보 전집을 들여 놓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봤으며 여름휴가 때도 바흐가 사용했던 코랄에 다양하게 화성을 붙이며 하루 일과를 보내곤 했다. 바흐 음악을 통해 새로운 작곡 기법에 눈을 뜬 말러는 교향곡 5번을 작곡하면서 “초보자처럼 새롭게 곡을 썼다.”고 증언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교향곡 5번은 그의 초기 교향곡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음악이다.

말러의 교향곡 5번은 교향곡 5, 6, 7번으로 구성된 ‘중기 3부작’의 새 시대를 연 작품이다. 이 세 교향곡은 순수 기악곡으로, 일종의 ‘교향악적 칸타타’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2, 3, 4번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새로운 3부작은 가사도 가수도 합창도 없이 진행된다. 또한 교향곡에 자신의 가곡을 인용하곤 했던 말러는 교향곡 5번에서는 단지 ‘암시’만 할 뿐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새로운 3부작을 여는 교향곡 5번은 악장 구조 역시 독특하다.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졌으나, 1악장은 마치 2악장의 서주와 같은 역할을 하며 제1부를 구성하고, 3악장은 제2부, 그리고 4, 5악장이 연결되어 제3부를 구성한다.

제1부는 인상적인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한다. 곧이어 마치 고통스러운 발걸음처럼 무겁고 침통한 장송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팡파르와 행진곡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악상은 곧이어 폭발적인 슬픔으로 중단되며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팡파르와 행진곡, 슬픔의 폭발이 교대되는 동안 이 음악을 듣는 이들 역시 감정적인 고양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악장 말미에 터져 나오는 탄식의 울부짖음에서 절정에 달할 것이다. 이어지는 2악장은 1악장과 몇 가지 악상을 공유하고 있어 사실상 1악장에 연결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 이 악장은 격렬한 분노를 담은 제1주제와 평화를 갈망하는 듯한 제2주제로 중심으로 전개된다. 2악장의 핵심은 이 악장 말미에 금관악기들이 연주하는 통쾌한 코랄이지만 이는 오래지 않아 불협화음과 반음계적인 추락 모티브들로 좌절되면서 쓸쓸한 결말에 이른다.

제1부가 장송 행진곡과 분노의 폭발이라면, 스케르초로 된 제2부는 일종의 춤곡이다.
시골풍의 거친 ‘렌틀러’와 도시풍의 세련된 ‘왈츠’가 교대되는 이 스케르초는 말러 자신의 표현대로 “우리는 삶의 한 가운데서도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 sumus)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행복한 삶을 누리는 듯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집요한 시간의 추적이 ‘♪♪♩♩’의 반복되는 리듬과 광포한 춤곡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결코 삶에 대한 확신이 아니다. 온갖 모티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거대한 폴리포니를 이루고 있는 이 음악은 죽음의 추격에 쫓기며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혼란스러운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3악장의 난폭한 죽음의 춤을 거쳐 제3부의 첫 악장인 ‘아다지에토’에 이르면 지극히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음악이 현악기만으로 연주된다. 어떤 이들은 이 음악을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 악장의 마지막 부분의 베이스 파트에 암시된 음악은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라는 가곡이다. 이 곡은 말러가 “이 곡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가곡이긴 하지만 사랑을 노래한 음악에 왜 이런 쓸쓸한 노래를 인용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4악장에 곧바로 이어지는 5악장은 지나치게 밝고 경쾌한 음악이다. 5악장에서는 2악장 말미에 잠시 등장했던 코랄이 완전한 승리로 끝나고 있어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을 보여주는 음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5악장 도입부에서 목관악기들이 연주하는 선율의 단편들 중에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잘 분석해보면 놀랍게도 그 성스럽고 장엄한 코랄 선율임이 드러난다.

5악장 도입부에서 툭 내던져지듯이 연주되는 선율의 단편이 교향곡 5번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성스러운 코랄의 단편이라는 사실은 어쩐지 신성모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5악장 도입부에서 연주되는 바순의 상행 모티브는 말러의 뿔피리 가곡집 중에서 ‘높은 지성의 찬가’(Lob des hohen verstands)에서 따온 것으로 그 내용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이 가곡에서 당나귀는 귀가 크다는 이유로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의 노래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된다. 그는 단순하게 두 음만 반복하는 뻐꾸기의 노래가 더 훌륭하다고 판정한다. 이는 나이팅게일의 멋진 노래와도 같은 말러의 훌륭한 작품이 당나귀와 같은 당대 비평가들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말러의 자조인 듯 느껴진다. 말러의 냉소적인 풍자는 계속된다.

말러는 4악장에서 그토록 간절하고 안타깝게 표현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주제를 5악장의 제2주제로 가져와 지나치게 가볍고 경쾌한 음악으로 바꿔 놓으면서 진실한 사랑을 회피하려는 듯하다. 이것 역시 코랄의 신성모독 못지않은 충격을 전해준다. 과연 말러가 교향곡 5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지만, 말러가 이 교향곡에서 표현한 그 현란한 폴리포니와 화려한 기교는 오늘날의 음악 애호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글 출처 : 클래식 음악감상실